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sy Nov 24. 2024

11. 처음에는 나를 배려하는 것인 줄 알았다

얼마나 차가운 사회가 그를 덮쳐왔길래, 그의 귀는 멀어버린 것일까?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왔다. 이곳 까눌레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하지 않으면서 촉촉한 게 아주 맛있는데, 오늘은 약간의 변덕으로 녹차롤도 함께 시켜보았다. 그러나 이 녹차롤은 정말로 맛이 없어서 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런 맛이라면 1,000원에 팔아도 먹지 않으리라. 내 위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원하지 않는 맛으로 쓸데없이 채워지는 건 싫은 일이다. 사람도 비슷하다. 내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굳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과는 함께하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를 알고 싶을 때 가장 먼저 관찰하는 것은 그 사람의 듣기 능력이다. 듣기 능력은 아주 간단한데, 정말로 물리적인 귀와 적당한 청력만 있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 나는 사과를 좋아해. 너는 사과를 좋아하는구나? 우리는 이것만 이해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가? 사람은 어른이 된 이후로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자신의 이야기 밖에 들리지 않게 된다. 나는 사과를 좋아해. 나 어제 소고기 먹었다? 이렇게 진행되기 시작하는 대화의 흐름은 아주 재미있게 흘러간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상대방의 연민과 곧 직면하게 될 거니까. 연민은 따뜻하지도 않고 뾰족하며 또한 이기적이다. 얼마나 차가운 사회가 그를 덮쳐왔길래, 그의 귀는 멀어버린 것일까?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위로인지 동정인지를 하기 시작한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고, 그렇게 살아서 뭐 하냐고.
처음에는 나를 배려하는 것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질투와 불안감이었다.

- 김부장 이야기, 송희구 作


   


  그냥 아는 사이 정도의 관계인 A는 최근에 연애가 잘 안 풀리는 모양이다. 여자들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냐는 말에 (이런 기본적인 것을 물어볼 시기는 지나지 않았나 싶었지만), 여자 남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생각해 주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A는 듣고 싶은 대답이라도 따로 정해놓은 건지, 이건 싫냐 저건 어떻냐 취조식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세상의 모든 여자 대변인도 아닐뿐더러, 대변인이라고 한들 내가 말하는 대로 자신을 전부 바꾸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나? 짜증이 조금 날 무렵. 아- 사실 속마음은 이런 싫어할 것 같은 모습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좋아해 줄 사람을 찾는 거구나 싶었다. 그러니 A는 여자들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호감을 사는지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고, 그걸 알게 된다고 한들 자신을 고칠 생각도 없었을 거다. 그가 나에게 한 질문들은 오로지 ‘내가 지금 연애가 잘 안 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야’라는 변명을 듣고 싶어서였을 테니.



  오래된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사실 그가 당신을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 아닌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릴 때 숱하게 들었던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은, 상대방의 말을 전부 기억해서 요약정리라도 할 수 있어야 된다는 뜻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조금 더 본질적인 뜻이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관심과 애정이 있으니 궁금하고, 궁금하니 듣고 싶다. 당신이 나와 대화하는 것이 편하다고 느꼈다면, 내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전 10화 10. 그래서 우리는 항상 외로울 수밖에 없는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