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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Dec 04. 2023

이중언어하는 비결

우리도 좀 써먹자

우리 아들은 여권이 두 개다. 엄마가 한국사람이고 아빠가 독일사람이다. 이런 국제가정의 경우, 아이가 자연스럽게 이중언어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위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미국인과 결혼한 친구의 두 아이들은 한국어 말하기가 전혀 되지 않는다. 왜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았느냐는 주위의 질문을 하도 받아서 너무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만 이런 고민을 가진 것이 아니다. 독일에서 큰 아이들이 한국 엄마 아빠가 있다고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독일 아빠, 한국 엄마를 둔 J는 이미 2살 때부터 한국어 쓰는 걸 거부했다고 했다. 현재 만 5살인 J는 한국어 단어 몇 개 정도밖에 구사하지 못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J는 한국 가족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조부모님이 독일을 방문하셨을 때 J는 엄마의 통역이 필요했다. 


그럼 국제 가정 자녀의 이중언어 습득 수준 차이를 만드는 비결이 뭘까? 

언어교육으로 검색했더니 나온 무료 사진 (https://www.shutterstock.com/ko/search/a-boy-learning-language)

1. OPOL (One Parent One Language)

한국 엄마 아빠는 애 앞에서 무조건 한국어만 한다.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실행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이 법칙을 잘 따르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엄마 아빠가 서로의 문화, 언어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울 집 아저씨는 K 드라마 팬이라 나보다 드라마를 더 많이 본다. 동료들에게 드라마 추천은 물론이다. 88 올림픽 호돌이가 그려진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촌스럽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선 이런 아이템 완전 힙스터다. 내년에 한국 가면 초록색 농협 이장님 모자를 구해줄 생각이다), 이 모자 때문에 이 동네 K-POP 팬들이 길가에서 말을 건다. 물론 남편은 한국 예찬을 늘어놓는다. 듣고 있으면 왜 한국 가시지 여기 사세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하는 게 멋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아빠가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으면 거들먹거리며 발음을 고쳐준다. 


둘째, 부모님의 잔망력이 높아야 한다.



"공 좀 주워 주세요" (출처 http://bookgoodcome.com/book/1169?ckattempt=1)

이거 참 중요한 거 같다. 엄마 아빠가 놀 때 재미있어야 한다. 국제 가정인 경우, 우리 집처럼, 엄마 아빠가 해당 언어의 유일한 통로인 경우가 많다. 이 때 아이가 한국어로 노는 게 정말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자기 전에 항상 한국책 3권을 읽어준다. 읽어줄 때는 내 안의 잔망력을 모두 발휘해서 아이를 유치하게 웃긴다. 특히 한국 동화책 "고구마구마", "공 좀 주워 주세요" 등은 외울 만큼 좋아한다. 까막눈인 주제에 조사 하나라도 잘못 읽어 주면 엄마는 혼이 난다. 


그리고 놀 때는 절대로 점잔 빼지 말고 아이랑 몸으로 놀아줘야 한다. 말은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2. 듣고 따라 하기가 무조건 먼저


우리 집 아저씨는 한국어를 배우는데 들이는 노력에 비해 참 아웃풋이 안 나온다. 조용히 한국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직장에 30분 일찍 갈 정도로 열심인데 4살 아들에게 항상 지적질을 당하니 참 안쓰럽다. 하루도 빠짐없이, 휴가 가서도 한국어를 공부하시는 이 분. 심지어 언어학 전공이다. 


남편의 실수는 한국 사람인 나에게는 너무 잘 보인다. 자꾸 문법부터 공부하려고 한다. 언어 구조가 다른데 자꾸 자기 모국어 문법에 외국어를 끼워 맞추려 하니 잘 될 리가. 그냥 듣기부터 하고 소리를 따라 하라고 잔소리를 해도 자기는 머릿속에 체계가 잡혀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아들은 아빠가 한국어를 공부할 때 옆에서 촐싹거리며 한국어 말하기 문장을 따라 한다. 까막눈 아들이 긴 문장을 듣고 따라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언어 공부 방법을 바꾸었다. 아니, 언어 습득이란 공부라기보다는 운동에 가깝다. 몸의 근육을 움직여야 한다. 스우파를 많이 봤다고 모니카 되는 게 아니다. 눈 감고 긴 문장 듣고 따라 하기 연습을 해보면 나의 진짜 외국어 실력이 드러난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제대로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는다. 지금 남편 흉을 볼 처지가 아닌 나, 운동연습 하는 거라 생각하고 듣고 따라 하기 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다.


아이에게 글자는 하루 5분 이하, 아직은 맛보기만 가르치고 있다. 자기 이름하고 간단한 단어 하나 정도를 쓰면 한국어 더빙 만화영화를 보여준다. 독일어 더빙이 있어도 무조건 한국어로 보여달라는 걸 보면 한국어가 편하게 느껴지나 보다. "이웃집 토토로"나 "벼랑 위의 포뇨"같은 만화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역시 마음에 드는 대사를 달달 외우고 있다.   


3. 현지에서 언어를 써보는 경험


만나는 한국 사람이라곤 한인 마트 사장님 뿐이었던 코로나 시절 막바지에 아이와 함께 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의 만 3세가 다 되어 들어갔지만, 아이는 너무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한국어만 썼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한국말을 써야 한다며 독일어를 거부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 6개월간의 한국경험은 아이에게 엄청난 자산이 된 것 같다. 잔망력이라면 절대 엄마에게 뒤지지 않는 외삼촌들을 만나 온몸으로, 유치하게 놀았던 경험 역시 한국어 실력이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유치원 경험과 키즈카페라는 신세계 역시 빠질 수 없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세계가 독일뿐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이의 언어 자신감 형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누나 형아들이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는 울 집 꼬맹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한국에서 본 부모님들의 이중언어에 대한 관심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아이 둘을 영유에 보낸 친구는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유아교육 인플루엔서의 인스타를 보여 주었다. 따라오는 애들은 시키는 게 맞다나. 영어가 뭐라고 한국 초등학교가 아닌 무허가 국제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는 강남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방학이면 아이 영어 연습 때문에 괌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누구나 사정이 다르고 조건이 다르니 이게 뭐가 맞고 틀리다의 문제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결국 언어는 그때그때 써먹어야 빨리 익힐 수 있다. 역할놀이, 엉터리 노래 작사 작곡하기, 엄마에게 젤리 하나 달라고 때쓰기 등등. 아들을 보아하니 역시 언어란 매일매일 밥 먹듯 해야 한다. 그러기에 언어를 잘 하고 싶은 엄마 역시 옆에 앉아 슬쩍슬쩍 콧딱지를 파고 있는 이 4살짜리 꼬맹이한테 지혜를 얻는다.


"엄마! 나랑 로봇 놀이하자!"


(커버 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0%A4%AD%E0%A4%BE%E0%A4%B7%E0%A4%BE%E0%A4%83.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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