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에서 배운 하루를 시작하는 태도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주인공 히라야마의 하루 일과를 찬찬히 보여준다. 고요하고 잔잔하게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보여주기에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그의 일상을 외우게 된다.
아직 밖이 컴컴할 때 이웃의 비질 소리가 들리면, 그 작은 소리에 눈을 뜬다. 곧바로 이불을 개고 이를 닦고 면도하고 분재 화분에 물을 주고 작업복을 입고 현관 앞에 진열해 둔 소지품을 순서대로 챙겨 밖으로 나선다.
그렇게 문을 열고 첫발을 내디딜 때 히라야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는다. 새날이 시작되었다는 황홀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처럼. 그러곤 자판기에서 늘 같은 캔 커피를 뽑아 차에 시동을 걸고 카세트테이프를 신중히 골라 그날의 음악을 들으며 어슴푸레한 새벽 출근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매일의 루틴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이 점 외에도 그에게서 배우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히라야마의 직업은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다. 하루에 공중화장실 5곳 이상을 청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일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장갑 낀 손으로 변기 안을 직접 닦는 것을 넘어 작은 반사경으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히 확인하고 비대 뚜껑을 해체해 안에 낀 먼지를 닦기까지 한다. 휴지를 새로 걸 때면 사람들이 쉽게 풀 수 있도록 휴지 끝을 삼각형으로 접어주는 센스도 발휘한다.
그는 사람들과 일부러 섞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다가올 때면 가만히 품을 내어준다. 한창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바로 멈추고 나가서 묵묵히 기다려준다. 화장실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주기도 하고, 외국인에게 화장실 이용법을 살뜰히 알려준다. 익명의 이용객과 OX 퍼즐을 풀기도 한다. 뺀질뺀질한 동료의 부탁도 전부 들어준다. 젊은 동료는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왜 이런 일에 그렇게까지 하세요?”
하지만 그는 언제나 같은 자세로 성실히 일할 뿐이다.
히라야마는 정직한 노동으로만 하루를 채우지 않는다. 자신을 위한 일상의 ‘틈’을 마련한다. 점심엔 신사에 가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는데, 벤치에 앉아 카메라로 일렁이는 나뭇잎과 햇살을 담는다. 필름 카메라여서 초록의 세상이 흑백이 된다. 스님의 허락을 받고 나무 분재를 채취해 흙과 함께 집에 가지고 와서 정성껏 심는다.
퇴근 후의 루틴도 있다. 작업복을 벗고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선다. 목욕탕에 들러 그날 치 노곤한 피로를 풀고 지하철 역 안 매일 가는 단골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는다. 그에게 주인장은 “오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늘 한결같은 인사를 건넨다.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소설책을 읽다가 잠이 쏟아지면 드디어 하루 일과를 끝낸다.
주말에는 시계를 차고 작업복은 가방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다. 코인 빨래방 세탁기에서 작업복이 돌아가는 사이, 필름 현상소에서 들러 카메라 필름을 맡기고 이전에 찍은 사진을 찾는다. 집에 와서는 청소하고 늘어난 카세트테이프도 감아주고 현상한 사진을 정리한다. 그의 서랍장에는 달별로 사진을 모아둔 상자가 빼곡하다. 이 외에도 주말엔 책방에 들러 일주일 동안 읽을 100엔짜리 문고판 책 한 권을 신중히 산다. 또 단골 선술집에 들러 주인장이 “늘 드시던 거로?”라고 묻는 메뉴를 먹는다. 그의 일주일엔 음악, 음식, 책, 반신욕, 식물, 사진 등의 일상이 소박하면서도 윤이 나게 흐르고 있었다.
그에게서 배우고 싶은 좋은 태도와 루틴 중에서, 가장 따라 하고 싶은 건 이거였다. 동료 몫까지 두 배 더 일해 피곤이 풀리지 않은 다음 날도, 조카를 돌려보내고 눈물을 쏟은 다음 날도 문밖을 나설 때면 그는 어김없이 하늘을 눈에 가득 담으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영화가 끝나고 쿠키 영상에는 ‘코모레비(こもれび)‘라는 일본어 뜻이 나온다. 코모레비는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일본어로, 코모레비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고 한다. 히라야마는 이 코모레비를 그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감각하는 사람이었다.
전날 이 영화를 보고 맞이한 지난주 월요일 아침, 줄넘기를 들고 밖에 나서자마자 잠시 멈춰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미소 지었다. 히라야마가 그랬듯이. 이제 내게 좋은 습관 하나가 더 생긴 것 같다.
운동하고 아침밥을 먹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출근했다가 점심에 선배를 만나러 가는 길 카메라를 들고 골목 사진을 찍었다. 선배와 함께 웃으며 추억 여행 같은 점심 식사를 했다. 오후엔 여러 부서 분을 모아 회의를 주최하는 새로운 도전을 했고, 야근을 했다가 어반자카바의 〈어떤 하루〉를 들으며 집에 왔다. 소소하지만 잔향이 있던 평범한 하루, 완벽한 하루라고 느꼈다.
평범한 날, 몸에 익은 움직임
익숙함이 내게 주는 안도감 (…)
또 다른 느낌 가르쳐줄 오늘
내일은 내게 어떤 세상일지
밤, 별 흩어지는 새벽을 지나
구름다리 놓인 아침이 오고,
바람이 주는 하루
- 어반자카바, 〈어떤 하루〉 중에서
일상에서 여러 루틴을 지키기가 힘들다면, 아침에 첫발을 내디딜 때만이라도 환하게 미소 지어보자.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1초면 충분하다. 하지만 효과는 강력하다. 어느새 내게 행복이 스며들어와 있음을 온몸 가득 느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