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엄마 1,000원만!”
초등학교 시절 매일 가던 문방구가 있었다. 그곳의 이름은 <태양 문방구>.
등굣길 늘 문방구에 들려 쇼핑을 즐겼다. 나의 주 쇼핑 카테고리는 불량식품이었다. 50원부터 100원짜리 식품을 신중하게 하나하나 고르고 500원짜리는 큰 맘을 먹고 하나만 고른다. 내가 좋아하던 건 주로 오징어와 사탕처럼 포장된 겉은 패스츄리 같은 식감에 안은 가득 초콜릿이 든 과자와 나나콘과 알약처럼 톡톡 눌러 빼먹는 사탕이다. 양주머니 가득 1,000원어치 불량식품을 품고 학교로 향했다. 책상엔 교과서보단 불량식품이 가득했고, 수업 시간 야금야금 녹여 먹는 재미는 꽤 쏠쏠했다. 얼마나 쏠쏠했는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어린 시절의 작은 추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태양문방구를 지나는 일은 줄어들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더더욱 문방구 쪽으로는 가지 못했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태양문방구는 길 건너 작은 가게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사 간 곳은 작고 낯설어진 공간으로 변했고 다른 향기를 뿜어냈다. 위치와 공간이 바뀐 것인데 그곳의 분위기, 온도, 습도도 모든 게 낯설었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 태양문방구는 결국 사라졌다. 왜 결국 문을 닫게 된 걸까?
궁금증에 답을 찾지 못했고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불량식품을 좋아하던 아이는 20년 후 태양문방구처럼 자영업자가 되었고,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 5월 나는 성수동의 작은 쇼룸을 오픈했다. 나도 이제 이곳에서 태양문방구처럼 추억의 씨앗을 뿌린다. 이곳에 뿌린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또는 시들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많은 걱정과 생각들이 교차한다. 자영업을 한다는 건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자영업자의 삶이란 앞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일 것이다.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사실. 당장 내일 매출이 어떻게 될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매장을 열고부터 문이 닫혀있거나, 손님이 없는 가게를 보면 "월세는 내실까? 운영은 어떻게 하시는 걸까? "적은 우려의 마음이 피어오른다. 이제 폐업은 나와 전혀 연결 없는 이야기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까? 걱정과 근심이 차오를 때마다 서점으로 향한다. 책을 읽거나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찾는 편이다. 오늘 집어 든 책은 홍성태 교수의 신간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이다. 심신의 안정을 찾던 중 나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 대목이 있었다.
" 자네도 지금 다루는 제품이 시장에서 사라진다면,
사람들이 어떤 점을 가장 아쉬워할지 한번 생각해 보렴.
그 점이 바로 자네가 채워줘야 할, 소비자의 결핍 요소 아닐까?"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 >
나는 내 브랜드가 사라지면 어쩌지? 라는 걱정만 했지, 사라지면 사람들이 어떤 점을 가장 아쉬워할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20년으로 거슬러 올라 태양문방구를 떠올려 보았다. 문방구가 사라지고 나는 무엇이 가장 아쉬웠나?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 것이 가장 아쉬웠다. 그럼, 나에게 추억의 장소란 무엇일까?
어릴 적 100원짜리에도 작은 행복을 느낀 시절에 대한 감정, 친절한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와의 나와의 관계, 친밀감, 포근함이라는 키워드들이 떠올랐다. 태양문방구는 문방구를 파는 곳이지만 나에겐 작은 행복을 파는 가게였나 보다. 그렇다면 태양 문방구가 채워줘야 할 소비자의 결핍은 작은 행복이었을까?
그럼 메이드 파니가 당장 사라진다면, 사람들은 어떤 점을 가장 아쉬워할까?
요 며칠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았지만 나는 아직 메이드 파니가 사라진다면 사람들이 무엇을 아쉬워할지 모르겠다. 다시는 못 본다는 아쉬움 말고는 뚜렷한 키워드와 단어들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왠지 모르게 대체제가 있을 것 같은 생각만 든다. 이는 뚜렷한 차별화가 없다는 뜻일까? 브랜드는 참 어렵고도 어렵다. 아니면 나도 작은 행복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이 답을 채우는 빈칸엔 흐릿한 답변들만 나열이 된다. 빈칸을 선명하게 채우는 그날이 되면 브랜드가 사라진다는 걱정이 흐릿해지겠지? 이 물음표도 느낌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