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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May 22. 2022

서운해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의 숙명

엄마는 참 자주 서운해한다. 엄마의 서운하다는 감정은 예측도 안되고, 서운한 지점도 들쑥날쑥 이어서 나는 그 불확실함에 치를 떨었다. 엄마를 만족시키는 일은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늘 다시 도전했고, 깊게 실망했다. 어른이 되고 나는 알게 됐다. 엄마처럼 나도 자주 서운해하는 사람이 돼버렸다는 것을.


서운한 감정은 기대하기 때문에 생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서운할 일이 없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누군가에게 서운할 수는 없다. 그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도, 애정을 쏟은 적도, 마음을 준 일도 없다면 서운하지 않다. 내가 준 것도 없으니 기대하는 것도 없다. 



아주 오래된 친구가 있다. 고등학생 때 만났다.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주저 없이 이 친구를 떠올렸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아서 1시간 거리의 통학을 자주 함께 했고, 같은 동아리를 했다. 이 친구는 나에게 크림 파스타를 알려주고, 배스킨라빈스에 처음 데려가 줬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팝송과 만화책을 알려줬다. 이 친구가 쓰는 시와 산문을 읽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부러워하지도 못할 만큼 감탄하기도 했다. 잘 웃고 화를 내는 법이 없는 친구였다. 숨기는 것도 없고,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친구였다. 


하지만 친구는 나에게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야 늘 학교에서 볼 수 있으니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20살이 되면서는 어느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관계가 이어질 수 없다. 친구의 무심한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연락을 하는 것으로 이 관계를 이어나갔다. 친구는 만나자고 하면 늘 거절하는 법 없이 만날 수 있었고, 연락을 하면 늦어도 꼭 답장이 왔지만, 친구에게 힘든 일이 생겼거나, 슬픔에 잠겼거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는 알 수 없었다. 친구는 늘 내가 연락해서 만나게 된 후 얼마 전 그런 일이 있었노라고 이야기해서 사사로운 일상 얘기로 핏대를 세웠던 나를 겸연쩍게 했다. 

늘 친구는 언제나 시간이 되니 너 편할 때 연락하라고 했다. 나 또한 이 친구에게 언제든 시간을 내어줄 수 있었지만 친구는 먼저 요청하는 법이 없었다. 나에게 힘든 일이 생겨도, 푸념을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나도 친구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미안했기 때문이다. 


몇 달만에 연락을 하고, 얼굴을 봐도 친구는 크게 달라진 모습은 없다. 여전히 잘 웃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들어준다. 서운해하는 것도 없다. 몇 번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항상 먼저 연락하는 것에 대해서. 친구는 잘 알고 있었고, 그런 나의 서운함을 이해해주었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많은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면서도 이 친구를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이 친구의 무심함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이 관계를 끊지 못하고 이어갔던 이유를. 친구는 서운해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의 남편이 있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다. 기대치가 워낙 낮기 때문에 인간에게 실망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애정을 나눠주거나 오지랖을 부리는 일이 거의 없다. 남편은 내가 해달라고 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은 적이 별로 없다.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도 않긴 하지만, 귀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일도 군말 없이 해준다. 특별히 걱정스러운 일을 하거나, 생각지도 않게 뒤에서 일을 벌인다거나, 거짓말을 해서 실망을 주는 법도 없다. 10년간 봐 온 남편의 모습은 일관적이다.


다만, 남편은 내가 해달라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지만 해달라고 하지 않으면 굳이 하지 않는다. 타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안 하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에게 애정이나 인정을 얻기 위해 굳이 노력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자존감에는 퍽 좋은 것이겠으나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가끔 서운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어제는 나의 생일이었다. 나는 내심 불안했다. 남편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상관없으니 나에게 어떤 마음이라도 표현하길 바라는데 어쩐지 그런 준비의 과정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예약한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그 주변에 카페를 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의 월급을 알고 있고, 그것을 함께 모아 생활비를 쓰고 있으니, 남편이 예산 밖의 선물을 산다고 하면 그만큼 생활비가 줄어드는 일이다.  그러니 나는 남편의 예산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작은 마음을 원했다. 이제 남편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어떤 순간에 웃는지 10년 동안 봐왔으니, 나를 떠올리면서 어떤 거라도 준비할 수 있겠지 싶었다. 

남편은 기쁜 마음으로 내가 예약한 식당에 가서 맛있게 밥을 먹고, 주변에 예쁜 카페를 함께 가서 케이크를 먹었지만 이것은 평소에 해왔던 그대로다. 오늘은 조금 다른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안 됐던 걸까?


그날 저녁  나는 남편에게 이런 마음을 토로했다. 

"저번에 내가 퇴근길에 00 식당에 들러서 주문해 놓은 포장 음식 좀 찾아와 달라고 했잖아. 그때 내가 말도 안 했는데 네가 그 식당 근처에 있던 디저트 카페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들 사 왔었잖아. 나 그때 정말 감동받았거든. 그건 내가 말 안 했는데 네가 내 생각을 떠올리고 사 와준 거잖아. 내가 오늘 바란 거는 그런 거였어. 넌 늘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해주지만, 오늘 같은 날은 네가 날 떠올리면서 무언가 먼저 해줄 수도 있잖아. 고작 그 과자 몇 개에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인 걸 아는데, 그것도 안 한 거잖아."


남편은 진심으로 미안해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실은 나도 이것저것 준비했는데 이상하게 그냥 안 하던 행동을 하는 내 모습이 이상해."

"내가 출근하는 날이 아닌데도 네가 일어나는 시간 전에 일어나서 아침 차려주는 것, 여름 오기 시작한다고 네 여름옷부터 주문하는 것. 그것 다 너를 생각해서 내가 마음을 표현을 하는 거야. 내 마음으로 이것저것을 해줘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결국 하지 않으면 난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 그 마음이 아무리 치열했어도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까. 

그런데 내가 가장 화가 나는 게 뭔 줄 알아? 너라는 사람은 내가 아침을 차려주지 않아도, 여름옷을 안 사줘도, 생일을 잊어버리고 그냥 넘어가도 서운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야."


그렇다. 내가 오늘 화가 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사람들이 결코 나에게 서운해하지 않는다는 것. 오로지 나만 이 사람들에게 서운해한다는 점. 

그것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인간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바라는 것도 없으니 안 해줘도 그만인 관계. 20년이 넘는 관계도, 1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했는데도 말이다. 




결국 나는 서운한 것이 늘 너무 많은 엄마 옆에서 서운한 감정을 제일 먼저 배운 어른이 되었다. 그 서운함에 치를 떨다 서운해하지 않는 사람들만 보면 사랑에 빠졌고, 그 지점이 오랜 시간이 흘러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지점이 되었다. 친구와 남편 모두 사랑의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믿으며 두 사람을 이해했다. 그리고 나 또한 과하게 마음은 표현하고 관계의 거리를 좁혀오는 사람을 경계하는 사람이니, 두 사람의 무심함이 오랜 관계를 유지해 온 이유 중 하나라는 것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앞으로 나는 어떻게 이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나 또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먼저 애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의미 없다. 하지 않음 마저 나에게는 어떤 의도와 표현이다. 그 순간에도 나는 이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서운해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의 숙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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