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경쟁률은 높지만, 그럼에도 희망은 늘 있다.
올해부터 시작한 일본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문득 상해에서 얼마나 살았나 궁금하여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본다. 지금이 2018년, 작년 여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던 것이 2017년, 그 회사를 입사했던 게 2016년, 교환학생으로 처음 상해에 왔을 때가 2015년.
근 3년 정도 상해에서 지내고 있다. 그동안 행복한 일도, 힘들었던 일도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회사 생활이 마음에 꼭 들지는 않았을 뿐, 대인 관계나 개인적인 삶의 만족도는 한국에서 살 때보다 훨씬 높다.
한국보다 글로벌한 환경에서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축복이었다. 이전에는 존재조차도 모르던 세계를 만난 느낌이랄까. 종종 우스갯소리로 상해에서는 매주 송별회나 환영회가 있다고 말하고는 하는데,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이유로 모이는 곳이 상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상하이를 떠나 다른 곳으로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이제 상하이살이가 한층 더 편하고 안정적인데도 말이다. 직업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이기도 하고.
중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내가 중국에서 직장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자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상하이처럼 글로벌한 도시에서는 많지는 않지만 영어/한국어 포지션이 간혹 있기는 하다. 문제는 나의 전문 분야가 아니거나 시니어 레벨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나와 같은 주니어 레벨의 경우, 일단 자리도 많지 않을뿐더러 월급도 적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상해에서 계속 지냈던 이유는 사생활이 만족스러워서이지, 커리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서울로 돌아가서 정식으로 공채를 준비해볼까도 종종 생각했었다. 물론 그때마다 운이 좋게도 왜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되었는지 다시금 일깨워주는 일화들이 있었기에 실행으로 옮긴 적은 없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학 졸업 후 아시아에서 직장을 찾으면서 느끼게 된 점이 몇 가지 있어 적어보고자 한다.
1. 전문직/기술직 포지션이 일단 그 양이 많다.
: 나처럼 마케팅, 홍보, 저널리즘 같은 커뮤니케이션 직종은 외국에서 자리잡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나 언어가 현지인 수준에 못 미치거나, 현지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경험이 없다면, 현지 시장을 위한 마케터 포지션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로컬/글로벌 회사에서 한국시장을 위해 고용하는 경우라면, 상황은 다르다. 문제는 이러한 케이스가 생각보다 아주 많지는 않다는 것. 또한 대부분 적어도 2-3년 차의 경력자 혹은 인턴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아, 중간에 있는 Fresh graduate나 주니어 레벨들은 운이 좋지 않으면 본인이 원하는 마케팅 홍보 직종에서 근무하기 힘들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포지션은 상대적으로 고객상담, 엔지니어링, 디자인, 회계, 금융, 인사관리, 프로그래밍, 무역 등의 전문직이나 기술직이 많다. 언어나 문화 장벽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비해 낮은 직종들이다.
2. 인턴부터 시작하기
: 아무래도 회사 입장에서는 주니어라면 곧바로 풀타임 포지션으로 고용하는 것보다는 인턴을 선호하는 게 당연할 것 같다. 인턴을 통해 본인의 실력과 기술을 보여준 후, 회사에 신뢰감을 보여주는 게 더 풀타임 오퍼 받기가 빠를 듯.
3. 사실 비자 발급 여부가 제일 중요하다
: 사실 취업이 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비자 발급 가능 여부이다. 물론 정말 간절히 원하면 안 되는 건 없다. 하지만 꼭 각 나라의 비자 정책에 대해 알아보고 지원하도록 하자.
4. 어딜 가나 중국어 요구, 영어는 그냥 기본
: 요즘 아시아권의 APAC 시장 마케팅, 홍보 관련 포지션을 찾다 보면, 중국어는 당연히 필수라는 사실을 자주 깨닫는다. 그냥 에펙 = 중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 아시아에서는 현재 중국시장이 가장 주목받고 있고 앞으로 근 몇 년간은 그러지 않을까 싶다. 가끔씩 중국인으로 안 태어나서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허허
이제는 정말 영어 잘한다고 자랑스러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아서 그냥 영어를 잘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언어는 기본이고 본인의 직종에 맞는 커리어와 스펙을 개발하는 게 필수.
한국어 + 영어 + 중국어 + 전문성 = 대박!
5. 면대면 인터뷰를 강추
이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긴 한데, 현실적으로 면접 1개를 위해 출국할 수도 없기에 이해는 한다. 그렇지만 현지에서 구직활동을 하면 더 많은 연락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내 경험 상으로는..
6. 링크드인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
한국의 채용시장은 시니어 레벨이 아닌 이상 헤드헌팅이 아닌 이상 주로 공채나 지원을 통해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외국계 기업은 헤드헌팅 업체를 고용하거나 직접 인사팀이 나의 이력서를 들여다보는 경우가 꽤 있어, 이럴 경우를 대비한 자기 홍보는 필수다. 이것도 결국은 하나의 서치 엔진이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직종의 키워드 및 태깅을 확실히 해야 검색 시 상위 노출될 확률이 높다.
7. 물불 가리지 말고 도전
이렇게 맨땅에 몇 년 헤딩하다 보니 나도 이제는 부끄러운 것도 없고, 악착같이 HR 팀에게 follow up 이메일을 보내거나 아예 디렉터에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취한다. 이 세상에 나 말고도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은 많겠지만, 내가 나의 열정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기회를 그들보다 먼저 잡을 수 있다면, 이미 가산점을 받은 셈.
8. 긍정적으로 생각하되, 냉정하게 잡 마켓에서 본인의 위치를 확인해라
본인이 열심히 구직활동에 임하기만 한다면, 늘 길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자신의 이력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일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내가 마케팅 직종에서 일해와서 그런지 나는 늘 그 시장에서 나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보고는 했는데, 그 시장에서 나의 경쟁자 그룹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나만의 Unique Selling point를 찾는다. 이건 구직자라면 누구나 생각해 보야할 문제다.
상해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직장이 만족스러웠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회사 다니는 건 누구나 "그냥" 싫을 수 있지만, 나 같은 경우 언어와 비자, 문화 차이 등의 이유로 좁은 선택지에서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던 상황들이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첫 직장을 시작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이 보다 나은 커리어를 보장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 '여인의 향기'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실수를 하고 스탭이 꼬이면, 그게 바로 탱고야”. 탱고 스탭이 엉키면, 그때부터 새로운 탱고가 시작된다는 말처럼, 나는 여기저기 엉킨 실타래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지만 덕분에 나만의 독특한 이야기와 차별화된 경력을 갖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만의 길을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