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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dys Jan 20. 2020

자존감 낮은 연애의 종말

이슬아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을 읽고


한은 대학교 같은 과 동기였다. 1년 늦게 학교를 들어갔던 나는 스물한 살, 한은 스물의 나이였다. 한과 모든 전공 수업과 교양 수업 때마다 마주쳤지만 그와는 별다른 친분이나 공통점이 딱히 없어 모르는 사람에 가까웠다. 딱 '이름'과 '얼굴'만 아는 사이. 그러던 어느 날 한이 갑자기 "농구 좋아하세요?"라며 말을 붙여왔다. 당시 나는 만화 슬램덩크를 좋아하며 한창 만화책을 한 두 권씩 사 모을 때였다. '헉, 얘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대화를 계기로 한과 나는 빠르게 친해졌다. 알고 보니 그는 큰 키에 어울리게 농구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이었고 나에게 관심이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뭘 좋아하는 지를 물어봤다고 했다. 그리곤 공통 관심사를 찾아 말을 붙였다고. 한과 얘기를 나눠보니 그는 농구 외에도 아재 개그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마침 아재 개그라면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리던 때라 한의 개그에는 늘 후한 점수를 주곤 했다. 한의 숨은 노력과 유머에 대한 재능, 그리고 여러 우연의 일치 덕분에 우리는 무역학과 공식 3호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첫 연애였다.


한과는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개그 코드도 썩 잘 맞았다. 무엇보다 연애를 하며 함께하는 모든 경험은 둘에게 전부 처음이었어서 더 강렬하고 재미있었는지도 몰랐다. 수업도 같이 듣고 학식도 같이 먹고. 날이 좋은 날에는 잔디밭에서 광합성을 하며 평화로운 오후를 보냈다. 한창 유행하던 싸이월드에서 둘만의 비밀 클럽을 만들어 우리의 첫 연애도 열심히 기록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내가 생각했던 풋풋한 대학생의 연애였달까. 한 살 연하였던 한은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그가 누나라고 그윽하게 부를 때면 이승기의 '누난 내 여자니까~' 노래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괜히 입술 주변이 움씰댔다. 같은 과 다른 캠퍼스 커플이 모두 결별을 선언할 때에도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알콩달콩한 연애를 이어갔다.


하지만 언제나 새내기처럼 풋풋할 것만 같던 우리 사이에도 돌연 1년 만에 권태기가 찾아왔다. 한은 권태기의 돌파구를 나와의 대화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았다. 바로 위치 기반 채팅앱 '하이데어'였다. 2010년대 초반에는 스마트폰이 지금처럼 많이 보급되어 있지 않을 때인 데다 모바일 앱이 활발하게 이용될 때도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스마트폰에 무지한 2G 폰 사용자였다. 한은 그 사실을 곧잘 이용했다. "이거 어차피 말해도 누난 모르는 거야~ 이런 게 있어."라며 무시했다. 나는 스마트폰 작동법이나 하이데어가 뭔지는 몰랐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 내 기분이 찜찜하고 불쾌하다는 것. 한이 변했다는 것. 당시에는 하이데어가 뭔지 찾아볼 생각도 안 했지만,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단순한 오락용 앱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과 채팅도 하고, 만날 수도 있는, 2010년 판 데이팅 앱이었다는 사실을.


한의 집에서 데이트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한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데 그의 휴대전화에 발신자 초꼬초꼬♥ 로부터 온 메신저 팝업창이 떴다. "이따 어디서 볼까요?"라는 메시지였다. 뭐지 이건?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발신자와 내용만큼은 확실했다. 한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덮었고 나는 곧바로 초꼬초꼬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그냥 아는 친구라며 말을 흐렸다. 자기는 피곤하니까 누나는 이제 빨리 집에 가라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등에 떠밀리듯 집으로 향하는 길, 불쾌한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스스로가 답답했다. 그 사람은 누군지, 초꼬초꼬 옆 하트는 뭔지, 이 사람은 누군데 너한테 왜 어디서 보자고 물어보는 건지 집요하게 물어보지 않은 나를 탓했다. 한은 끝끝내 대답을 하지 않을 사람이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모르는 친구가 한 명쯤은 있을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하는 편을 선택했다. 그날 저녁 한은 내 전화에도 문자에도 오랫동안 답이 없었다. 한과는 그 일이 있은 후 반년 정도 더 연애를 하다 헤어졌지만 나에게는 그 날의 장면이 오래도록 남았다. 한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과 말투까지도 오래오래. 어쩌면 그 날은 누군가를 향했던 깊은 신뢰가 툭하고 끊어진 날이자 내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던 최초의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인연이 아니었던 그를 보내고 그럼에도 어딘가에는 좋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말을 믿고 싶었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는 말. 약간의 희망을 걸고 만났던 L과 C와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L과는 100일이 채 안 되는 기간을 만났는데 그는 짧은 연애 기간 동안 자신의 SNS에 다른 여자와 만난 사진을 올렸다. 누구냐고 묻자 우물쭈물하다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다행히 그와는 깊은 감정을 나눌 만큼 애틋한 사이가 아니어서 누군지 캐물으며 추궁하는 편보다 "헤어지자."하고 쉽게 끝을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거나 상처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1년 동안 만난 C는 나와 만나는 도중 다른 사람과 연락하는 것을 들켰다. C는 아무리 추궁해도 말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특히 자신이 불리하거나 불편한 대화를 몹시 싫어해서 입을 꾹 다문 채 묵비권 행사가 주특기인 사람이었다. 나는 해명조차 듣지 못한 채 그 사건은 어영부영 넘어갔고, 우리의 연애도 어영부영 몇 개월 간 이어지다 결국 헤어졌다.


내가 만났던 구 남자친구들은 연애 도중 다른 누군가를 만났다. 바람은 분명 그들의 잘못이 명백한데, 나는 끝내기만 하면 될 일이었는데. 이런 불행의 우연이 반복되자 나는 바람의 원인을 나에게 돌리곤 했다. 자존감은 점점 더 낮아졌고 누군가를 만날 때 집요하게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차라리 들키지나 말면 의심도 안 할 텐데 허술하게 들켜서는 나의 속을 뒤집고 의심하게 만들었다. 성경 구절에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으뜸은 사랑이라던데, 이쯤 되자 나에게는 ‘믿음'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다. 믿음 없는 사랑과 소망이 무슨 소용일까. 어쨌든 상처뿐인 이별들을 통해 얻은 것도 있었다. 상대의 표정과 행동에서 미묘한 변화를 알아채려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까지.


최근 읽은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에서 인터뷰이 유진목 작가의 말이 인상 깊어 옮겨 본다.


저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요. 남들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염두에 두죠.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요.  역시 다른 사람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잖아요. (중략) 열등감을 심하게 지닌 적이 한때 있었어요. 그런데  열등감을 계속 가진 채로는 내가 양지의 삶을   없겠더라고요.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정신적으로 양질의 삶을   없겠다는 느낌이요.

- 이슬아 <깨끗한 존경> p.182


누군가를 진실로 믿지 못하는 내가 정신적으로 양질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추락한 자존감을 회복하고 충만한 사랑을 누릴 수 있을까. 마음이 이토록 불행한데, 나 자신도 사랑할 수 없는데 내가 타인을 사랑하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연애를 하면서도 타인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전전긍긍하며 불행했던 지난 연애가 스쳤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진실되게 믿고 사랑하며 정신적으로 양질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현재의 나도 오버랩됐다.


얼마 전부터 만나고 있는 G와는 연애 초반이지만 왠지 그와 오래오래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부디 좋은 사람이기를, 나와 오랫동안 인연이 닿기를. 지난 연애의 상처로 그를 지독하게 의심해서 괴로울 때도 있다. 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굳게 닫아버린 '믿음'에 대해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은 G가 아닌 철저히 나의 몫이라는 것을.


올해는 누군가를 믿지 못한 채 자존감 낮은 연애를 한 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라던데, 이제는 나도 묵은 연애사를 털고 내면의 작은 변화를 다짐해볼까 한다. 더 이상 지나간 연애사에 굴복하지 말자고. 누구보다 정신적으로 양질의 삶을 누려 보자고. 나 자신을 더 믿고 사랑해보자고. 그래서 남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불행했던 연애는 10년이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자존감 낮은 연애는 그만 끝내고 음지에서 나와 양지의 사랑을 누려보자고. 정신적으로 양질의 삶을 살아보자고. 양지의 사랑으로 내 변화의 싹을 틔워준 G를 위해 나도 용기를 내 진심을 다해 믿어보려 한다. 그를, 그리고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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