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 May 19. 2023

<슬픔의 삼각형> 배설하는 자와 할 수 없는 자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 2023

명령이야. 이 순간을 즐기라구!


문제는 명령이다. 원하는 대답은 오로지 하나뿐. “Yes!” 이 초호화 크루즈는 아주 심플하게 계급이 나뉜다. 승객과 승객이 아닌 자. 유명한 모델이자 인플루언서인 야야(찰비 딘 크릭)와 그녀의 애인인 칼(해리스 딕킨슨)은 이 크루즈에서 유일하게 평범한(부자가 아닌) 승객이다. 모델 업계에선 알아주는 야야도 여기에선 미모로 돈을 벌어 먹고사는 흥미로운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야야는 그런 시선에도 주눅 들지 않는다. 섹시한 승무원의 인사에도 부유한 남자의 추파에도 야야는 웃음으로 받아준다. 칼은 직원에게 다정하게 웃어주는 야야를 비난한다.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웃어줄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자신의 옹졸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눈치를 한참 살피다가 크루즈의 최고 매니저인 폴라(비키 베를린)에게 컴플레인을 건다. 한 번도 갑의 위치가 되어본 적이 없는 칼은 분명하게 원하는 바를 말하지 못한다. ‘명령’할 줄 모르는 칼은 머뭇거리면서 책임을 미루는 식으로 항상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호소한다. 하지만 결국 칼의 말에 의해 그 남자는 배에서 쫓겨나게 된다.



배설하는 자와 할 수 없는 자

이 영화의 가장 클라이맥스인 선장 주최 만찬은 잘 차려입은 부자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이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선상에선 피아노 연주가 흐르고 값비싼 음식이 연이어 나오지만 바깥에선 파도가 거세고 배는 계속해서 요동친다. 승무원들은 배가 흔들리는 것에도 게의치 않고 익숙하게 음식을 서빙한다. 이런 파도쯤은 크루즈에서 늘 있는 일인 것처럼 아무도 배의 상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흔들림이 점차 심해지고 승객들은 한두 명씩 멀미 증상을 호소하며 구토를 하기 시작한다. 승무원은 침착하고 친절하게 승객을 안심시킨다. 승무원은 멀미가 나도 음식을 더 먹으라고 권한다. 배설하는 자들은 모두 승객이다. 승무원에게는 배설할 권리도 배설해 낼 것도 없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가 계급이 과잉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배설해 내는 것뿐이다. 구역질 나는 상황에도 승무원 모두가 바쁘게 승객을 돌본다. 그리고 백인 승객과 백인 승무원이 떠난 자리에는 아시아계 직원들이 빠르게 토사물을 치운다.



비어 있는 조타실

미국 출신의 마르크시스크 선장(우디 해럴슨)과 러시아 출신의 자본주의자 디미트리(즐라트코버릭)는 출신과 계급부터가 아이러니하다. 누군가 방향을 잡아야 할 조타실은 비어 있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끝이 없는 이념 논쟁은 승객들을 공포로 밀어 넣는다. 유명인의 말을 인용할 뿐인 두 사람의 논쟁은 결론도 없이 부유할 뿐이다. 선장은 부자들이 세금을 내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정작 그는 배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캡틴의 자리를 유지한다.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디미트리의 장난은 결국 해적들에 의해 현실이 된다. 침몰하는 배 속에서 살아남은 건 자본가 디미트리이다.



전복된 세계

이제 권력은 전형적으로 개편된다. 배에서는 최하위 계층이었던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드 레옹)이 권력을 잡으면서 그녀는 조난자들을 먹여 살리는 캡틴이 된다. 애비게일은 스스로 캡틴이라는 명칭을 부여한다. 먹을 것을 손에 쥔 애비게일은 자신이 누구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순종적으로 복종한다. 갑의 위치였던 디미트리 조차 그녀의 말에 고분고분하게 따른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사회주의의 말 인용하며 유연하게 꼬리를 내린다. 성별과 인종, 장애와 비장애와 상관 없이 애비게일을 제외한 모두가 평등해진 이곳은 어찌 보면 낙원 같다. 모두가 웃음 짓는 무인도의 세계는 H&M의 세계이다. 언뜻 보면 평화로워 보이는 이 세계는 언제든 금방 허물어질 수 있다. 애비게일은 자신이 누리는 권력이 금세 바닥 날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칼을 원하면서도 야야와의 관계도 깨뜨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리조트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순간 애비게일은 그곳이 이제 자신에겐 열리지 않는 발렌시아가임을 알게 된다. 야야는 천진난만하게 말한다. 자신의 비서가 되지 않겠냐고.



평등을 전시하는 자

웃음 하나로 상품의 값어치가 구분되는 세계는 얼마나 얄팍한가. 발렌시아가의 세계에선 슬픔도 존재할 수 없다. 평등과 화합이라는 슬로건 아래 맨 앞줄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이들은 타인과 구별되고 싶은 상류층이다. 슬픔의 삼각형은 결코 전복되지 않는 피라미드처럼 굳건하게 미간에 박힌다.


매거진의 이전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안전한 테마파크 같은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