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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혁 Feb 18. 2016

간장 콜라 (첫 번째)

칼국수집 아르바이트 수난기 

그게 그러니까 군대 가기 한 육칠 개월  전쯤 이었을 거야.

아마 93년도 초 여름쯤 되었던 것 같아 



학교도 휴학하고 입대하는 10월까지 시간이 좀 있고 

그냥 백수로 팽팽 놀기도 좋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을 했었지 


그런데 막상 아르바이트를 하려니 딱하니 눈에 들어오는 자리가 없더라고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면서 종로 한복판을 지나다가 당시 유명하던 M칼국수집 앞에 “서빙 아르바이트 구함”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는 걸  봤어.. 


그때 그걸 못 보고 그냥 지나갔어야 했는데…


문을 열고 불쑥 들어가 알바를 하겠다고 했더니 

반나절을 할 거냐 아니면 풀타임을 할 거냐는 질문에 

“당연히 남자는 풀타임이지”라며 

다음날부터 바로 홀에서 서빙을 하기로 했던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10대에서 20대까지는 매사에 항상 무모했어.. ㅋㅋ 


다음날 아침 가게에 출근을 하고 홀에서 장사 준비를 돕는데 참  난감하더라고 

스무 해를 넘게 살면서 내가 주방과 관련해서 해본 거라곤 

밥상에 숟가락 놓는 일 밖에 없었다는 걸 그날 아침에 알았지. ㅎ 


뭐 안 봐도 그림이고 어리바리의 결정판이었지 뭐… ㅋㅋ 

쏟고 엎고 흘리고.. ㅎㅎ 

정신없이 바보지 거리들을 하고 있는데 

한 10시 반쯤 되니까 아침 겸 점심을 주더라고 

모처럼 일찍 일어나 배가 고픈 나머지 잘됐다 싶어서 먹어볼까 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당시 그 음식점에는 일종의 계급 같은 게 있었어

가장 위의 왕족 계급이 가게 사장님과 사모, 그리고 가끔 놀러 오는 주인 아들놈,

다음 귀족 계급은 주방에 있는 주방장과 (다들 실장이라고 부르더라고) 주방 보조 직원들, 

양반계급은 홀이 아닌 주방 안에서 근무하는 알바와 홀에서 서빙을 하는 정직원, 

그리고 그 밑에 천민이 홀에서 서빙하는 알바생이더라고 


그중에 나처럼 경력도 없고 아르바이트하러 새로 온 어리바리는 천민 중에서도 백정이나 

노비 정도가 되었었지.. ㅋㅋ 


다시 말해서 그 시간에 나는 귀족이나 양반들과 같이 그 자리에 수저를 뜰 상황이 아니었던 거야 ㅎ 

귀족들과 양반들이 먼저 식사를 하고 천민들은 그동안 식탁 세팅을 마무리해야 했지 

그리고 백정인 나는 주방 뒤 야채 창고에 가서 다음날 쓸 양파를 까고 와야 하는 거였어.. ;;; 

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양파 백정인 게지. ;; 


야채 창고는 주방 바로 뒤에 있었어 

하지만 홀에서 일하는 애들 게다가 나 같은 양파 백정이 주방을 지나서 야채 창고를 간다는 건 일종의 하극상과도 같았어 

아마 주방을 채 지나가기도 전에 주방장에게 잡혀 사쿠(주방용 국자)나 나무 주걱으로 두들겨 맞았을 거야.  

어쩔 수 없이 나는 가게 밖을 나와  종로대로 한복판을  끼고돌아 주방 뒤 야채 창고로 가야만 했어..


가게 밖으로 나가 바깥 건물을 몇 개를 돌아  골목골목을 지나 뒤 창고까지 가야 했는데

문제는 복장이었던 거지

당시만 해도 내가 꽃다운 20대 초반에 키가 179 몸무게 72킬로 정도의 준수한(?) 체구였단 말이지

고등학교 때부터 하굣길에는 항상 운동화를 벗고 구두나 파란색 스웨이드 스니커즈로 갈아 신고 

바지는 당시 유행하던 항아리 바지에 면티 보다는 단색 셔츠나 때로는 당시 영등포 나이트에서 건달들만 입는다는 꽃무늬 실크 셔츠도 무난히  소화할 만큼 패션에 신경을 쓰던 때였어.


그런 내게 그날 아침은 완전 저주와도 같았지 

아직 홀에서 입는 서빙복은 하사 받지도 못했고 아침에 청소 시작하면서 받은 발목이 보이는 군청색 나일론 바지에 

위에는 주방 사람들이 입다 입다 빨다 빨다 던져버린 것 같은, 

천이 끝나는 모든 곳에 실밥이 갈기가 되어 흩날리는 조리용 윗도리에 

마치 스티로폼을 덧댄듯한 희한한 모양의 검은색 슬리퍼 아마 오른쪽 뒷굽이 다 닳아 없었던 것 같아, 

거기에 그날 난 출근 첫날이라고 깨끗이 빨아 신은 백옥 같이 하얀 양말을 신고 있었지 


앞에는 걸음을 걸을 때마다 문지방에서 반쯤 떨어져 나간 풀 먹인 문풍지처럼 부석거리는 큰 방수 앞치마를 차고 

오른손에는 양파를 깔 식칼을 한 자루 쥐고 

왼쪽에는 큼지막한 양파망을 하나 들고 

게다가 오른쪽 뒷굽이 없는 슬리퍼 때문에  본의 아니게 다리를 절듯이 걸으며 

가게를 나와 종로 한복판 사거리를 지나 코너를 돌아 가게 뒤 주방 야채 창고로 가게 되었던 거야…  

야채 창고까지 거리가 한 50미터 정도 되었던 것 같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다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 같았어 


부푼 마음으로 알바를 시작하고 딱 한시오래간만에 꽃거지가 되어 

식칼을 들고 쩔뚝거리면 종로 한복판을 활보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담배 생각이 나더라고.. 

주책 맞게 영웅본색의 주윤발 형님이 된듯한 생각도 들고 


그래서 일단 당시의 내 모습을 커버해야겠다는 이상한 마음으로 담배를 한대 물었지.

필터도 살짝 씹어가며 펴야 할 것 같더라고 

오른손에는 식칼 왼손에는 양파망을 들고 담배를 물고 담뱃재를 길게 태우며 



당시에 내가 가장 힘들었던 사실은 이제 출근한지 한 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어 

어쨌든 그러면서 대로를 지나고 코너를 돌아 야채 창고로 들어갔는데 말이야.. ;;;



두번째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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