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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말을 다 해야 하는가

적어도 나는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났다

by 치리공

A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그는 4~5년차 정도 된 남자 직원이다. 너드남과 잘 맞는 나로서는 그의 퇴사가 적잖이 아쉬웠다.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소식이라고 하기에 그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아 네 팀장님 그렇게 됐습니다. 차 한잔 어떠세요”



그렇게 차를 마시면서 그의 퇴사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 내-외부의 정보들을 모아 보니 자신의 연봉이 너무 적은 것 같아서 퇴사를 한다고 했다. 이후 계획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좀 쉬다가 기술 공부를 좀 더 하면서 이직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에에? 이 사람 이거 큰일났네. 라고 생각만 했어야 했는데 결국 나는 입밖에 꺼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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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을 강요했을 때 결과가 좋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커서 말을 뱉었다. ‘1) 퇴사 후 이직은 구직자가 불리하다 2) 너의 연봉 상승 계획이 너무 부실하다. 3) 놀 거면 확실히 놀기만 하는 거 어떠냐’ 라는 세 가지 논리를 열심히 설파했다.



흥분해서 열심히 떠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말을 너무 싸질러 놓은 게 아닌가. 그제서야 민망해서 입을 닫았다. 다행히 그는 내 말에 경청했고 본인과 생각은 다르지만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며칠 후 그는 나를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퇴사 결정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그의 생각을 묻는 질문도 섞어가며 잘 알려줬다고 생각했기에 궁금했다. 내 말은 그에게 얼마나 닿았을까

20180330095537_ksocwffh.jpg 대개는 이렇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우리 지난 대화 중에 기억나는거 말해줄 수 있어요? 뭐 키워드라도 좋으니까.” 그는 내가 말한 것에서 1/3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정도면 꽤나 많이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왜 설득되지는 않았는가? ‘1) 일단 감정적으로 지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크고, 2) 어딜 가든 지금보다는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는 두 가지 생각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결국 다 지난번에 했던 말이었다. 튀어나오려는 잔소리를 꾹꾹 누르고 나니 해야 할 말이 보였다. 큰 결정 하느라 고생했고, 내 말을 잘 들어줘서 고맙고, 그래도 회사를 미워하면 본인만 손해니까 좋은 기억만 남기라고 했다. 그는 퇴사해도 꼭 연락하며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퇴사한 사람 중에 먼저 연락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고마워서 말을 삼켰다.



두 번의 대화를 돌이켜보니 뱉은 말과 삼킨 말이 7:3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말은 참는 게 더 어렵다. 그래서 뱉은 말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정말로 할 말만 남겼을 때 더 깊이 듣고 고마워했다. 이제는 말을 하는 것보다 삼키는 게 중요한 시기로 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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