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밑에서 최고가 된다.
최고의 밑에서 최고가 된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대사 中
수가 높은 사람을 고수라고 한다. 고수의 반대는 하수다. 하수는 신의 한 수를 꿈꾼다. 고수는 신의 한 수를 믿지 않는다. 신의 한 수는 우연이다. 고수는 우연을 믿지 않는다. 고수는 의도를 가지고 인연을 기다린다. 신의 한 수는 말 그대로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다.
수는 포석이다. 포석이란 상대의 움직임에 대응하면서 행동을 예측하는 일부터 상수를 계산하고 변수를 예상하는 모든 과정이다. 수가 많은 사람이 경쟁에서 유리하다. 고수는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수는 집중이다. 고수는 한 수 한 수에 정성을 다한다. 지금 두는 한 수가 모든 승부의 변곡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인전을 읽었다고 모두 위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사람을 안다고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생존편향(survivorship bias)이란 시스템적으로 성공의 개연성을 과대평가하는 개념을 말한다. 현실에서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극소수의 성공사례만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에 대중들은 생존한 정보만을 가지고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지상 병기로 인해 영국 전투기들의 피해가 매우 커지자 영국군은 무사 귀환한 비행기들의 총탄 흔적을 분석해 방어기제를 강화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돌아온 전투기가 아니라 추락한 전투기를 분석해서 어느 부분이 약한지를 보강해야 했는데, 오히려 생존해서 돌아온 전투기의 멀쩡한 부위를 쓸데없이 더 강화했으니 말이다. 분석의 대상부터가 틀렸던 것이다.
성공의 비법은 모두 허구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사례만을 기준으로 비법을 꾸민다. 하지만 한 분야의 성공 기준을 다른 분야에 접목해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높지 않다. 비법에는 운이라는 달콤함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대부분의 성공은 운이 따라줘야 가능하다. 좋은 수는 성공의 비법이 아니라, 실패를 하지 않는 방법이다.
원래 하수가 걱정이 많지.
고수에겐 놀이터요, 하수에겐 생지옥이지.
영화 ‘신의 한 수’의 대사 中
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아디다스의 경쟁상대는 나이키다. 아디다스는 1924년 독일에서 설립됐고, 나이키는 1964년 미국에서 설립됐다. 두 회사는 60년 넘게 세계 스포츠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전통의 라이벌이다. 후발주자였던 나이키는 아디다스를 이기기 위해 무수하게 많은 수를 써왔다.
20세기 초반까지 세계 스포츠 시장의 맹주는 아디다스였다. 그런데 나이키가 미국에서 설립된 후 판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나이키는 설립 후 30년 동안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북미와 남미, 아시아와 아프리카 시장을 차례로 석권하면서 아디다스의 강력한 라이벌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이런 나이키도 넘기 힘든 산이 있었다. 바로 아디다스가 70년 동안 지배하고 있는 유럽시장이었다. 절묘한 수가 필요했다.
아디다스는 유럽인들에게는 스포츠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유럽 시장은 미국에서 태어난 나이키가 감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견고한 성채였다. 그러나 나이키에게는 두려움이 없었다. 아디다스는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었다. 나이키는 창립 30주년이 되던 1994년, 드디어 유럽시장 진출을 선언한다.
1994년 독일에서 세계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독일은 아디다스의 안방이었다. 나이키는 적진 한가운데서 싸우는 정면승부 전략을 선택한다. 대회 공식 스폰서 타이틀을 획득하고, 출전 선수 2만 명 중 상위 100위 안에 드는 모든 선수를 후원하기로 계약한다. 아디다스 입장에서는 이미 안방을 내어준 꼴이었다.
아디다스의 모두가 절망하고 있던 그때, 30대 초반의 마케팅 매니저 2명이 사장실을 찾아간다. 그들 손에는 두꺼운 서류 뭉치가 들려있었다. 이미 패색이 짙은 상황, 사장의 얼굴은 창백했다. 좌절하고 있는 사장에게 매니저들은 제안한다.
사장님,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나이키는 마라톤의 본질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사장은 머리를 갸우뚱하며 마라톤의 본질이 뭐냐고 물었다.
사장님, 마라톤이 어떻게 태어난 스포츠입니까? 2,500년 전, 페르시아 군에 맞서 싸운 그리스 연합군의 승전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한 병사가 마라톤 평원을 달려 승전보를 전하고 죽은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마라톤 아닙니까?
사장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게 왜 중요하냐고 다시 물었다.
사장님, 그때 그 병사가 혼자 뛰었습니까? 함께 뛰었습니까? 마라톤은 타인과의 승부가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사장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게 왜 중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매니저들은 준비해온 서류뭉치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장님, 저희가 출전 선수 2만 명을 전부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 노인을 찾았습니다.
매니저들은 사장에게 한 노인의 프로필을 보여준다. 그 노인은 출전 선수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당시 50세가 넘었고, 평균 기록은 4시간 후반 대였다.
사장님, 이 노인을 우리 아디다스의 모델로 쓰고 싶습니다!
매니저들은 이 노인이야말로 마라톤을 '자신과의 승부'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마라톤의 상징'같은 존재라 믿었다. 그가 우승을 위해 대회에 출전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장을 설득한 매니저들은 노인을 찾아가 아디다스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설득한다. 노인은 흔쾌히 아디다스의 제안을 수락한다.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 하루 전, 아디다스는 이 노인의 프로필 사진에 로고만 넣은 티저 광고를 유럽의 모든 스포츠 신문에 전면광고로 내보낸다. 반응은 무관심 그 자체였다. 노인이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고, 광고에는 어떤 메시지도 없었으니까.
결국 대회가 시작된다. 결과는 나이키의 완벽한 승리였다. 나이키가 후원했던 선수들이 대부분 우승하고, 텔레비전은 나이키의 로고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아디다스의 모델이었던 노인은 평소 기록보다도 늦은 5시간을 넘겨 결승선을 통과한다. 아디다스는 결승선을 통과하는 노인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경기 다음 날, 다시 유럽의 모든 스포츠 신문에 전면광고를 내보낸다. 이 광고에는 완주하는 노인의 사진과 함께 이런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마라톤은 타인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저 옛날, 홀로 마라톤 평원을 달려
승전보를 전했던 페이디 피데스의 죽음처럼,
우리는 자신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이 노인을 응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는 살아 있다, 아디다스.
이 광고가 바로 세계 최초의 마케팅 캠페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스포츠는 살아있다(Sports is Alive)"였다. 이 캠페인 이후 아디다스는 지금까지 나이키로부터 유럽시장을 방어하고 있다. 아디다스의 이 전략은 소비자들에게 스포츠의 개념을 양분시켰다. 세상에는 2개의 스포츠 컨셉이 있을 뿐이다.
타인과 승부하는 나이키 vs 자신과 승부하는 아디다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Impossible is nothing)" 캠페인도 바로 "스포츠는 살아있다" 캠페인에서 출발했다. 문장만 바뀌었을 뿐, 스포츠를 바라보는 관점은 바뀌지 않았다. 아디다스에게 스포츠란 영원히 "자신과의 싸움"이다.
아디다스가 보여준 신의 한 수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행운이 아니다. 70년 넘게 소비자를 관찰하면서 스포츠 마케팅을 혁신해온 의도된 인연이었다. 수는 인간의 정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