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윤리 BVS.10 | EP.1
성과는 성과표에 남는다.
하지만 신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보고서를 제출하고 자리에 돌아온 순간이었다.
팀장이 조용히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이 수치는 지난주랑 다르네. 왜 바뀐 거지?”
나는 순간 당황했다. 급하게 엑셀 파일을 다시 열며 변명을 꺼냈다.
“지난주랑 기준이 조금 달라졌어요. 사실… 어제 저녁에 데이터를 수정했는데, 시간도 늦고, 설명을 따로 안 붙였네요.”
팀장은 말을 멈추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다음부턴, 사소해 보여도 꼭 말해줘.
보고서는 숫자보다 신뢰로 보는 거니까.”
나는 그 말을 그저 원칙적인 당부쯤으로 흘려들었다.
하지만 며칠 뒤, 그 말이 어떤 무게였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그 일은 어느 납품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고객사 담당자는 예민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유명했고,
우리 팀은 정해진 마감기한에 맞추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날도 밤늦게까지 엑셀 자료를 다듬고 있었다.
문제는 파일 하나였다.
협력업체에서 받은 원가정보가 일부 누락된 상태로 전달되었고,
나는 그것을 감춰둔 채 ‘평균값’을 대입해 넣었다.
‘대세에 지장 없는 수준이니까.’
‘어차피 나중에 다 맞춰서 정산하니까.’
‘정확한 건 내일 오면 업데이트하면 되지.’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 익숙한 유혹 앞에서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이 정도는 말 안 해도 되지 않나?”
하지만 세상은 그런 사소함을 가볍게 넘겨주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고객사 미팅이 열렸다.
프로젝트 담당 임원은 내 자료를 보며 한참을 살펴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 원가 산정 근거가 빠져 있는데, 혹시 아직 확정이 안 된 겁니까?”
나는 머뭇거렸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사실은 협력사에서 아직 일부 자료가 도착하지 않아서요.
어제는 급하게 제출하려고 임시로 평균값을 넣었습니다.”
그 순간, 분위기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나의 의도는 악의 없었지만,
그 순간 나에 대한 신뢰는 명확히 꺾였다.
회의가 끝난 후, 팀장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보고서를 수정하는 건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우리가 고객에게 말하지 않은 ‘의도된 생략’이 있다는 거야.”
그 말은 머릿속에 박혔다.
‘의도된 생략’이라는 말은 나를 아프게 했다.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지만,
그 침묵이 만들어낸 결과는 상상보다 더 컸다.
그날 이후, 나는 바뀌었다.
‘정직’이라는 단어는 도덕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라,
신뢰의 언어이며
일을 맡기는 기준이며
조직의 버팀목임을 이해하게 됐다.
정직은 성과보다 먼저 보여야 하고,
말하지 않은 진실은
말한 거짓보다 때로 더 위험하다는 사실도.
“모두 다 그렇게 해요.”
“그 정도는 원래 다들 넘어가요.”
“정확하게 하면 오히려 일이 안 굴러가요.”
회사에서 처음 들은 이런 말들이,
처음엔 이상하게 들리다가 점점 익숙해졌다.
익숙함은 곧 기준을 바꿨고,
기준이 바뀌자 행동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날은 팀의 월간 실적 보고서를 작성하던 날이었다.
내가 맡은 지표 중 하나는 공급망 이슈로 인해 하락한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상 내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 항목이 팀 전체 실적에 치명적인 ‘붉은 점’으로 찍힐 수 있었다.
나는 보고서를 수정하던 도중 이런 유혹에 빠졌다.
“단기 데이터로 보면 회복세잖아.
지난주 데이터만 뽑아서 넣으면 그래프 모양이 괜찮아질 거야.”
잠시 손이 멈췄다.
머릿속에는 여러 핑곗거리가 떠올랐다.
‘사실이 틀린 건 아니니까’,
‘결과는 좋게 나와야 하니까’,
‘보고용이지 최종 의사결정용은 아니잖아’…
그러곤 곧,
그래프의 시작점을 살짝 앞당기고,
기준 주차를 바꾸었다.
차트는 깔끔하게 상승곡선을 그렸다.
팀장은 “이번 달 성과 괜찮은데?”라고 말했고,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였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이
내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패처럼 느껴졌다.
지각 출근을 슬쩍 시스템 상으로 조정하는 일,
회의록에 빠진 대화를 일부러 생략하는 일,
지시사항을 한 단계 누락한 채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일…
이런 사소한 왜곡들이
마치 조직 내에서 ‘합리적인 요령’처럼 작동하고 있었고,
나 역시 그 흐름에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정도는 다들 하니까’ 라는 생각이,
내 스스로의 기준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일찍 터졌다.
한 번은 회계팀과 실적 보고 기준을 조율하던 중,
내가 만든 그래프에 대해 회계팀장이 물었다.
“이거 기준 주차가 왜 변경되었죠?
전월 보고서랑 달라서, 추이 비교가 어렵습니다.”
나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편의상’ 바꾼 거였고,
누구의 승인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저 나 혼자,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팀장에게 불려가
정식으로 보고서 작성 기준과 윤리에 대한 주의를 받았다.
“네 판단이 문제라기보단,
그 판단을 조직의 기준 없이 혼자 했다는 게 더 문제야.”
그 말은 나를 정곡으로 찔렀다.
‘나 하나쯤이야.’
‘이 정도쯤은 괜찮아.’
‘다들 그렇게 하니까.’
이런 생각들이 모여
결국 조직 전체의 기준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신뢰 기반을 허물어뜨린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직업윤리는
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고 사소해 보이는 습관들을 관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윤리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우리는 언제든 또
“이 정도는 말 안 해도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
어느 날, 퇴근을 앞두고 팀 전체 메신저에 공지가 떴다.
“내일 오전까지 지난 분기 결과표에 대한 피드백 정리 바랍니다.”
이미 퇴근 준비 중이던 나는 노트북을 덮고 말았다.
“내일 아침에 해도 되겠지.”
그런데 그날 밤, 한 팀원이 슬쩍 공유 문서에 의견을 남긴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문장을 보고 나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해당 수치는 지난해 4분기 수치 기준입니다.
현장 보고서와 다를 수 있으므로 추가 검토가 필요합니다.”
분명 사소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이 문장을 남긴 그 동료는,
단지 ‘정확성’을 챙긴 것이 아니라
‘자신이 놓인 윤리적 위치’를 놓치지 않은 사람이었다.
직업윤리란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옳고 그름’이 아니다.
현장에서 윤리는 ‘태도’로 나타난다.
누가 보지 않아도 자료 출처를 명기하는 태도,
잘못된 정보를 알았을 때 모른 척하지 않는 태도,
일을 빨리 끝내는 대신 정확히 끝내는 태도,
책임이 명확하지 않아도 먼저 움직이는 태도.
이런 행동은 실적에 바로 반영되지 않는다.
성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팀 안에서 ‘신뢰의 기준선’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다.
한 선배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윤리는 결국 일을 대하는 태도야.
네가 만든 보고서, 네가 보내는 메일, 네가 하는 말,
그게 다 너의 윤리야.”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뜨끔했다.
특히 메일에서 ‘cc’를 빼놓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 기억,
협력사의 불편한 피드백을 일부러 생략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땐 어쩔 수 없었어.’
‘별일 아니었어.’
‘다들 그렇게 해.’
하지만 이런 일들이 쌓이면, 결국 나라는 사람의 윤리가 만들어진다.
윤리는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규칙이 아니라,
내 안에 항상 켜져 있는 기준점이다.
내가 선택한 매 순간이
팀에게는 어떤 ‘신호’가 된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나는 일할 때 나 자신에게 먼저 묻기 시작했다.
“이건 상황 때문인가,
아니면 내 태도 때문인가?”
태도가 기준이 되면,
상황은 변해도 선택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날도 야근이 예정된 저녁이었다.
팀장은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늘 보고한 자료, 그 부분 다시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문제는 '실수'였다.
고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실수는 단순 숫자 오류가 아니었다.
'사실관계'를 왜곡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었다.
회사의 규정에 따르면,
그 보고서는 이미 제출되었고,
기한 내에 수정 요청을 하지 않는 이상
수정 문서로 대체하기 어렵다.
“이대로 가면 어차피 큰 문제는 없어.
다들 모를 수도 있고,
다음 달에 수정하면 돼.”
내 속에서는 또다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되는 거 아냐?’
‘당장 큰 피해 없으면 굳이…’
‘기한도 지났는데 다시 제출하면 오히려 번거로워질 텐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안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윤리는 ‘나중’에 따지는 게 아니야.
‘지금’ 행동이 기준이야.”
결국 나는 메일을 다시 열었다.
내용을 정리하고,
정확한 수정을 기재하고,
팀장과 협력부서 담당자, 그리고 상무님까지 포함해
수정 보고서를 정식으로 재발송했다.
메일 말미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기한이 지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자료 확인 중 오류를 발견해 부득이하게 수정 보고서를 제출드립니다.
업무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부득이한 판단이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날 저녁, 팀장은 아무 말 없이 내 자리에 와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잘했어. 고맙다.
우리가 일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거니까.”
그 한마디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성과보다 먼저 ‘신뢰’를 지킨다는 것,
그 신뢰는 숫자나 마감일보다 더 오래 남는다는 걸
나는 실천으로 배웠다.
그 이후, 내 메일은 달라졌다.
말투도 달라졌고, 보고서의 부가 설명도 달라졌다.
‘누가 보더라도 맥락이 보이게 쓰자’,
‘불완전한 정보는 반드시 부연 설명을 붙이자’
라는 나만의 직업윤리 기준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윤리는 말로 배울 수 없고,
결국 한 번의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실천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을
‘내가 먼저 하는 일’로 바꾸는 순간에 생긴다.
수정 보고서를 제출한 다음 날,
조직 안에서는 예상보다 조용한 하루가 흘러갔다.
누군가 공개적으로 칭찬하거나,
메일을 회람하며 ‘이런 태도를 본받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
마치 그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그런데 며칠 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성과평가를 마친 팀장이 나를 따로 불렀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분기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는 거, 알고 있지?”
“성과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태도였어.
지난번 수정 보고서 이야기,
상무님도 직접 언급하셨거든.”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한 일은,
‘정직한 수정’이었을 뿐이고,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상무는 그 행동을 달리 보았다.
“문제를 숨기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책임지며 다시 작성한 태도.
그게 바로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의 기준이야.”
사실 회사에서 ‘정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성과지표에도, KPI 항목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직한 태도를 기억하고,
그 행동을 신뢰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곧 조직의 비공식 평가 기준이기도 하다.
프로젝트가 새로 생기면,
업무를 위임할 사람을 정할 때면,
갑작스러운 고객 요청에 응대자를 지명할 때면,
사람들은 숫자보다 ‘그 사람의 평판’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평판은 결국 태도에서 비롯된 신뢰의 무게다.
회사는 언제나 정답만을 요구하진 않는다.
정직하게 접근하려는 자세,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태도,
함께 일해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을 원한다.
나의 작은 실천 하나가
내 신뢰를 만들고,
그 신뢰가 결국 내 일의 기회를 확장시킨다는 걸
나는 그날 이후 알게 되었다.
조직이 원하는 건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그 책임을 어떻게 다루는 사람인가를 보는 것이다.
성과는 눈에 띄지만,
태도는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태도가 결국,
당신이 조직 안에서 맡게 되는 역할의 깊이와 폭을 결정한다.
우리가 직업윤리라고 부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보통 ‘정직’이나 ‘성실’이다.
하지만 실제 업무 현장에서
직업윤리의 핵심은 이보다 훨씬 구체적인 개념,
바로 ‘투명함(Transparency)’으로 드러난다.
투명하다는 건,
누구나 내용을 보고 과정을 추적할 수 있으며,
의사결정의 기준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곧, ‘신뢰 가능한 정보’가 있다는 뜻이다.
직장에서 투명함은 이렇게 실천된다.
회의록에 논의된 주요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하기
보고서에 사용된 근거와 출처를 명시하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고 숨기지 않기
의견 차이가 있을 때, 감정을 섞지 않고 논리로 말하기
실수나 오류를 덮지 않고 인정하며 다음 방안을 제시하기
이처럼 투명함은 정직함보다 한 발 더 실천적인 태도다.
정직이 ‘내 마음의 기준’이라면,
투명함은 ‘상대방도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말한다.
성과도 중요하지만,
성과를 바라보는 사람 간의 신뢰가 없다면
그 성과는 쉽게 무너진다.
예를 들어,
매출이 급등한 보고서를 받아든 상사는
내용이 의심스러울 때 숫자보다
“이 직원은 평소 자료 근거를 꼼꼼히 정리했는가?”를 먼저 떠올린다.
즉, 성과의 무게는 태도의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
투명하게 일해온 사람은
작은 성과에도 신뢰를 얻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큰 성과에도 의심을 받는다.
기업의 위기는 언제나
‘은폐된 문제’에서 시작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솔직하게 보고하지 않고,
‘조용히 덮자’는 식의 문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리스크로 돌아온다.
반면,
투명하게 문제를 드러내고
신속하게 대응한 조직은
오히려 회복탄력성과 신뢰를 동시에 얻는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실수를 숨기기보다는
실수를 인지한 시점부터 공개하고,
변명보다는 원인과 해결책을 함께 제시하고,
혼자 판단하지 않고 의견을 공유하는 태도는
‘일 잘하는 사람’보다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만든다.
윤리는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발휘하는 정직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무언가 잘못되지 않도록 일하는 방식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내가 쓰는 메일 한 통,
내가 올리는 회의 자료 한 장,
내가 보고하는 숫자 하나에서부터 시작된다.
정리하자면,
직업윤리의 핵심은 고귀한 이상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숨기지 않고, 명확하게, 함께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투명함,
그리고 신뢰의 시작점이다.
회사 인트라넷에 새롭게 탑재된 문서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름하여, ‘업무 윤리 기준 매뉴얼’.
형식은 단순했다.
자주 발생하는 업무상 상황들을 나열하고,
그에 따른 행동 원칙을 예시와 함께 정리해 둔 문서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협력사 자료를 회의자료에 포함할 경우, 출처를 어떻게 명시할 것인가?
동료의 실수를 발견했을 때,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가?
보고 기한이 늦어질 경우, 타 부서에 어떻게 사전 고지할 것인가?
‘누가 이런 걸 만들었을까?’
궁금해서 관리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신입사원 출신 팀장 하나가 만든 거야.
입사 초기에 겪은 모호한 윤리적 상황들을
매번 기록해두다가 정리했대.
어느 날 회의에서 그 노트를 꺼내 보여줬더니,
전사 매뉴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지.”
윤리는 누가 시켜서 배우는 게 아니다.
자신이 겪은 경계선에서 기록되고,
그 기록이 조직을 바꾸는 힘이 된다.
우리는 대부분 윤리에 대한 매뉴얼 없이 일한다.
하지만 그 공백을 메우는 사람,
경계의 순간마다 멈춰 서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사람은
조직의 윤리적 방향성을 만든다.
그 팀장은
윤리란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준을 만드는 실천이라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나는 그 매뉴얼을 프린트해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
그리고 업무 중 판단이 애매할 때마다
잠시 멈춰 그 문서를 들여다봤다.
“나는 지금,
이 기준에 맞는 선택을 하고 있는가?”
그 질문 하나로
나의 보고서는 달라졌고,
동료와의 대화는 정제되었고,
무의식적인 판단은 조금 더 명확해졌다.
윤리란 결국,
기준을 세우는 사람과
그 기준을 지켜주는 사람 사이에서 자란다.
그리고 그 시작은,
단 하나의 매뉴얼로부터 가능하다.
직장에서 우리는 늘 ‘성과’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수치로 드러나는 결과,
비교 가능한 실적,
승진과 보상으로 이어지는 결과물.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중요한 기준은 숫자가 아닌 ‘사람’에서 생긴다.
성과는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성과가 얼마나 ‘신뢰 위에 쌓인 것인가’를 묻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짓 없는 과정,
감추지 않은 설명,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선택 —
그 모든 작은 행동이,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을 만든다.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그 가치를 과소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순간,
조직은 숫자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위기 상황에서 함께할 사람을 정할 때
새로운 기회를 줄 사람을 선택할 때
민감한 업무를 맡길 대상을 결정할 때
그때 기준이 되는 것은
“이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가?”다.
그리고 그 신뢰는
‘말하지 않아도 행동에서 드러나는 직업윤리’에서 비롯된다.
윤리는 선택의 순간마다,
잠깐 불편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가장 잘한 선택이 되게 만든다.
‘지금 당장 편한 길’이 아니라,
‘조금 더 투명하고 정확한 길’을 고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윤리를 실천하는 사람이며,
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된다.
이 글을 마치며,
당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기고 싶다.
“당신은 지금, 어떤 신뢰를 쌓고 있습니까?”
성과는 성과표에 남는다.
하지만 신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음 기회를, 다음 협업을, 다음 리더십을 만든다.
그러니 기억하자.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