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트 : 춥고 어둡고 축축해요
예전에 나는 스웨덴에서 산 적이 있다. 눈이 정말 발목까지 내리는 깜깜한 저녁, 언덕 위에 있는 집을 올라가야 했다. 질척 질척한 길을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으며 학교도 가고, 알바도 가고, 운동도 다녔다. 다들 "나쁜 날씨란 건 없어, 옷을 잘못 입었을 뿐이지." 라며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4월까지 눈이 녹지 않는 날씨에 적응해서 살다 보니, 그냥 살아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보라가 몰아치는 항구를 따라 조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독한 것들 같으니라고" 생각하며 나도 주섬주섬 집을 나서곤 했다.
독일 보다 더 낮이 짧은 북쪽에서 살던 경험 때문에 그런지, 나는 비 오고 춥고 어두운 독일 날씨를 겪어도 그냥 그런가 한다. 덤덤한 나보다 한 술 더 뜨시는 분은 우리 집 아저씨다. 여름이 되면 겨울은 언제 오나 노래를 부르시는 분이다. 겨울은 빨리 어두워져서 좋고, 어두운 도시의 불빛이 너무 예쁘단다. 하지만 우리 집 꼬맹이는 달랐다. 자기는 알록달록한 가을이 너무 좋은데 겨울은 너무 추워서 싫다고 했다. 하도 요즘 투정을 부려서 짧게나마 여행을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아이에게 어디가 가장 가고 싶냐고 물어보니 "베를린"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겨울에 베를린? "관광 성수기라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들아"라고 하려다가 베를린 호텔을 검색해 봤다. 어라, 시내에 있는 유명 호텔이 2박 3일에 200유로야? 게다가 사우나랑 실내 수영장도 무료라고? 폭풍 클릭을 했다. 베를린 가기 전, 아빠는 사우나 사우나, 아들은 이층 버스 이층 버스, 엄마는 쌀국수 쌀국수를 노래 불렀다. 비 오면 맞으면 되고, 비가 많이 오면 수영장에 가면 된다.
놀랍게도 기차가 정시에 왔다! (독일 기차는 연착으로 악명이 높다) 그리고 아들은 기차 안에서 만난 5살 형아랑 친구가 되었다. 둘이서 장난감 자동차를 하나씩 잡고 좁은 복도에 철퍼덕 주저앉아 신나게 놀았다. 5살 아이의 부모는 방송사 기자인데 쾰른에서 일한다고 했다. 취향이 같은 이 두 아들들의 만남에 부모들은 환호하였다. 보드게임이니 색칠공부 같은 거 주섬주섬 챙겨 왔던 두 집 부모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편하게 베를린에 도착했다.
게다가 세상에, 베를린 날씨가 아주 좋았다. 오랜만에 햇빛을 받으며 유명한 마우어파크 벼룩시장에 갔다. 배고파서 두리번거리다 한국 음식을 파는 "금자"라는 푸드트럭 앞에서 이쑤시개에 꽂힌 불고기와 비건 고기 조각을 하나씩 받아먹었다. 아이가 "엄마 너무너무 맛있어"란다. 장사천재 백종원이 외국인들한테 막 샘플을 나눠주던데, 금자네도 완전 백종원 저리 가라다. 사람들이 홀린 듯이 긴 줄 뒤에 선다. 마우어 파크 벼룩시장은 여름에 갔을 때 보다 훨씬 한산했고, 물건도 더 좋았다. 듣기론 벼룩시장에서는 세금을 안 내기 때문에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독립 디자이너들이 만든 제품을 여기서 싼 가격에 살 수 있단다.
밥도 먹었겠다 체크인을 할 시간이다. 냉전 시절 스파이들이 득실득실했다는 Friedrichstrasse는 이제 기념품 가게와 관광객으로 득실득실하다. 10층에 방을 받았다. 커다란 창문 너머 베를린 돔이 보인다. 해가 지는 베를린 하늘이 너무 예뻤다.
"사우나?" 하는 남편의 멱살을 잡고 끌고 밖을 나갔더니 독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문이 보인다. 크리스마스시즌이라 그런지 길이 반짝반짝 예쁘다. 아무리 비수기라고 해도 베를린에는 항상 관광객들이 있다. 우리 집 남자들의 인생사진 찍어주려고 했는데 아니 갑자기 트랙터들이 몰려온다. 전국에서 농부들이 시위하려고 베를린에 모였다. 하긴, 시위 없는 베를린이 베를린이겠어.
둘째 날은 꼭 가보고 싶었던 Holzmarkt에 갔다. 겨울이라 카페, 술집, 가게들이 문을 닫기는 했지만 (주말엔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리긴 한단다) 그래도 여름이면 관광객으로 바글바글할 이곳을 전세 내듯이 고즈넉하게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쓰레기들과 판자, 양철을 모아서 얼기설기 만든 멋진 공간은 벽화와 설치예술물로 가득했다. 놀이터 미끄럼틀을 발견한 아이는 환호를 지르며 한참 시간을 보냈다. Holzmarkt에는 유치원도 있어서 아이들이 밖에서 노는 모습을 보았다. 유치원 담벼락에는 "사진을 찍지 마세요"라는 경고가 붙어 있어다. 관광객들이 어지간히 굴었나 보다 싶어 종종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물가의 조약돌을 본 아이, 아니나 다를까 신나게 물수제비를 떴다.
Holzmarkt에는 동전을 넣으면 입장할 수 있는 전화부스 만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클럽도 있다. 곡을 선택하면 딱 곡이 끝날 때까지 디스코 볼이 돌아가고 즉석 사진도 찍혀 나온다. 이곳이라면 드디어 누구나 입장할 수 있겠다! 베를린 테크노 클럽들은 수질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유명인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전설적 클럽 Berghain에 들어가려면 옷도 제대로 입어야 되고 (폴로셔츠 오 노노), 절대 쪼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단다. 밖에서 3시간, 4시간을 기다린 사람들도, 뭔가 어설프다 싶으면 "Heute leider nicht"라고 하며 오늘은 안된다 돌려보낸다고. 여기는 기본적으로 게이 클럽이기 때문에 웬만한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상상을 초월하는 Berghain 클럽, 더 놀라운 사실은 이곳은 독일 문화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공간으로 인정되어 박물관 등과 똑같은 세금 혜택을 받는단다.
그다음은 행선지는 Futurium이다. 미래의 사회를 같이 상상해 보자는 취지로 만든 이 공간은, 첫 번째 무료입장이고, 두 번째는 로봇이 전시되어 있고, 세 번째는 중앙역에서 유치원생 걸음으로 7분, 아주 가깝다. 우리가 갔을 때는 미래의 민주주의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나의 표정을 인식해서 나의 정치 성향 (정당 선호도)를 예측하는 설치물이었다. 웃었더니 SPD (좌)가 나왔고, 찡그렸더니 AfD (극우)가 나왔다.
아이는 여기서 무려 3시간을 보냈다. 도무지 나가려 하질 않았다. 이미 반쯤 녹초가 된 우리 부부는 소파에 앉아 돌아가며 낮잠을 잤다. 아이 있는 집은 꼭 가볼 곳으로 추천한다. 어른들에게도 흥미로운 전시가 많았고, 데이트 족들도 많이 보였다. 추운 겨울에 시간 보내기 딱이었다.
오후에는 독일 의사당에 갔다. 보통 6주 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돔 투어는 역시 비수기라 그런지 고작 며칠 전에도 예약이 가능했다. 이미 올라가 본 적이 있는 곳이지만, 해 질 때쯤 올라가서 베를린 전경을 보면 좋을 거 같았다. 아이는 저번보다 훨씬 의젓한 자세로 오디오 가이드를 끼고 돔에 올라갔다. 무슨 의사당에 가냐고 툴툴거리던 남편은 갑자기 역사 덕후가 되어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설명을 다 읽기 시작했다.
의사당 안에는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아들이 갑자기 가게로 달려갔다. 아들의 눈길을 끈 것은 국회 의사당 모양의 모래 장난감이었다. 직원의 말에 따르면 한동안 이 장난감 때문에 SNS가 불탔단다. 그 밖에도 재미있는 기념품들이 많았는데, 남편은 역대 연방 대통령의 사진이 있는 자를 골랐다. 의사당을 나가던 관광객들이 멈춰서 대통령 사진이 있는 문방구라니 너무 뜬금없다, 진짜 웃기다라며 응원해주었다. 그럴 만도 할 것이 독일 연방 대통령은 상징적 존재라 독일 사람들도 잘 기억 못 할 만큼 별로 존재감이 없다. 남편은 여행 내내 이 자를 애지중지하며 들고 다녔다.
그래서 수영장은 갔다 왔냐고? 물론이다. 무려 2번이나 말이다. 마지막 날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수영장에 가자고 나를 깨웠다. 국회의사당 장난감을 가지고 내려가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이런 게 좋은 거 같다. 나 혼자였으면 여행 중 아침 7시에 수영을 할 생각 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도 좋다고는 하는데 그냥 휘휘 둘러보기만 했다. 베를린까지 와서 되너 케밥도 안 먹고 쌀국수만 겨우 먹었다 (베를린은 동독 시절 건너온 베트남인들이 많아, 쌀국수가 맛있다). 유명한 관광지 같은 건 보이면 가고 안 보이면 안 가는 INTP엄마를 따라온 두 남자는 베를린을 떠나는 것을 너무 아쉬워했다. 중앙역으로 돌아오자 남편은 자기는 내심 우리가 기차를 놓치길 바랐다나. 갑자기 우리 집 4살 꼬맹이가 기차 안에서 엉엉 울었다. 베를린이 너무 좋아서 집에 가기 싫다고 했다. 봄에 또 올 것을 약속하며, 이렇게 베를린에서 우리의 올해 마지막 여행이 끝났다. 내 남은 인생의 겨울을 따듯하게 살게 할 장작이 마음에 많이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