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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H Jul 03. 2019

언니, 이번 조원들은 최악이야

[첫 번째 편지] 그 순간도 금방 지나가더라

언니, 이번 조원들은 최악이야...


과 특성상 많은 조모임을 가질 수밖에 없던 동생은 '학교 생활을 어때?'라는 나의 질문에 조모임에 대한 불평, 불만을 자주 하곤 했었다. 대학교를 졸업 한 나는 조원들을 향한 작은 욕설(?)과 불만을 털어놓는 동생을 보며 이제는 웃으며 말해 줄 수 있었다. 


"야- 그 순간도 금방 지나가더라' 


누군가가 나에게 대학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한다. 

물어서 뭐혀~ 조모임이지!


나 또한 동생과 마찬가지로 매 학기 많은 조모임에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할 일이 아니었는데... 좀 즐길 걸... 후회한다..

한 학기에 최대 5개까지 조모임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때는 성격상 남들에게 맡기지 못하고 나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해버리는 게 편해서 하루에 두, 세 시간씩만 자면서 자료조사하고 PPT 제작하고 발표까지 했다. (매 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리고 평소 불성실하고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조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려 꾀를 쓰는 사람들과 조원이 되면 지구가 멸망이라도 한 듯이 내 인생도 망했다고 생각하며 하루 종일 우울해했었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두려웠었다.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본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학 생활을 했는데 기숙사만큼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취를 하는 순간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 했으니까. 부모님에게 부담을 드리는 게 장녀로서는 너무 싫었다. 그러려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성적이 좋아야 기숙사에 붙을 가능성도 높았다. 결론은 뭐? 학점을 잘 받아야 한다...! 그런데 조별 과제로 낮은 점수를 받으면 자연스레 높은 학점도 보장이 안되었기 때문에 

조 점수는 나에게 굉장히 중요했다.


두 번째는 장학금. 고등학교 때는 쉬는 시간에도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는데 성정은 '중'에도 못 미쳤다. (정말 엉덩이만 붙이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 후, 1학년 때 띵까띵까 놀고 3등을 했다. 얼떨떨하고 벙쪄있을 때 3등까지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부모님이 굉장히 기뻐하셨다. 


그 이후로 성적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나.. 뭐라나.. 그렇게 한참 예민해져 있던 시기에 한 조모임을 만났다. 우리 과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한 수업이었는데  내가 만난 조는 나 빼고 다 타과였다. 꽤 많이 울었고, 꽤 많이 절망했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포기했다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도 않겠지! 조원들은 항상 나에게 미안해했다. 우리 과 사람들이 배운 이론이 필요한데 자기네들은 아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너무 고맙게도 그들은 다른 조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맹세코 3배 이상은 더 노력을 해줬다. 

주말에도 만나고, 밤늦게도 만나( 21시 이후에도 만났으니까)  회의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또한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받아서 열심히 과제를 했고 즐겁게 조모임을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조모임이 재밌었으니까. 

물론 다른 조에 비해 결과물은 '최고'는 아니었지만 우리의 노력이 가상했었는지 교수님은 '최고'의 점수를 주셨고 개인적으로 우리가 '최고'의 조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 4년 내내 최소 10번 이상의 조모임을 가졌었고 그중 7번 이상은 조장을 맡았다. 다른 사람이 조장을 하기 싫어해서? 아니다. 그러면 조장이라는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기 싫어서? 이것도 아니다. 

내가 누구보다 더 재미있고, 유쾌하게 조를 이끌 수 있다고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동생인 너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지금은 '최악'의 조모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네가 가지고 있는 유쾌한 힘으로 '최고'의 조모임을 만들라고. 


내가 아는 너라면 분명 그렇게 할 수 있어. 내가 장담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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