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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혁 Feb 20. 2016

간장 콜라 (마지막회)

칼국수집 아르바이트 수난기

간장 콜라 첫 번째

간장 콜라 두 번째


여기가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 줄 알았으면 난 알바를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순간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래 매일 양파를 백개씩  까대는 걸 보면서 왜 손님이 많을 거라 생각을 못했을까

아니 한창 바쁠 때 어떤지 한 번이라도 와서 보고 결정해도 되었을 텐데

아니면 여러 군데를 돌아보고 고를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나는 벽보를 보자마자 첫 집에서 결정을 내고 말았을까.



손님이 줄줄이 들어오고 자리를 채우면서 홀 서빙들도 바빠졌다.

나도 어서 주문을 받아야 했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주문받을 때 뭐라고  물어보지?

뭘  드릴까요? 아니면

주문하시겠어요?  아니면

식사는요? 아니면..

전에 음식점 가면 알바들이 뭐라고  했더라??

갑자기 왜 기억이 안나지.


그러던 사이에 내가 서있던 계산대 가까운데 아가씨 두 분이 자리를 잡았다.

뭔가 한참 이야기를 하며 들어왔는데 자리를 잡고도 채 이야기를 끊지 못했는지

내가 주문을 받으려고 서 있는 중에도 몇 마디 이야기가 더 이어졌다.


그리고서는 대화를 하는 중에 한 아가씨가 옆에 서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손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어이없게도 말문이 턱 하고 막히는 것이 아닌가.

젠장 그냥 주문표 들고 가만히 서 있기나 할걸


어떻게 말을 하며 주문을 받을지 고민을 하다 혼자 중얼거리며 손님을 보다 보니

마치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고개를 들며 눈이 마주쳤고

가뜩이나 여자 앞에서 말을  못 하는 성격에

생전 처음 보는 아가씨와 눈이 마주친 순간

이 밥통 같은 머릿속에 든 생각이라고는

‘아.. 이쁘다..” 였으니


말은 갑자기 막혀 안 나오고 머릿속은 그냥 지평선도 안 보이는

하얀 평원 위에 “아  이쁘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만 덧없이 휘날리는 것이 아닌가.


아침부터 양파를 죽어라 깐 탓인지

눈은 벌겋게 충혈이 되어 눈 주위는 부풀어 있었고

땀범벅에 헝클어진 머리는 에어컨 바람에 다시 마르면서 아침에 덕지덕지 바르고 나온 헤어 젤이 다시 효력을  발휘하며 떡이진 상태로 마치 며칠 머리도 안감은 사람처럼 산발이 되어 굳어있었다.


뒤 빠진 슬리퍼 탓에 삐딱하게 짝발을 하고 벌건 눈이 풀려 쳐다보는 이 서빙에게

그 아가씨는 분명 위협을 느꼈던 것 같다.

“네?”


아가씨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순간 다행히 정신이 돌아왔다

나도 어서 멘트를 해야지.

“뭘  드시지요?”

“네?”

아가씨가 놀라 쳐다본다

“뭐 뭘…  그니까.. 드 드셔야… 아놔 ;;;”


아가씨는 앞에 있는 친구 말을 막더니

“얘  얘!! 말 그만하고 어서 주문해”  

이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그 많은 멘트를 두고

뭘  드시지요라니.;;;;

내 얼굴은 물론 귀와 목까지 후끈거리며 벌게지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손님 뒤로 가게 창문이 보이고 그 밖으로 평온한 일상의 모습이 지나간다

난 대체 아침부터 여기서 뭘 하고 있단 말인가. ;;

“칼국수 하나 하고 만두 주세요”


어찌 되었던 첫 주문을 받았다

가만있자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전표를 두개를 적고 하나는 계산대에 하나는 주방에

첫 실수를 만회하려 했는지 아니면 어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는지

난 잽싸게 전표를 적고 하나는 계산대에 하나는 주방 앞 카운터 꽂고는

다른 테이블을 향해  뛰어갔다…


뛰어가면서 혼자 속을 중얼거렸다.

주문하세요..

주문하세요

주문하세요.


내가 정한 멘트는 주문 하세요다.

이번에는 실수 없이 멘트를 해야 한다.


다른 손님들이  앉은자리에 가서 난 당당히  이야기했다.

“주문하세요”

성공이다.

한마디도 틀리거나 떨거나 버벅대지 않고

초보가 아닌 숙련된 서빙의 모습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멘트를 날렸다

나 혼자 가슴이 막  벅차올랐다


티 안 났어! ㅎ

나도 할 수 있어.. ㅎㅎㅎ


그때였다 감동도 잠시,

주문을 받고 전표를 쓰려는 순간

마치 서슬 퍼런 칼날에 등짝이 갈리듯 차가운 땀방울이 등줄기를 가르며  달렸다..

머릿속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아차.. 테이블 번호


그렇다!!

처음 받았던 주문 전표에 테이블 번호를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 식당에는 테이블이 총 29개가 있었다

일층에 19개 일층 벽 사이드에 철근으로 억지로 만들어 올린 간이 2층에 10개


주방과 홀 사이에는 흔한 식당처럼 주방 사람들의 허리가 보일 정도의 기다란 창이 나아져 있고

그 창 아래에는 음식을 내 보낼 수 있는 은색으로 된 기다란 스테인리스 카운터가 있다.


주방에서 만든 음식이 커다랗고 동그란 은색 쟁반에 담겨 이 카운터 위에 올려지고

주방장이 주문했던 전표를 쟁반에 붙이면

홀에 있는 서빙이 쟁반에 붙은 전표의 테이블 번호를 보고 서빙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테이블 번호가 없으면 그 음식이 어디서 주문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자칫 그 음식이 다른 테이블로 가기라도 하면 전체 주문이 모두 꼬여 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만약 이 사실을 알면 저 깡패 같은 주방의 마귀들이 첫날부터 나를 잡아먹지 못해 난리가 날것이다.



어떻게 하지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자수를 할까

아니면 슬쩍 가서 전표를  찾아볼까…??


그때였다.

주방 쪽을 슬쩍 쳐다보는 순간

주방 창 사이로 아까 양파를 까주던 주방장이 나를 보면 서 손가락을 까닥까닥하고 있었다.

그 손가락 끝에는 주문 전표 한 장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야.. 신삥… 일루 안 튀어와?”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방 앞으로 잽싸게 달려갔다.  

“ 야 이쉑히 칼만 달란다”

주방 안으로 소리치자 카운터 위로 커다란 식칼 하나가 쿵하고 던져졌다.

“이거 네가 받은 거  맞지?
이런 또라이 새끼 칼만 달라고? 바쁜데 나랑  장난해?”


“ 죄송합니다.”


“만두야 만둣국이야?  디질래? 전표 니 맘대로 쓸 거야?
네가 들어와 음식 하던가..  븅신아?”

나는 카운터 위에 나무 손잡이 위로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있는 커다란 칼을 보며 연신 죄송하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힐끗 주방 안을 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주방장 둘에 보조 두 명 그리고 알바도 두 명 정도 보이고 나이 지긋한 아저씨도 한 명 있고

주방장의 열 받은 표정과는 달리 그 안에 사람들은 모두가 뭐가 좋은지 낄낄거리고 있었다.


“마 만두가 맞습니다.”

“계산대 앞에 있는 전표 찾아와. 그리고 테이블 번호 몇 번이야?”

“칠 번입니다.”

“어서 튀어 인마 “


아. 첫날부터 찍혔다. 차라리 아까 양파나 까던 때가 더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흘러 두시가 가까워지고

난 이미 체력에 바닥을 느끼며 혼이  들락날락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문을 받고 나르고 치우고

주문을 받고 나르고 치우고

일은 끝없이 반복되었고

원형으로 된 양은 쟁반에 스테인리스 그릇의 뜨거운 칼국수는

생각보다 들고 나르기가 쉽지 않았다.


차갑고 젖은 쟁반에 뜨거운 국물이 들어간 칼국수를 올리면

그릇 바닥의 공기가 팽창하며 호버크래프트처럼 그릇이 쟁반 위에 살짝 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릇은 찌그러진 쟁반 위에서  주룩주룩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정신없이 서빙을 하고  뛰어다니는데 주방에서 주방장이 소리쳤다.


“야..  홀..!! (주방에서는 항상 서빙들을 홀이라고 한 번에 불렀다)

더운데 이거 마시고 해라”

라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담긴 칼국수 그릇을 주방 카운터 위로 살짝  밀어주는 것이었다.

 지나가면서 슬쩍 보니

싱그럽고 깨알 같은 거품에 얼음이 동동 뜬  콜라였다.


“앗. 콜라다…. “


지금도 그렇지만 난 약간 콜라 중독자였다.

아직 밥까지 말아먹은 적은 없지만 누군가 말리지 않으면

나는 내가 하루에 콜라를 몇 병을 마셨는지 절대 세어보지 않는다.



콜라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바나나우유 하나 마시고

아직 물도 한잔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갈증이 마구 밀려오고 콜라 한 모금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덩그러니 대접 하나에 담아서 던져주니 내가 먼저 마시기도 눈치 보이고..

누군가 첫 테이프를 끊어 주기를 기다리며 주방 카운터 앞을  슬쩍슬쩍 스쳐 지나 기기를 여러 번

하지만 아무도 그 콜라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었다.

하긴 너무 바쁘니 눈치 보여서 먼저 마시기도 좀 애매하긴 하지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래도 마시라고 준 건데,

이렇게 갈증 나고 더운데 왜들 안 마시는 거야 …


난 슬쩍 안달이 났다.

그러면서 주방 카운터 앞을 지나려 하는데

갑자기 주방 보조가


“야! 신삥 콜라..”

하고 말하며 아까 그 콜라가 담긴 칼국수 그릇을 내가 지나가는 옆으로 슬쩍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그릇의 속도가 제법 빨랐다

나한테 준다는 것이 너무 세게 밀었나 보다.

콜라 그릇은 매끈한 카운터 위로 마치 스케이트를 타듯 바닥을 스치며 날아와

내 앞에서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반사적으로 그릇을 쥔 나는 손끝으로 전해오는 그 미칠듯한 콜라의 시원한 느낌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기 주방 보조는 성격이 참 착한가 보다

하긴 나이도 나랑 비슷해 보이는데 홀에서 고생하는 내가 너무 힘들어 보이긴 했나 보다

잠시 혼자 막 욕을 했던 것이 슬쩍 미안했다.


난 콜라를 손에 들고 그 주방보조에게 살짝 눈인사를 한 후 일단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지금 같은 갈증이면 콜라 한대 접이 아니고 1.5리터 한병도 원샷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콜라 위에 둥둥 떠 윗입술을 얼얼하게 만드는 얼음을 참아가며

정말 시원하게 냉장이 된 차가운 콜라 한 대접을 게눈 감추듯 숨도 안 쉬고 원샷에 비워버렸다.


그릇을  내려놓을 때 그 주방보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헛웃음을 치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저 저…  으악…”

왜 마디 비명과 함께 주방 안에 사람들이 모두 다 일제히 주방 창 아래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하하 놀리긴. ㅋㅋ 내가 콜라를 좀 잘 마시긴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놀랄 일인가.

콜라를 대접에 따라놓아 김이 좀 빠지긴 했지만

그 덕에 원샷을 하는데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홀에 다른 친구들이 못 마신 게 좀 미안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ㅎ



난 씨익 웃으며 엄지를 날렸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 일 없던 듯 돌아섰다.


그런데 너무 한 번에 마신 탓인지 갑자기 트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강한 트림이 ;;


하하 콜라를 많이 마신 내게 이것은 아주 익숙한 상황이다

이까짓 트림은 그냥 슬쩍 고개 돌리고 시원하게 해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트림이 올라오면서 트림만 올라오는 것이 아니었다

코에서 갑자기 노린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였는데?

혹시… 간장 냄새?

코로 진한 간장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트림과 함께 뱃속 깊은 곳에서 뭔가 묵직하게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어어  갑자기 왜 이래.. 이게  뭐야??”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주방 쪽으로 돌리는 순간

아까 쳐다보던 주방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일제히 손가락을 문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 야 야  야!! 화장실… 야! 신삥 화장실로  튀어.”


나는 순간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이미 트림은 오바이트를 동반하고 쓰나미처럼 밀려와 이미 내 목젖까지 치고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일단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뛰었다.

먼저 올라온 가스가 간장 냄새를 진동하며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입과 코로  피식피식 분출되고 있었다.

다행히 화장실은 가게 안에 있었고 순시 간에 뛰어가 변기를 움켜잡고 무릎을 꿇었다.


“우 웨에에엑 —— 끄으으윽.
우웨엑 끄으윽 꺼억 … 우웩  꺼억… .... 꺽!!“


트림과 오바이트를 같이 해본 적이 있는가?

코로는 간장 향이 나는 콜라 가스가 올라오고

입으로는 오바이트와 트림을 번갈아하며 호흡을 달래고 있었다.

콧물에 눈물에 침에 범벅이 된 얼굴로 변기를 잡고 실랑이를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등을 두들겨 주는 것이었다.

“야.. 신삥… 아무리 그래도 그걸 원샷을 햐냐…
이거 진짜 웃긴 놈이네… “

돌아보니 아까 양파를 까주던 그 주방장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차가운 콜라와 간장을 섞어서 얼음을 동동 띄워

새로 온 서빙에게 하는 일종의 신고식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보통 대부분 한 모금 정도 마시고는 던져버리는데

나처럼 들고 원샷을 한 놈은 처음이었다고.

거기 서빙들은 모두 다 그것이 간장 콜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눈치를 보고 안 마시니까 주방 보조가 내가 지나갈 때 슬쩍 콜라는 날린 것이다.


화가 나고 짜증도 나고 웃기기도 하고..

물론 나중에 내가 개발한 "미원 사이다"의 위력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암튼 주방장형이 등을 두들겨주며 말했다.

“ 신삥.. 암튼 반갑다… 잘 지내보자 ㅋㅋㅋㅋㅋ “


퇴근시간까지 아직 7시간 남았다…

그리고 오늘은 알바 첫날이다. ;;



간장 콜라 편 끝..

다음 편에는 칼국수집 아르바이트 수난기 두번째 에피소드 “백팔십마의 기록”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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