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끊은 지 만 1년 하고도 두 달. 이제는 스스로를 채식 지향인이라고 소개하는 게 꽤 익숙하다. 오늘은 자칭 육식주의자가 채식 지향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내가 처음부터 채식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히려 철저한 육식주의자에 가까웠다.
우선 20대의 나에게 잔디밭에서 먹는 치맥은 아무리 힘든 일도 단번에 털어낼 수 있는 치트키였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그렇다. 나는 흔하디 흔한, (한강) 잔디밭 치맥 예찬론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잔디밭에서 치맥을 함께한다는 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때문에 나는 마치 계절식을 치르는 것처럼, "봄에는 당연히 한강 가야지~", "여름밤엔 역시 한강이지~", "가을엔 한강에서 자전거&치맥이 진리지."라는 식으로 자주 한강을 찾았다.
2018년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고기를 더 자주 먹었다. 강남역 직장인의 점심은 늘 제육볶음, 순댓국, 돈가스, 평양냉면, 햄버거, 설렁탕, 일본 라멘 같은 철저한 육식 위주의 식단으로 채워졌다. 주에 두세 번은 꼬박꼬박 고기를 먹었으면서도 회식은 늘 고깃집이었으며, 주중에 친구나 지인을 만나기라도 하는 날엔 에너지 보충을 해야 한다는 핑계로 또 고깃집, 곱창집, 한우, 양고기 집으로 향했다. 정말이지 이 세상의 고기란 고기는 골고루 섭취하던 때였다.
못해도 한 달에 10~15회 이상은 고기를 정기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찾아서 소비하던 사람이었던 나.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를 끊고 어쩌다 채식 지향인의 길을 걷게 된 걸까?
우선 본격적인 채식 지향인의 길을 걷기 이전에 나는 소화기관이 매우 약하다는 것을 밝히는 바다. 돼지고기나 우유, 치즈 등의 유제품을 먹으면 거의 98% 이상의 확률로 배탈이 나는 신기한 장의 구조를 갖고 있는데, 어른이 되며 체질이 바뀐 건지 돼지고기와 유제품을 먹으면 유독 배가 차가워지며 탈이 나는 빈도가 잦아졌다.
언젠가부터는 점심에 돼지고기나 치즈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오후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식은땀이 나며 배가 아파 고통스러웠다. 특히 돼지고기를 먹으면 더 그랬다. 몇 번 고기를 먹고 배탈이 나는 게 학습이 되자 언젠가부터 "돼지고기를 먹는 것=미래의 아픔을 감수하고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맛있지만 고통스러운 음식. 나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음식. 하지만 여기서 고통은 스스로 느끼는 고통,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돼지고기는 되도록이면 먹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같은 걸 하게 된다.
한편 돼지고기만 끊어내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던 어느 날. 나는 시간 때우기용 영상을 보기 위해 유튜브를 켰다가 우연히 하나의 광고를 보았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에서 만든 9분짜리의 광고였다. 지구온난화,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기후위기를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지, 개인이 소고기 소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기후 변화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지를 다룬 광고였다. 소고기 소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기후 변화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그런 내용. 보통은 5초 정도 광고를 보고 건너뛰기를 누르는 게 국룰이거늘 그때만큼은 관심이 가는 주제여서 9분짜리 광고를 진지하게 시청했던 거 같다.
광고 후기는 2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