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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은 Sep 06. 2021

30대의 고독한 무게

I gotta keep breathing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의 이십대 후반은 치열했다.

오늘의 나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후회라는 감정과 싸웠다.

지금까지의 시간은 나를 정의할 수 없으며 나의 시작점일 뿐이라고,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수 있도록 웅크리고 있던 나를 두드려 깨웠다.


방향 몰라 표류하던 때를 지나,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열심히 노를 저었다.

때로는 풍랑에 휩쓸려 허덕이기도 하고, 때로는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에 말라가기도 했다.

악에 받치면서도, 더 못 가겠다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여기서 포기하지 않으면, 꼭 고생한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이 악물고 버텼다.


그렇게 서른이라는 나이를 통과하며

나는 어딘가에 어찌저찌 도착해서 자리라는 걸 잡게 되었다.


마침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더이상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위협에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여기까지 싸우고 버텨온 힘이 있으니,

자리잡고 사는 것쯤이야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자꾸 불안했다. 계속 초조했다.

어딘가 모르게 삐걱였다.

정체모를 감정에 휘둘렸다.


한 마디로, 내가 도착한 이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새 뿌리내려 움직이기도 쉽지 않아진 지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건 내가 생각하던 모습이 아니라며

한번 더 앞뒤 없이 거친 파도로 뛰어들기에는 엉덩이가 무거워졌다.

또다시 뜻모를 바다에 내던져지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졌다.


그렇다면 이대로 만족하며 살아야지 마음 먹어도 자꾸 다른 게 눈에 들어온다.

나와 다른 성적표를 받아든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신경이 쓰인다.


이도 저도 못하고 마음만 둥둥, 발만 동동

부풀었던 꿈이 비누거품처럼 사그라드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이다.


당장 어디로 가야만 하는 절박함의 20대를 지나

이미 움직일 수 없게 된 박탈감이 더해진 30대의 고민을 마주한다.

이제는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려 해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들 수고의 시기를 지나 어엿한 어른이 되었는데, 나만 아직도 머물러있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온 내 판단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만 같아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싶다가도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결정을 내릴 건데,

그 때 나는 분명히 옳은 선택을 했는데,

그래 그렇다면 잘못한 부분이 없다.



괴리감.

기대했던 미래는 신기루였을까. 어디로 가버린 걸까.

이쪽으로 열심히 달리다 보면 길이 보일 줄 알았다.

출발선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산 넘고 강 넘어 달리다 보면 도착지로 향하는 길이 나올 거라고 믿었는데

이상하다.


시간은 모두에게 상대적인 것이라

꼭 서른 즈음에 무언가를 성취하고 이뤄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잘 알지만

(일반적인 성공 말고 각자 기대했던 모습의 성공.)

마음과 달리 몸이 점차 시드는 것이 확연히 느껴지는 지금,

여유를 갖기란 쉽지 않다.

마치 강제로 장기 투자해야 하는 주식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나마 다행인 것은

30대 초반에 겪는 이 불안함, 이 우울함이 나만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책이나 영화, 드라마와 같은 많은 작품에서 그려지고 있으니.

조급해할 필요 없는 시기라고,

얼마든지 꽃피울 수 있는 때라고 이야기해주는 그 목소리를 믿어봐도 될까.

하긴, 믿어보는 거 말고는 선택지가 없기도 하다.


그래 그러고 보면

다 똑같은 이야기일 뿐일지 모른다.

그 보편성이, 특별하지 않음이 위로가 되는 날.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보여도

딱 하나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숨을 쉬는 것.

그렇게 순간순간을 이어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올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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