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고수들이 한자리에
유치원생 아들과 브뤼셀에서 독일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 올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방송이 안 나오니 엄마는 긴장이 되었다. 옆에 있던 인도인 가족이 영어로 한 남자에게 기차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이 보였다. 애를 데리고 전광판에 갔더니, 예정되어 있던 기차가 오지 않는단다. 이유도 없고, 그냥 안 온단다.
보통 독일 사람들이 시간을 잘 지킨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독일에 와서 기차 한 번 타보면 그 고정관념이 바사삭 부서진다. 독일 철도 회사 도이치반(DB)은 정말 악명이 자자하다. 지난 3개월 동안 나는 고속 열차를 5번 탔는데 딱 한 번 빼고 네 번이나 연착이나 취소가 되었다. 여기서 연착이라 함은 10분, 15분이 아니라 60분 이상을 말한다. 하도 많이 당해봐서 그냥 그려려니 한다.
눈치껏 사람들 따라 내려가 빨간색 폰트 도이치반(DB) 안내 데스크를 찾았다. 한 사람은 독일어로 한 사람은 영어로 승객들에게 설명한다. 영어로 설명하는 직원이 말했다.
"독일 선로가 너무 오래되어서 생기는 문제예요. 이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독일 동료뿐만 아니라 여기 벨기에 쪽에서도 지금 골치가 아프답니다. 우선 벨기에 독일 국경까지 가세요. 거기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세요."
독일어로 설명하는 직원에게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혹시 2시간 뒤에 올 다음 기차를 타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다.
"지금 12시부터 계속 기차가 취소되고 있어요. 그냥 지금 가세요. 언제 기차 운행이 될 수 있을지 아무도 몰라요. 어쨌건 집에는 가야 되지 않겠어요?"
툴툴거리면서 둘러보니 우리는 고생하는 것도 아니다. 유모차를 두 대씩 가지고 이동하는 가족 두 쌍과 함께 낑낑거리며 열차에 올랐다.
어쨌건 간에 따뜻한 열차에 앉으니 안심이다. 옆에는 학교에서 견학을 온 건지 10대 사춘기 독일 남자아이들이 바글바글 앉아있다. 어휴, 우리 애도 10년 뒤엔 저렇게 되겠지 하면서 아이와 함께 잠이 들었는데 방송이 나온다. 한 번은 불어로, 한 번은 더치(플레미쉬)로만 나온다. 그러자 애들이 웅성거리며 누구 이름을 부른다. 그러자 불량한 자세로 앉아있던 덩치 좋은 아이 하나가 일어나 다른 학생들을 향해 안내 방송 내용을 깔끔하게 독어로 설명해 준다. 오, 숨은 고수! 다음에 내려서 한 번 더 독일까지 가는 열차로 갈아타야 한단다.
다음 역에 도착하니 2량밖에 안 되는 기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태울까 싶었는데, 내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행히 아들과 나는 자리를 잡았지만 복도까지 빼곡히 서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커다란 여행가방까지 가지고 있었다. 애를 내 무릎에 앉히고 다른 사람에게 자리 하나를 양보했다.
하지만 20분이면 간다는 열차는 30분이 지나도 움직일 줄 몰랐다. 그리고 이 기차 진짜 시끄럽다. 오른쪽 애는 볼륨 켜 놓고 게임을 하고 있다. 왼쪽 두 명은 계속 기차 정보를 찾아보며 언제쯤 출발할 수 있을지 똑같은 얘기를 몇 십 번씩 한다. 뒤에 10대 남학생들은 여행가방을 의자 삼아 앉아 수다를 떤다. 다들 피로에 찌들어 꼬질꼬질한 모습이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이 쉬가 마렵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는 기차 밖에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때 남학생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야, 선생님이 밖으로 모이래. 버스 타고 가면 되다는데? "
그 말을 듣자마자 남학생들에게 우리도 따라가도 될지 물었다. 여태까지 기다린 게 아깝지만 최소한 애가 이 만원 기차에서 실례를 하는 일은 없을 거 같았다.
내가 유럽에서 본 가장 더러운 화장실에 들어가 아이일을 해결하고 나오자 인솔자가 움직였다. 학생들은 커다란 여행 가방을 좁은 언덕길에서 돌돌돌 끌어가며 아헨행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꽁지에 붙은 동양인 모자를 보고 학생들이 어디에서 왔냐며 말을 걸어왔다.
알고 보니 이 학생들은 영국 런던과 독일 아헨에 있는 고등학교 간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었다. 반은 독일 아이들이고, 반은 영국 아이들이었다. 이 영국 아이들도 독일어가 유창했고, 독일 아이들도 영어가 유창했다. 우리가 독일어를 할 줄 안다고 하자 영국 아이들은 금세 독일말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형아들은 아이에게 몇 살, 이름은 뭐야 물어본 후 사탕과 스티커를 주었다. 형들이 "혹시 너 영어도 할 줄 아니?" 하니까 아이는 "네, 조금 할 줄 알아요" 하면서 "원 투 쓰리 포 파이브"를 외쳤다.
17세의 영국 아이들은 호스트 가족들과 함께 아헨에 머무르는 동안 독일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독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불어가 공용인 이중언어 고등학교란다. 감탄의 연속이었다.
"아니 버스 타고 가는 줄 알았는데, 우리 도보로 국경 넘는 거야?"
학생들에게 농담을 했다. 4살 아이가 형아들 따라 잘 걸어가고 있긴 하지만 얼추 30분 넘게 걸었는데도 버스는 보일 줄 몰랐다. 인솔 선생님이 오더니 말했다.
"우리를 따라오라 해 놓고 정말 미안한데, 지금 버스도 안 오나 봐요. 2시간은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데 해 지기 전에 빨리 가시려면 아무래도 택시나 다른 교통편을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불평 하나 안 하고 다시 기차역으로 걸어가는 우리 아들이 정말 천사 같이 보였다.
다시 기차역에 들어가자 2량짜리 기차가 하나 더 서있었다. 역무원이 불어로 "마담" 어쩌고 하길래, 아 뒤에 꺼 타라는 거구나 싶었다. 아까 기차보다는 훨씬 자리가 넉넉했다. 벌써 해가 저 가고 있었지만 기차는 움직일 줄 몰랐다.
휴대폰 보는 것도 다들 지겨워졌는지 사람들이 서로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독일 기차에 대한 분노라는 공통분모가 생기자 잠시나마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스페인에서 온 사람들은 브뤼셀에서 4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또 2시간을 여기에서 기다리는 거란다. 앞에 앉은 사람들은 벨기에 독일 국경에 사는데 그 동네는 옛날에 독일 영토여서 다들 독일말을 쓴단다. 영국 할아버지랑 나는 명성보다는 벨기에 감자튀김 맛이 별로였다는데 동의했다. 갑자기 기차에 웃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드디어 기차가 움직였다!
모두들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쳤다.
20분도 안 되는 거리를 2시간이 넘게 걸려 드디어 독일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기차를 나가면서 눈인사를 하는데 아까 그 영국 할아버지가 완벽한 독일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휴, 언어를 계속 바꾸었더니 머리가 아파."
스페인 사람들은 우리에게 독일말로 잘 가라고 인사하며 다른 방향 열차에 올라탔다.
우리,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더 이상 한국에서 한국말만 쓰는 사람들끼리만 모여 살지 않는다. 외국에서 "모국어" 한국말로 아들과 소통하는 나는 국경이란 무엇일까 항상 생각하게 된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모여사는 독일에서 자란 아들이 경험하는 국경이 나와는 더 많이 달랐으면 좋겠다. 진정한 탈식민주의 시대를 살았으면 좋겠다. 한국인이면서도 세계 시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점점 우경화되어 가고 있는 유럽에서 우연히 만난, 커다랗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 곳곳에서 테러와 전쟁이 만연한 이 세상도,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까지는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일 삽질을 거듭했더니 보물이 나와 버린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