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면이 있다"란 사전적 정의를 갖고 있는 단어다.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은 오지라퍼라고 불린다. 일반적으론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는 편이고.
내가 대체로 주변에 무심한 편이라 그런지 누군가가 누군가를 향해 '오지랖'을 부리는 걸 목격할 때면 늘 신기하게 생각했던 거 같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저리 클 수 있다니??? 나의 경우 남에게 관심이 있거나 참견을 하고 싶더라도 그 사실을 혼자만의 생각으로 간직할 뿐 행동하거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관망자의 입장이 편해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남에게 간섭받기 싫어하는 나로서는 나에 대한 누군가의 오지랖(또는 관심)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내가 누군가의 오지랖을 부담스러워했듯 남들도 싫어하겠지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내게 '오지랖'과 'TMI'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오지랖과 TMI가 줄어들자 나는 점점 더 고립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에 대한 소소한 정보들,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소한 일상들은 내가 만든 오지랖과 TMI라는 벽에 갇혀 공유할 수 없는 정보들, 쓸데없는(=생산적이지 않은) 정보가 되었고 더 이상 어떤 것도 오픈하지 않는 것들이 일상이 되었으므로, 고립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최근 동료들과 일을 하며 오지랖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는데, 오지랖은 그저 배척만 할 대상이 아니라 '따뜻한 연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이 오지랖이 넓어서 다행인 순간들을 몇 번 겪고 그로부터 (정신적인 도움 포함) 도움을 몇 번 받고 뒤늦게 깨달은 게지.
오지랖. 오지라퍼. 나는 오지라퍼와 TMI를 이제 또 다른 포용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 나는, 우리는 타인의 관심과 오지랖에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오지랖은 재평가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