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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은 Apr 05. 2019

빛 좋은 개살구를 거쳐

이제는 연차 쓰고 사원증 걸고 다니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

1.

화려해보이는 방송작가,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스타트업을 잠시 거쳐 평범하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너무나 평범해서 내 인생에는 없을 것 같았던 선택지, 직장인. 잘한 선택일까? 이 선택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정말이지 감이 1도 오지 않지만, 우직하게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떤 일이 내 인생에 펼쳐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타이밍'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력 공백이 더 늦어지면 안된다는 나의 강력한 니즈와 회사 측에서 원했던 면접일과 이후 입사일이 잘 들어맞으며 아무 문제없이, 무탈하고, 순탄하게- 일이 진행되었다.


2.

입사 후 어느덧 한달하고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꼬박 지나갔다. 즉시 인력을 찾는 방송을 떠나 정식으로 조직의 일원이 되고 나니, 세상에 없던 교육(인수인계) 기간이 2주나 주어져 당황스러우면서 행복했고, 늘 프리랜서 신분으로 오롯이 버텨내다가 근로기준법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드디어 나도  4대 보험을 들었고, 연차라는 걸 써본다.


3.

큰 회사를 곁에 두는 작은 조직에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큰 회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데, 말로만 듣던 조직 생활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고, 이걸 이제야 알다니 마치  10살 짜리 어린애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나 그동안 도대체 어느 우물 속에 들어있었던 걸까? 큰 회사라는 게 낯설었고, 너무 신기했고, 부러웠고, 지금은 그래도 별로다 싶다. 익히 알다시피 장점이 너무너무 큰 만큼 단점도 큰데, 내가 견딜 수 없는 단점이라서. (신포도 느낌이 든다면 맞다. 부러우면서 싫어! 그래도 부러워..)


4.

서른 살이 넘어서야, 그것도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야 겨우겨우 깨달은 것은, 나는 그동안 너무 열심히 '혼자' 살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과 어울려야 하는데, 나는 의도적으로 그 모든 것을 버렸고, 지금은 그 때의 그런 모습이 참 후회된다. 혼자를 추구한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내가 거부할 수 없는 환경적 이유들) 그래도 그러지 말 걸. 같이의 중요성을 조금 더 빨리 알았으면 참 좋았을텐데. (심지어 방송작가 일도 혼자 하는 일에 속한다..!) 함께 일하는 경험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매순간 느낀다.... 사실 그러면 아예 혼자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지만, 문제는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일하고 싶다. 혼자 일하는 게 너무 지긋지긋하고 외롭다. 같이 뛰어들고 같이 고생할 전우가 있으면 좋겠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5.

아주 오랜만에 나의 존재가 먼지처럼 작아지고, 그러면서 분노, 열등감, 패배감이 몰려오는 순간을 만났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다 나의 착각이었고, 나 빼고 모든 사람이 너무 너무 열심히 살고 있었다. 이런 순간을 맞이해서 너무 씁쓸하지만 반면에 너무 기쁘다. 이런 순간을 바로 기회라고 부른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매 순간 배울 것 투성이다. 그동안 흘려보낸 시간들(다른 방향으로 쌓아온 시간들^^)만큼 현재를 쌓아가기 위해서 아둥바둥. 그런데, 이게 나 혼자 한다고 발전하는 일들이 아니라 같이 아이디어 짜내고 고민해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멤버들을 만나 스터디를 하고 싶다. ㅜㅜ 라고 유부녀가 말했습니다.... 휴 나는 늘 한 발 늦는다 정말.


6.

DO WHAT YOU LOVE. 나를 돌아보면 좋아하는 분야와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교집합이 존재하지 않기도 하나 보다... 서글픔. 그래도 나는, 여전히 헛물 들이키는 걸 수도 있지만, 교집합이 없다면 만들어내고 말겠다고 날마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영원히 오지 않더라도 끝없이 꿈꿀 꺼야. 대신 현재를 사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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