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惡黨 Villain

왜 그렇게 심각해?

by 생각
왜 그렇게 심각해?

다크나이트 ‘조커’의 대사 中


악당은 언제나 내 주변에 있다. 진짜 악당은 내가 아는 사람이다. 모르는 악당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정말 두려운 악당은 나를 잘 아는 사람이다. 친할수록 크게 싸운다. 가족과 가장 많이 싸우고, 친구와 가장 크게 다투며, 동업자와 가장 심하게 반목한다. 상대를 잘 알수록 악당이 될 확률이 높다.


동업은 미래의 악당과 사업을 하는 일이다. 동업은 영원할 수 없다. 동업자와는 언젠가 헤어진다. 잘 만나는 것보다 잘 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잘 헤어지기 위해선 계약서를 써야 한다. 계약은 악당을 동지로 바꿔주는 필수 아이템이다. 계약서를 쓸 때만큼은 힘껏 싸워야 한다.


해고는 악당의 일일까? 경영에서는 직원을 만나는 과정을 채용(recruit)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헤어지는 과정을 해고(discharge)라고 한다. 직원 관점에서는 취업(get a job)과 사직(resign)이다. 일단 회사와 직원이 쓰는 용어가 다르다. 그래서 서로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 쿨하게 헤어질수록 다시 만날 확률이 높다.


채용은 좋고 해고는 나쁘다는 인식은 편견이다. 사랑도 그렇다. 첫사랑은 대부분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만나는 순간의 설렘이 첫 정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럼 가장 나쁜 사랑은 뭘까? 바로 헤어지기 직전의 사랑이다. 좋은 채용은 첫사랑이다, 그리고 해고는 바로 직전의 사랑이다. 결국 해고는 감정의 문제다.


해고는 회사가 직원을 사직시키는 일이다. 해고의 대부분은 고용주와 고용자의 감정 갈등에서 비롯된다. 서로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일어난다. 보통 직원이 사직서를 내면서 갈등이 마무리된다. 이혼한 사람들에게 이혼사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성격차이라고 말한다. 해고의 사유도 비슷하다. 직원과 상사의 성격차이가 대부분이다. 직원과 상사는 가족이 아니다.


술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우리는 가족이다' '영원히 함께 하자' '끝까지 가보자'는 등의 끈끈한 가족애를 강조하는 상사들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회사에서도 이직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왜 그럴까? 일은 공(公)이고, 생활은 사(私)다. 공적인 영역에 사적인 감정이 섞여 들면 조직의 형평성이 썩는다. 이런 현상을 흔히 적폐(積弊)라고 부른다. 공과 사를 뒤섞는 일은 경영에서 철저하게 배재되어야 하는 적폐다.


그래도 가족적인 회사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적인 회사의 분위기가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변한다. 회사의 상황이 변하면 대표의 감정도 변한다. 가족 같은 회사도 언제든 전쟁터로 변할 수 있다. 직원들의 심정은 복잡해진다. 분명히 우리는 가족이라고 말해놓고 왜 저렇게 돌변하지? 대표의 마음도 분노로 휩싸인다. 회사가 힘들어지면 가족들이 함께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나만 힘들어야 하지? 가족경영의 모순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악당이 되는 순간이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는 것이 일상이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감정의 골은 깊어진다. 결국 좋은 해고란 감정의 골을 줄이는 일이다. 감정의 골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만나는 순간 미리 헤어질 준비를 해야 한다. 이별을 준비하는 일, 이것이 해고의 첫 번째 기술이다. 경영자는 늘 고용탄력성을 만들어야 하고, 직원들은 늘 다음 선택지를 준비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해고는 감정을 남긴다. 차라리 서로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자주 하자. 평소 '우리 회사 최고지?' '사장님 멋져요' '우린 잘될 거예요' 이런 대화 대신 '우리 헤어져도 만나요' '떠나도 응원할게요' '잘되면 서로 돕자' 등의 이별 언어를 습관화하자. 이것이 해고의 두 번째 기술이다. 대표는 직원들이 성장하면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대부분의 해고는 경영자의 책임이다. 맞지 않는 사람을 채용하는 일, 회사의 경영상태를 악화시키는 일, 구성원 간의 갈등을 방치하는 일, 고객의 불편함을 무시하는 일, 이런 일은 모두 대표의 소통이 부족해서 발생한다. 작은 기업일수록 대표의 책임이 크다. 큰 기업처럼 인사시스템을 잘 구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잘 구조화된 대표의 합리적인 경영철학이 작은 기업의 큰 인사(人事) 정책이다.




어려운 일일수록 강한 의지가 필요하지.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타노스’의 대사 中


사업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일이다. 적은 돈을 써서 큰돈을 버는 일이다. 그래서 사업가는 악당이다. 악당은 초라하지 않다. 악당은 누구보다 품격 높게 행동한다. 악당의 말은 달콤하고, 행동은 세련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돈을 투자하는 일에 서슴이 없다. 우리 모두 악당의 심장을 가지고 살아간다.


악당은 인문학을 좋아한다. 어느 종편채널에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주제로 강연쇼가 펼쳐졌다. 연사는 당시 피렌체의 상황이 대한민국의 현재 정세와 너무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주변의 밀라노, 나폴리, 로마, 베네치아 같은 강대국의 패권 싸움에 휘말렸던 피렌체와 현재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 대한민국의 관계가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념, 제도, 종교, 지형학적 위치도 다를 뿐 아니라 인구 10만 명, 대한민국 면적의 1/1000에 불과한 작은 공국(公國)에서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걸까? 심지어 피렌체는 분단국가도 아니었다. 이런 식의 공부법이 기업을 악당으로 만든다.


기업들은 인문학에서 창조를 찾는다. 창조는 신의 영역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인간(人間)의 학문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여전히 인문학을 사랑한다. 2000년 초반, 창조를 통해 성과를 내자는 한 대기업의 캐치프레이즈가 기업의 인문학 열풍을 탄생시켰다. 인문학의 본질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인간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들은 현재의 인간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열광했다.


그럼에도 인문학은 소중한 학문이다. 성과와 전진만 외치는 기업문화에 작은 휴식이 되어주었다. 뒤를 돌아보고 과거에서 미래를 음미하라는 메시지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인문학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인문학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어떠한 예측도 제시하지 못했다. 우리가 공부한 인문학에는 군주만 있고 민주가 없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인문학은 대한민국 기업들에게 인간의 존엄을 가르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대기업은 갑질의 상징이다. 대기업이 인문학을 조금만 진심으로 공부했다면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돈 버는 인문학 강사보다 존경받는 인문학자가 많아지는 일에 투자했다면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결국 기업의 인문학은 갑질을 줄이지 못했다. 악당을 포장하는 좋은 액세서리로 전락해 버렸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의 화두는 생존이다. 언제 누가 망할지 모른다. 악당도 영웅도 생존만이 살 길이다. 중국 유럽국제경영대학원 교수 겸 중국혁신센터 소장인 조지 입(George Yip)은 이렇게 말했다.


행동이 생각을 만든다. 그 반대가 아니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위해선, 일단 행동을 하라, 생각은 그다음이다.


생존의 시대에는 착한 악당이 되어야 한다. 착한 악당이란 망하지 않는 사람이다. 기업이 망하면 악마가 된다. 악마가 되지 않으려면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 직원과 파트너가 존엄해져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인간성이 회복되고, 행동하는 기업문화가 만들어진다. 온전한 인간으로 대접받는 직원과 파트너만이 고객을 인간으로 대접할 수 있다. 직원을 폭행하고, 여직원을 성추행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문화는 지옥이다. 지옥은 악마의 고향이다. 악마가 되지 않으려면 인문학의 본질로 돌아가 인간학을 배워야 한다. 인문학은 인간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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