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었던 내가 마음이 바뀐 이유

나이야, 간다 (1)

by ThisJunghye

4월이 되면 싹이 트고 꽃들이 피는 생동감이 한창 넘치는 달이건만, 나는 4월이 심적으로 1년 중 제일 힘들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중2 때 대형 참사로 초등학교 때 친구 둘을 하늘나라로 보냈고 한동안 동네에서 보이지 않았던 친구가 다음 해 지역 신문 1면에 양쪽 다리를 잃은 모습이 사진으로 담기는 일이 있었다. 친구들이 죽고 나서 그 사실을 받아 들이기 힘들었고 모태 신앙으로 교회를 열심히 다녀왔던 나는, 교인 분들이 ‘친구들은 원죄가 있어서 떠난 거다/기도를 열심히 해라’는 말을 위로랍시고 나에게 던져 계속 상처만 깊게 만들었다. 엄마에게 ‘교회 다니라는 말도 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화를 냈다. 참사의 원인을 밝혀내고 함께 피해자들을 위로해야 할 동네 사람들이 그저 ‘어른들이 알아서 할 테니 빨리 잊고 너희는 공부나 해라’고 말하는 게 싫었다. 어른이 되기 싫었다. 자신의 삶을 착하고 성실하게 살던 두 친구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넌 것이 너무 슬퍼 하루하루가 괴롭고 음식은커녕 물도 삼키지 못하고 토하는 증세가 심각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결심했다. 죽자. 살아서 뭐해. 이런 무책임한 어른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내가 아등바등 열심히 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다들 한참 잠든 새벽 3시 무렵, 같은 방을 쓰는 언니가 2층 침대 1층에서 곤히 자는 것을 확인하고 의자를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창문을 열어 틀 위에 올라섰다. 두 눈을 감았다. 심장이 엄청나게 쿵-쾅 쿵-쾅, 했다. 아까 봤던 반짝이는 하늘의 별들이 자꾸 아른거렸다. 원래 고소공포증이 있었기에 일부러 아래를 쳐다보지 않았다. 망설이지 말고 얼른 끝내자. 바람도 날 부르는 듯 잘 불고 좋네. 친구들 곁으로 가자. 손만 놓으면 돼! 손을 놔!


마지막이 될 깊은 숨을 내뱉은 순간,

지난 14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 필름의 마지막은,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내 친구 A와 J가...


나는 창틀에서 내려왔다. 의자를 제자리에 놓고, 창문을 닫고, 2층 침대에 올라 자리에 누웠다. 이불을 악- 깨문 채 소리 없이 울었다. 참은 소리는 내 속으로 파고들어 아프게 찔러댔다. 그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자살 시도는 끝났다.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었다. 당시 몇 해 전에 책과 영화로 만들어 지면서 이 문구 자체가 당시에도 자주 쓰이곤 했었다. 실제 주인공은 불치병의 소녀여서 ‘오래 살고 싶다’라는 말이었지만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었다. 그런 내가 스무 살을 넘겨 두 바퀴를 돌아 머지않아 오십 살이 된다. 그렇게 마음이 바뀌게 된 건 바로 극장에서였다.


영화 봄 이야기 스틸컷.jpg 영화 <봄 이야기>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이십 대를 여러 문화예술 현장에서 기획과 마케팅 업무로 바쁘게 살았던 나는 서른 살을 앞두고 수고한 나를 위해 선물을 하기로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창작에 대한 열망이 컸지만 창작자들을 서포트하는 일을 직업으로 그들 근처에서 희열을 느끼던 나는 더 늦기 전에 창작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래서 서른 살의 일 년 동안 영화 수업을 들으며 오롯이 영화만 보고 생각하기로 했고 그러기 위해 이십 대 말에는 열심히 돈을 모았고 그 계획을 성공했다.


내가 영화 수업을 들었던 극장은 현재는 운영되지 않는 바닷가에 있는 작은 극장이었다. 나름 매니아들이 전국에서도 오는 곳이었는데, 독립영화 뿐만 아니라 탄탄한 기획전을 매번 준비해서 그 기획전들만 따라잡아도 국내외의 영화사를 쉽게 훑을 수 있었다. 보통 영화를 볼 때 어떤 영화인지 대충 알고 난 다음에 보겠지만, 그 당시엔 일단 보고 내 머리와 가슴 속에서 정리해 나갔다.


그러다 만난 사람이 바로 ‘에릭 로메르’ 감독이다. 요즘처럼 깨끗한 디지털이 아닌 은은한 필름 속에 담긴 아름다운 계절들의 풍경(에릭 로메르 감독의 대표작이 계절 시리즈다) 속에 연륜이 느껴지는 삶의 깊이란! 마치 동네 할아버지가 같이 산책하면서 ‘사는 게 이런 거야, 괜찮아’라고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 푸근함이 좋았다. 이런 어른이 15년 전, 내 곁에 있었다면 난 덜 슬프고 살아갈 힘을 찾았을까?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모델을 찾았다. 이런 어른이 된다면 나이 먹으며 사는 게 괜찮은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꼰대처럼 지적질하고 강요하는 어른이 아닌,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세상은 살만 하다고 말해 주는 어른.


나는 그런 어른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내고 있다.

그런 어른이 되려고 말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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