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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정 Feb 26. 2024

광기 위에 지은 적자생존의 '드라마'

리어왕을 통해 만나는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


넷플릭스 리드 헤이스팅스의 여정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닮았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연출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현대판 파우스트일지 모르고, 오징어 게임은 현실에 펼쳐진 단테의 지옥이다. OTT는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를 창조했다. 누군가에는 멋진 신세계지만 누군가에게는 실낙원인 이곳. 이 경계의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 작품, 브랜드를 16주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매주 2편의 신작과 명작 추천은 별책부록이다. 부디 이 책이 플랫폼의 타율을 올리고, 제작사의 구종을 늘리고, 창작자의 구위를 높이는 작업이 되기를. 그리고 모든 시청자에게 시간의 자유가 함께 하기를. 뉴스레터 구독


프롤로그

도박처럼 올려진 혁명의 깃발

야망이란 이름의 오벨리스크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하원의원

권력 옆을 걸어가는 그림자들

꿈처럼 무너진 야망의 금자탑

에필로그


프롤로그

내가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는 자가 누구란 말이냐? - 리어왕 ‘1막 4장’ 中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King Lear, 이하 리어)’은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식들에게 참혹한 운명을 맞이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딸들의 아첨에 현혹되어 진실된 사랑을 외면하고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리어는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처절한 비극성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이하 카드)’의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 역시 권력에 집착하는 정치인이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거짓말, 배신,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냉혹한 인물이다. 그는 리어왕처럼 권력에 대한 과도한 욕망으로 인해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의 권력욕과 배신, 복수 등을 그리고 있고 과도한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한다는 점에서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공통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리어가 권력욕이 인간을 어떻게 몰락으로 이끌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반면,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인간의 타락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다.


몰락과 타락, 수동과 능동의 비율 차이가 있을 뿐 과도한 욕망의 결과는 결국 나락이다. 그럼에도 광기 어린 인물의 이야기는 언제나 관객과 시청자를 매료시킨다.



도박처럼 올려진 혁명의 깃발

하우스 오브 카드는 직역하면 ‘도박의 집', 즉 도박장이다.


카드의 원작은 ‘마이클 돕스(Michael Dobbs, 이하 돕스)’의 소설이다. 그는 영국의 정치인이자 작가로 상원의원을 역임한 귀족 남작이다. 그는 가디언지가 ‘웨스트민스터의 아기 얼굴을 한 청부살인업자’라고 묘사했을 정도로 정치적 수완이 좋았던 인물이다. 그랬던 정치인이 왜 소설가가 되었을까? 동기는 정치적 도박이었다.

 

1984년 브라이튼 호텔 폭탄테러에서 살아남은 돕스는 마가렛 대처 정부의 핵심 참모로 활약하면서 정치 인생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러나 결국 비참하게 권력에서 밀려났고, 1989년부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집필하는 도박을 감행하고 마침내 성공한다.


그의 정치 인생에 다시 날개를 달아준 건 소설의 영상화였다. 카드를 처음 영상으로 만든 건 영국의 BBC로, 1990년 돕스의 소설을 4부작 정치 드라마로 제작한다. 이후 후속작도 각각 4부작으로 방영되었다. 드라마는 주인공 ‘프랜시스 어카트(Francis Urquhart, 이하 카트)’를 통해 권모술수로 권력의 꼭대기까지 올라간 이후 승리에 도취되어 몰락하는 인물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카트는 권력에 목마른 악마이면서 혁명의 전령처럼 묘사된다. 그는  악마처럼 거짓말, 배신, 살인까지 서슴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해 나가는 인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 정치 시스템의 비효율성에 대한 불만과 개혁 의지를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부패한 정치 체제를 개혁하기 위해 타락하게 되고, 결국 몰락한다.


드라마 시리즈는 성공했고, 돕스를 존 메이저 총리 정부의 부당의장으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고문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돕스는 드라마 주인공 카트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영국의 시청자는 이 모순의 드라마에 매료되었고, 입헌군주제 왕국을 뒤흔든 도박장이라는 이름의 깃발은 10년 후, 대통령제의 제국 ‘미국'의 한 복판에 깃발을 꽂고 탑을 세운다.



야망이란 이름의 오벨리스크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 D.C.’고 그 상징은 오벨리스크(Obelisk)의 형태로 지어진 ‘워싱턴 기념비(Washington Monument)'다. 높이 169m의 이 웅장한 기념비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을 기리는 건축물로 수도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다. 1889년에 에펠탑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고, 전망대에서는 국회의사당, 링컨 기념관, 알링턴 국립묘지, 백악관까지 내려다볼 수 있다.


원래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왕조가 숭배한 태양 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였다. 한자로는 ‘방첨탑(方尖塔)’이라고 쓰는데, 그 특유의 뾰족한 모양 때문이다. 신앙의 상징, 수도의 랜드마크 그리고 권력의 탑은 드라마로 다시 뾰족하게 솟아난다. 미국판 카드에는 이 기념비가 주인공 ‘프랜시스 언더우드(Francis Joseph "Frank" Underwood, 이하 프랭크)’가 추구하는 권력의 상징처럼 등장한다.


넷플릭스는 현재 세계 1위의 OTT 스트리밍 플랫폼 제국이다. 그들의 고향은 실리콘밸리다, 할리우드가 아니었다. 1997년 DVD 배송사업을 시작한 그들은 철저하게 영화계의 이방인이었다. 10년 후, 이방인은 고향을 떠나 큰 모험을 시작한다.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으로 사업을 대대적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리고 2013년, 이방인이 주인이 되는 결정적 사건이 발생한다. 미국판 카드의 기록적인 흥행이었다.


카드는 넷플릭스의 첫 오리지널 드라마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엄밀하게 말해 넷플릭스의 첫 번째 오리지널 작품은 2012년에 방영된 '릴리 해머(lilyhammer)'이지만, 공동제작이었고 큰 흥행을 기록하지 못했다. 카드는 ‘파이트 클럽'의 감독 ‘데이비드 핀처'와 오스카 수상배우 ‘케빈 스페이시’를 주연으로 스트리밍 드라마 최초로 에미상 감독상, 촬영상, 캐스팅상과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OTT 역사에 기념비적인 시리즈가 된다.


천체의 모든 운행에 걸고 맹세하건대, 이 자리에서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부인하겠다. 핏줄이라는 것도, 근친이라는 것도. 지금부터 영원히 내 마음은 너를 이방인으로 여기겠다. - 리어왕 ‘1막 1장’ 中


현재 넷플릭스의 본사는 미국 실리콘밸리 북쪽의 ‘로스가토스(Los Gatos)’와 남쪽의 로스엔젤레스 할리우드 양쪽에 모두 위치해 있다. 배척받던 이방인은 더 이상 없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하원의원

카드의 남자 주인공은 ‘프랜시스 조지프 언더우드(이하 프랭크)’로,  1959년 11월 5일 태어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개프니 출신의 정치인이다. 사람들은 그를 ‘프랭크'라고 부르지만, 그는 ‘프랜시스'라고 불리는 걸 좋아한다. 그의 정당은 민주당이지만 현재 얼마 남지 않은 남부 민주당원이다.


프랭크는 ‘센티널 사관학교(The Sentinel)’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민주당 하원의원으로 원내총무를 맡고 있다. 저소득층 백인인 ‘푸어 화이트(Pure White)’ 계층이었지만, 20여 년의 끈질긴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입지전적인 정치인이다. 그는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당과 정부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프랭크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는 정적을 제거하는 음모를 꾸미고, 비밀리에 거래를 진행하며,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악마와도 같은 인물이다. 그는 목표를 위해 무자비하게 행동하는 냉혹한 현실주의자로, 정치가 이상적인 천국이 아니라, 현실적인 타협과 거래가 필요한 지옥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프랭크는 비상한 머리와 카리스마를 지녔으며, 약점 잡히는 것을 싫어한다. 또한 상황을 통제하면서 회유나 유혹에 탁월하며, 협박이나 속임수에도 능한 인물이다. 그리고 늘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날카로운 언변으로 주변을 압도한다. 그는 악마처럼 행동하지만, 동시에 모든 인간이 가진 욕망을 상징하는 화신처럼 느껴진다.


고통에는 2가지 종류가 있지. 하나는 사람을 강하게 하는 종류의 고통, 아니면 쓸모없는 고통. 괴롭기만 한 그런 고통이지. 난 쓸모없는 건 용납하지 않아. 권력은 부동산과 유사하지. 위치가 중요해. 핵심의 원천에 가까울수록 가치가 높아지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력보다 돈을 선택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하지만 돈은 10년 후면 무너질 고급 저택이고 권력은 몇 백 년은 유지될 석조 건물이야. 나는 이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도무지 존중해 줄 수가 없어. 규칙은 하나뿐이야. 사냥하든가, 사냥당하든가.  - 카드 ‘프랭크의 대사’ 中


프랭크는 단순한 권력지향형 인물이 아니다. 마키아벨리즘에 입각한 군주처럼 보이지만 소박한 바비큐를 즐기고, 아내와의 조촐한 스모킹 타임을 즐기는 양성애자다. 거리감 느껴지는 값비싼 로잉 머신으로 운동을 즐기지만, 블루스 음악을 사랑하고 아이들처럼 비디오 게임에 심취하는 우리 곁에 있을 법한 인물이 바로 프랭크다.


그의 곁에는 늘
권력의 유혹을 탐하는
그림자들이 함께 한다.



권력 옆을 걸어가는 그림자들

프랭크의 진실한 조력자는 많지 않다. 프랭크의 아내 ‘클레어 언더우드(Claire Underwood, 이하 클래어)’는 래드클리프 대학에서 환경보건학과 화학을 전공하고, 하버드에서 공공보건학 석사를 취득한 재원으로 비영리 기구인 ‘깨끗한 물 운동본부(Clean Water Initiative)’, 통칭 CWI를 운영 중이다. 클래어는 대학 재학 중에 프랭크를 만났다.


프랭크는 가난했지만, 클레어는 부유했다. 프랭크가 야망의 정치인이라면, 클레어는 욕망의 전략가다. 프랭크가 태양이라면 클레어는 달이고, 둘은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를 지키고 맞서는 동지이자 경쟁자다. 클레어는 남편의 위기를 가장 앞서 해결하지만, 가장 큰 위기를 선물하기도 한다.


이처럼 클레어와 프랭크의 관계는 조력과 배신이 뒤섞여 흔들리는 배처럼 위험하다. 둘은 서로의 야망을 공유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파트너이지만, 동시에 서로를 이용하고 배신한다. 둘은 분명 서로에게 헌신하지만, 동시에 경쟁하고 권력을 다툰다. 클레어는 독이 밴 꽃이지만 아름답다.


프랭크의 심복은 ‘더글러스 스탬퍼(Douglass Stamper, 이하 더그)’다. 더그는 프랭크의 비서로 그림자처럼 일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그의 프랭크를 위한 충성심은 살인 청부도 마다하지 않으며, 프랭크를 위해 자신의 간까지 내놓겠다고 말하는 가신 중의 가신이다. 클레어가 그림자의 머리라면, 더그는 몸통이다.


클레어와 더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조력자가 프랭크 곁을 스쳐간다. 워싱턴 헤럴드의 야망 있는 젊은 기자로 프랭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조이 반스, 펜실베이니아 주 하원의원으로 주지사가 되기 위해 프랭크에 충성하는 피터 루소, 백악관 비서실장 린다 바스케즈와 현 대통령 개럿 워커까지, 그들 모두 프랭크를 만나 나락으로 떨어진다.


무적의 프랭크는 적이 없을까?


그를 나락으로 끌어내리려는 빌런은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살인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워싱턴 헤럴드의 정치부 기자 루카스 굿윈과 편집장 톰 해머슈미트, 프랭크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하원의원 재클린 샤프와 그의 연인 로비스트 레미 댄튼, 검사 헤더 던바와 억만장자 레이먼드 터스크 그리고 공화당 대선 후보 윌 콘웨이와 러시아 대통령 빅토르 페트로프까지. 하지만 그들 모두 프랭크를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아나? 다른 이들의 아픔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가차 없는 실용주의 덕분이야. 내가 위선자라고 생각해?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부인하지 않을 거야. 권력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위선으로 가득 차있지. 당신들은 내가 뭔가를 대표하기를(stand up for) 바라지 않아. 그저 내가 일어나기를(stand) 바랄 뿐이지. - 카드 ‘프랭크의 대사’ 中



꿈처럼 무너진 야망의 금자탑

우린 테러에 복종하지 않아. 우리가 테러를 만들지. - 카드 ‘프랭크의 대사’ 中


카드에는 프랭크의 방백이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의 방백은 시청자들에게 주인공의 속마음이나 과거 등을 고백하는 장치인데, 이는 연극에서 무대 밖의 현실 세계와 무대 위 극 중 세계를 구분하는 ‘제4의 벽(The fourth wall)’이라는 개념에서 유래했다. 이 벽을 깨는 대사를 '메타발언(메타픽션적인 발언의 준말)'이라고도 부르는데, 쉽게 말해 극 중의 인물이 벽 너머의 독자, 시청자, 작가를 인지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방백은 시즌2 마지막 화에서 절정을 이룬다.


마침내 대통령이 된 프랭크가 집무실에 도착해 대통령의 책상을 두 번 두드리는 장면이다. 소름 돋는 이 명장면은 향후 넷플릭스 타이틀 영상의 모티브가 된다. 지금은 넷플릭스의 상징이 된 붉은 ‘N’ 자 로고와 함께 나는 ‘두둥' 소리는 ‘걸어 다니는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영화음악의 대가 ‘한스 짐머'의 작품이다. 넷플릭스는 그에게 극장용 버전의 사운드마크 버전의 작곡을 의뢰했고, 그렇게 명장면은 제국의 상징으로 재탄생한다.


방백은 메아리 없는 외침이다. 관객에게는 들리지만 다른 배우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방백은 독백보다 외롭다. 모놀로그(Monologue)는 장면이 되지만, 어사이드(Aside)는 먼지처럼 흩어질 뿐이다. 그럼에도 카드의 방백은 달랐다. 배송업을 하던 스타트업을 엔터테인먼트 왕국으로 일으켜 세웠고, 마침내 스트리밍 제국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멋진 방백을 외치던 광대는 카드에 없다. 흔적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무에서 생기는 건 무뿐이지.
Nothing will come of nothing.


영원한 영광은 어디에도 없다. 2017년, 할리우드를 뒤흔들었던 성범죄 사건이자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된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파문이 카드를 덮친다. 당시 카드는 시즌4까지 승승장구했고, 2017년 5월 30일에 시즌5를 성공적으로 방영하고, 야심 차게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10월 30일, 배우 앤서니 랩이 14살 당시 26세였던 케빈 스페이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결국 11월 3일, 넷플릭스는 "케빈 스페이시를 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로듀서에서 해임하고 앞으로 넷플릭스와 케빈 스페이시가 함께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2018년, 케빈 스페이시를 뺀 상태로 마지막 시즌의 제작이 결정된다. 주인공은 클레어였고, 프랭크는 2017년 사망했다고 쓰여 있는 무덤의 묘비로만 등장한다. 제국의 영광을 만든 영웅이 자연스럽게 고인(故人)으로 처리된 것이다. 그리고 시즌6는 초라한 성적으로 막을 내린다.


그렇게 2013년 세워진 영광의 금자탑은
꿈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다.



에필로그

가진 것 이상으로 보여주지 말고,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하지 말며,
가진 것을 모두 빌려주어서는 안 되며,
걷기보다는 말을 타고,
알게 된 것을 전부 믿지는 말고,
가진 것을 모두 던지지 말아야 하니.
- 리어왕 ‘광대의 충고’ 中


리어왕의 결말은 권력, 과오 그리고 후회의 짧은 여정을 그린다.


광대는 리어의 어리석음을 노래하지만, 왕은 그런 광대를 비웃는다. 결국 리어왕은 두 딸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로 쫓겨난다. 왕에게 충성했던 막내딸 코딜리어는 아버지를 구하게 위해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모든 것을 잃은 리어왕은 막내의 시체를 끌어안고 오열한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후회하며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라고 외치고 절명한다.


카드의 주인공이었던 케빈 스페이시는 2023년 7월 26일 그의 생일날 모든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다. 그리고 성탄절에 터커 칼슨과의 대담 영상을 트위터에 업로드한다. 카드의 프랭크로 분한 인터뷰 연기 영상이었다. 그는 이 영상에서 제4의 벽을 뚫고 넷플릭스의 성급했던 조치를 과감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어떤 작품에도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카드에 프랭크는 영원히 없다, 하지만 카드는 또다시 태어나고 있다.


카드를 잃은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Squid Game, 이하 오겜)'을 탄생시켰고, 시청자는 금세 카드라는 상처를 잊었다. 오겜 시즌2는 2024년 하반기에 공개된다. 흥행 여부를 떠나 오겜은 카드가 걸었던 무한성장이라는 길을 만날 수밖에 없다. 스핀오프 예능도 공개되었고, 시즌3은 이미 제작이 확정되었다. 넷플릭스는 여전히 세계 1위의 OTT 제국이다. 당분간 그들을 위협할 적수도 보이지 않는다.


2022년 11월, 넷플릭스는 기존 요금제보다 저렴한 광고형 멤버십을 출시했다. 이 요금제로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더 이상 시청할 수 없다. 이렇게 세상은 또 계급 지어진다. 제국은 경계를 넘을 때 완성되고, 경계를 그을 때 무너진다.


과오와 후회가 없기를,
사랑이 승리하기를.





★ ★ ★ ★  충돌하는 가족, 완성되는 사랑


★ ★ ★ ★  떠나야 그리운 어느 가족의 탄생




미움은 기세가 좋은 순간에서조차 늘 혼자다. 반면에 도망치고 부서지고 저물어가면서도 사랑은 지독히 함께다.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 아이유 ‘Love wins all’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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