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S - JOY AS AN ACT OF RESISTANCE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혼자서 배낭 메고 태국이나 인도 같은 곳에서 새까맣게 타서 돌아오던 여자는 어디 갔는지. 아빠가 우리 집 한비야라고 부르던 딸은 키워드로 "육아"라고 적어 놓은 브런치에 대부분 애 키우다 생긴 얘기만 쓴다.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무엇을 쓰느냐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 맞겠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작고 기쁘고 행복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쓰기로 결정했다.
내가 이만큼 잘 산다는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그러려면 인스타그램에 가는 게 나을 것이다.
지뢰밭 같은 세상을 보지 않으려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객관적으로" 행복해지려다가는 싸움에서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삶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아주 정치적이며, 전복적인 행위이다.
IDLES는 지금 영국에서 가장 날아다니는 밴드다. 긴 무명 시절을 거쳐 승승장구하는 그들은 존버는 성공한다의 증인이다. 그리고 "JOY AS AN ACT OF RESISTANCE"는 2018년 앨범 제목이다. 행복하고 기쁘게 사는 게 저항의 방법이라고? 이 뜬금없는 제목은 브렉시트 투표 후 혼란에 빠진 영국에 살던 젊은이들이 정말 치열하게 고민해서 냈던 결론이다. 이들의 음악은 정치적인 주제인 이민, 페미니즘, 가부장제, 빈곤 등을 정면으로 다룬다. 처음부터 끝까지 더럽고 거칠고 시끄럽다. 그리고 내 귀에 그들의 음악은 너무너무 아름답다.
모든 걸 때려 부수려 작정한듯한 소리 뒤에는 진정한 부드러움이 담겨있다. 아픔과 초라함, 슬픔을 인정한다. 소외된 사람들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노래 부른다.
지난 글에도 밝혔지만 나는 분홍을 사랑하는 남자들을 좋아한다. 그러기에 IDLES의 남다른 패션 감각 역시 덕질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긴 머리에 콧수염, 할머니 꽃무늬 잠옷을 입고 무대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기타리스트 MARK BOWEN은 게다가 반전 매력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 분의 부캐는 놀랍게도 치과의사이다. 또한 20대부터 탈모의 슬픔을 겪었던 상남자 중의 상남자 JOE TALBOT의 단골주제는 여성들의 삶에 대한 진심 어린 공감이다. 작사와 보컬을 맡고 있는 JOE는 밴드의 음악이 특히 젊은 남자 관객에게 보내는 대화의 시작이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진짜 상남자는 나와 남들의 아픔에 울 줄 안다.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 물어볼 줄 안다.
Sexual violence doesn't start and end with rape
It starts in our books and behind our school gates
Men are scared women will laugh in their face
Whereas women are scared it's their lives men will take
(IDLES-MOTHER 가사 중 발췌)
영국 펑크 음악의 정치성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IDLES는 기존의 기조와도 약간 다른 것 같다. 이들의 메시지는 좀 더 "실용적"이다. 기쁨이 대안이고 정치적 전복이라고 노래할 때 이들은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앨범이 나오기 전, 프런트맨 JOE는 감당하기 힘든 일을 계속 겪는다. 아들을 혼자 키워낸 어머니는 병에 시달리다 돌아가시고, 첫 아이는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사산되는 아픔을 겪는다. 인생이 무너지는 듯한 순간에 무엇을 해내야 할까. 무엇이 사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게 할까? 이들은 과감히 기쁨을 선택한다. 우는 게 합당하고 논리적인데 말이다.
IDLES는 보기와는 다르게 무지하게 성실하고 건전하다. 인터뷰에 따르면 5명의 멤버는 밴드 연습에 항상 제시간에 도착한단다. 워낙 나이 먹어서 (25살) 때 밴드를 시작해서 그렇단다. 그냥 겸손하게 열심히 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단다.
각 나라에 돌아다니면서 5명의 울그락 불그락 상남자들이 쵸코 우유 리뷰를 올리는 거 보면 엄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아니 우리 동네에는 언제 오시나, 콘서트 일정을 살펴보게 만든다. 내년 3월에 온다는데. 흑, 아직은 아이가 너무 어려서 안 되겠지? 아들 키가 나 만해질 때 꼭 끌고 갈 거다. 아들아, 기억해라. 이게 바로 진짜 상남자 펑크정신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