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윤리 BVS.10 | EP.2
윤리는 어려운 철학이 아니다.
그저 내가 지금 내린 이 결정이
모두에게 같은 기준으로, 같은 설명으로 통용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선배, 어제 회식비는 누가 결제하셨어요?”
프로젝트 마무리 기념 회식 다음 날, 회계팀에서 온 질문 하나가 분위기를 바꿨다. 모두가 즐겁게 마쳤다고 생각했던 회식이었는데, 누가 어떤 카드로 결제했고 그 영수증은 어디로 들어갔는지를 두고 갑작스런 침묵이 흘렀다. 평소처럼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던 사소한 결제 내역이, 이날만큼은 묘한 긴장감을 만들고 있었다.
그날 회식은 전체 팀 12명이 참석한 제법 큰 자리였다. 기존에는 팀장이 법인카드로 처리하거나, 간혹 선배 중 한 명이 결제한 뒤 회계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암묵적으로 그렇게 해왔고, 굳이 문제 삼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담당자가 바뀌면서 회계팀이 회식비 처리 방식에 대한 확인 절차를 강화한 것이다. 영수증, 참가자 명단, 승인 경로까지 모두 공식화된 문서를 요구받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말이 튀어나왔다.
“근데, 사실 어제 팀장님은 중간에 가셨고, 결제는 ○○선배 카드였어요. 근데 법인카드 아니고, 개인카드로 긁으신 것 같던데요?”
이 말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들고 서로를 쳐다봤다. 누군가는 “그래도 그동안 그렇게 해왔잖아”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그래도 이제는 투명하게 해야 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갑자기 분위기는 정색 모드로 전환됐다. 회식비처럼 작고 사소해 보이는 예산 건이 조직 내 불신의 불씨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 일은 금액의 크기보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그리고 ‘누가 이 과정을 조율했는가’의 문제였다. 업무와 직접적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이처럼 ‘공정성’이라는 감각은 업무 외적 상황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누구도 큰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애매한 회계 처리와 소통 부재는 결국 팀 내에 말 못할 균열을 만들었다.
그때부터였다. “공정하다는 감각은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작은 예산처리도 윤리의 일부인가?” 하는 질문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사소한 갈등은 곧 구성원 간 신뢰의 문제로 비화된다. 단지 누가 밥값을 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정직했고, 누가 공개했으며, 누가 기준을 만들었는가’가 중심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윤리’라는 단어는 엄숙한 규범이 아니라, 일상의 조그만 처리와 판단의 순간에서 진짜 드러난다는 것을. 그리고 이 작은 균열을 메꾸는 일이, 조직문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신뢰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갈등은 거창한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은 작은 판단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런 작은 판단이 쌓였을 때,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사람의 말보다 그 사람의 의도를 추측하기 시작한다.
회식비 문제도 그랬다.
카드 결제 한 건이었다.
그것도 고작 30만 원 남짓한 금액.
하지만 법인카드인지, 개인카드인지,
누가 동의했는지, 내역을 누가 회계팀에 제출했는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팀원 중 한 명은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도 이런 일 많았잖아요. 그냥 넘어가는 거.”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달랐다.
“그래도 이건 공적인 예산인데, 명확하게 처리하는 게 맞지 않나요?”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불편함을 입 밖에 꺼내지 않던 이들이
하나둘씩 자신이 느껴온 불공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출장비 정산도 누군가는 일주일 만에 받았는데, 나는 한 달이 걸렸어요.”
“중복된 항목인데 왜 그건 회계 통과됐는지 모르겠어요.”
“○○선배는 늘 본인이 먼저 결제하던데, 왜 항상 그쪽으로 몰리는지 모르겠어요.”
사소해 보였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며 ‘의심의 조각들’로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일부러 잘못한 것이 아니라,
일관되지 않은 방식과 불투명한 처리가 문제였다.
결국 일이 커지기 시작한 건
한 명의 팀원이 익명 게시판에 남긴 글 때문이었다.
“팀 내 예산 집행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특정 인원에게만 반복적으로 권한이 집중되는 것도 불편했고,
처리 과정이 늘 구두로만 이루어져 부담이 컸습니다.”
단 한 줄로 명명된 문제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불만들을 터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 글에는 여러 댓글이 달렸다.
“맞아요. 저도 비슷한 경험 있어요.”
“이런 얘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익명으로 말하고 싶었는데, 용기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회식비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공정성’의 문제였고,
‘그 기준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였다.
중요한 건
사소한 일이 조직의 신뢰를 흔든다는 것이다.
업무의 본질이 아닌데도,
업무 외적인 상황인데도,
그 일이 공동체 안의 감정과 태도, 그리고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것이 쌓이면,
사람들은 업무보다 사람을 경계하게 된다.
그날 이후로 팀장은 회식비뿐 아니라
모든 예산 집행의 기준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결제가든 명확히 기록했고,
언제, 왜, 어떤 이유로 이 금액이 사용되었는지를 문서화했다.
가장 먼저 바꾼 건 금액이 아니라 소통의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드디어 말할 수 있었다.
“이제는 묻지 않아도 되네요.”
“이게 맞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다행이에요.”
“이제야 진짜 팀 같아요.”
공정함은
큰 기준을 세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작은 상황에서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용기이기도 하다.
회식비 사태 이후, 팀장은 결심했다.
단순히 누가 결제했는지를 명확히 하는 차원이 아니라,
팀 안에서 ‘불문율’처럼 굳어져 온 관행을 다시 점검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회의 시간에 조용히 말했다.
“이 일은 누구 하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서로 묻지 않았던 방식이 이제는 더 이상 괜찮지 않다는 뜻이겠죠.”
그 말은 사과도, 반성도, 책임 전가도 아니었다.
그저 리더가 가장 먼저 기준을 꺼내놓는 행동이었다.
이후 팀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수립했다.
1. 모든 비용은 사전에 사유를 공유하고 사용한다.
2. 결제자는 회계 보고서를 48시간 내에 등록한다.
3. 누구든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익명 의견도 수렴한다.
이 작은 변화가
팀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라는 말도 있었고,
“우리가 이 정도로 감시받는 조직은 아니잖아요.”라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변화가 가져오는 편안함을 사람들이 체감하기 시작했다.
이때 중요한 변화는 ‘책임’의 중심이 이동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팀장 한 명만이 결정을 내렸고,
다른 이들은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새로운 체계 아래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기준을 공유하게 되었고,
자신이 참여한 회식, 출장, 회의 등에 대한 비용 구조를
스스로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리더 한 사람의 부담을 줄여준 것이기도 했고,
조직 전체의 의사결정 투명성을 높인 계기였다.
이런 변화를 만든 리더십은
권위적인 것이 아니었다.
지시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부터 윤리적 선택을 보여주겠다’는 선언이었다.
그것이 바로 윤리적 리더십(Ethical Leadership)의 시작이었다.
윤리적 리더는 말로만 정직을 강조하지 않는다.
스스로 회계 처리를 가장 빠르게 마감했고,
누구보다 투명한 문서를 만들었으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구했다.
어떤 날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회의비는 제가 팀 내외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기 때문에,
제가 개인적으로 부담하겠습니다. 다만, 이와 같은 경우의 기준은
다음 회의 때 우리 모두 함께 정하겠습니다.”
그 말은 팀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단순히 원칙을 세우는 게 아니라,
그 원칙이 모두에게 존중받도록 노력하는 자세.
그것이야말로 ‘신뢰받는 리더’의 조건이었다.
회계 문서 몇 장을 정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일에 ‘윤리적 기준’을 담기 시작하면,
그것은 단순한 업무가 아닌 조직문화의 토대가 된다.
이처럼 윤리는
매뉴얼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고,
규칙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 작은 태도 변화가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었다.
팀장이 윤리적 리더십을 선언하고 실천하기 시작한 이후,
팀은 단순한 관행 개선을 넘어 디지털 윤리 의사결정 도구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 도구의 이름은 EthicAdvisor였다.
이 AI 기반 도구는 윤리적 상황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회식비, 출장비, 외부 강사 초청, 명절 선물 등
일상적이지만 판단이 엇갈리는 회색지대 상황에 대해
구성원 모두가 ‘이해관계자 관점’에서 고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툴이었다.
기존의 회식비 예산은 팀장 중심으로 조율되거나,
담당자의 암묵적 판단에 따라 사용되곤 했다.
하지만 EthicAdvisor를 도입한 후, 팀은 세 가지 기준을 설정했다.
1. 회식 목적의 명확화
축하성, 위로성, 소통 목적 등 사전 명시
2. 참여자 비율 기준
전체 구성원의 60% 이상 참여 시 공동 예산 사용
3. 지출 승인 전 AI 시뮬레이션 실행
EthicAdvisor에 회식 시나리오 입력 후,
잠재적 이해관계자(불참자, 예산 관리자 등)의 관점 피드백 확인
이 도구는 단순히 “예” 또는 “아니오”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해당 결정이 가져올 수 있는 공정성 논란, 이해 충돌, 예외 처리 기준 등을
사전에 예상해주는 시스템이었다.
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회식비 같은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나갔는데,
한 번 EthicAdvisor에 넣어보고 나니,
내가 간단히 생각했던 결정이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특강을 위한 외부 강사를 초청할 때,
지급되는 강의료와 사례비의 기준은 불명확했다.
이전에는 팀장이 정한 ‘관례’에 따라 책정되었고,
그로 인해 일부 구성원은 “왜 누구는 30만 원, 누구는 50만 원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EthicAdvisor에 이 시나리오를 입력하자,
AI는 다음의 관점을 제시했다.
강사의 경력 및 전문성 비교 지표 부재
유사 강의료 비교 대상 데이터 부족
사후 피드백 반영 유무 없음
그 결과, 팀은 다음과 같은 표준 프로세스를 마련하게 되었다.
1. 강의 요청 전, 예상 사례비에 대한 AI 피드백 확인
2. 유사 주제/경력 기준 강의료 평균 추출
3. 강의 후 피드백 설문 및 공개 리포트 작성
AI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팀원 모두가
“이 결정이 누군가에겐 불편하거나 불공정하지는 않을까?”
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사람들은 처음으로 ‘윤리’라는 주제를 일상 업무에서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업무의 효율성만 따졌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기준’, ‘절차’, ‘공감’, ‘설명 가능성’이 중요해졌다.
AI는 인간의 감정을 대체할 수 없지만,
그 감정이 오가는 지점을 논리적으로 구조화해주고
사려 깊은 대화의 출발점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구성원 모두가 체감하게 되었다.
윤리란 법처럼 강제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규칙처럼 즉각적인 제재를 동반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조직 안에서 윤리는 공기와 같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속해서 사람들의 ‘신뢰’와 ‘몰입’을 결정짓는 기류로 작용한다.
EthicAdvisor를 도입한 후, 팀 내부의 조직문화는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겉으로는 작고 소소했다.
보고서 마지막에 ‘관련 윤리 검토 항목’을 넣는 구성원이 생겼고,
회의 도중 “이 안건은 이해 충돌 우려 없을까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으며,
선배 직원들이 먼저 “이건 내가 맡는 게 낫겠다. 자칫 너한테 부당한 책임이 갈 수도 있어.”라고 배려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예민하다'고 여겼을 행동들이,
이제는 ‘사려 깊다’는 표현으로 바뀌고 있었다.
예산 집행이든 업무 분장이든,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점은 ‘기준의 일관성’이다.
“왜 이번엔 되고, 저번엔 안 됐느냐”는 질문은,
단지 그 상황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기준의 사라짐에 대한 불안이다.
이 팀은 조직 내 모든 반복적인 의사결정에서
‘사후 기준’이 아닌 ‘사전 설명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결정자’가 아니라 ‘기준 관리자’를 두었고,
권한 있는 사람이 스스로 기준을 먼저 설명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회계팀, 운영팀, 실무자 모두가 같은 질문을 AI에게 묻고,
그 결과를 놓고 회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단 하나였다.
“이제는 묻지 않아도 된다.”
“왜 그 결정을 저 사람이 했지?”
“이번엔 기준이 뭐였는지 몰랐어요.”
“항상 권한 있는 사람이 알아서 결정하잖아요.”
지금은 회의가 시작되기 전,
공유된 윤리 시뮬레이션 리포트를 기반으로
질문과 피드백이 오간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한다.
“이번 안건은 공정한 절차로 다뤄졌고, 이해관계자 분석도 사전에 공유된 만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정으로 보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좋다’는 평가가 아니다.
그 결정이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조직 전체의 합의다.
이 문장은 사실상 조직문화 혁신의 핵심 목표가 될 수 있다.
누가 승진해도 납득할 수 있고,
예산이 어떻게 쓰여도 설명 가능하며,
정보가 빠르게 공개되고,
절차가 사후 보완이 아니라 사전 공유가 되는 구조.
그 모든 출발점은
‘윤리적 리더십’의 실천과, 그것을 조직 전체에 확산시키려는 노력이었다.
윤리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윤리는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태도다.
그리고 그 설명이 충분히 납득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직업윤리를 단순히 '정직해야 한다'는 수준으로 이해하면,
윤리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태도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조직에서 요구되는 직업윤리란,
기준이 있고, 투명하며, 설명 가능해야 하는 ‘실천적 태도’다.
직업윤리의 첫 번째 핵심은 ‘기준의 일관성’이다.
이 기준이 없다면, 모든 결정은 사람의 성향이나 기분에 좌우되며,
그 순간 조직의 신뢰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회식비를 누구는 받고 누구는 안 받는다면?
같은 실수를 했는데 누군가는 경고받고, 누군가는 넘어간다면?
직업윤리는 공정하게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이 바로 조직이 구성원 모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첫 출발점이다.
기준이 아무리 있어도, 그것이
공개되지 않거나,
사후에 바뀌거나,
일부에게만 알려진다면
그 조직은 투명하지 않다.
직업윤리는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모두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미리 알고,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가 기준이 명확해야 결과를 납득할 수 있고,
절차가 투명해야 누구도 ‘차별’당하지 않는다.
윤리가 요구하는 투명성은 ‘감시’의 언어가 아니라
신뢰의 사전조건이다.
마지막으로, 직업윤리는
‘내 행동과 결정이 타인에게 납득 가능하게 설명될 수 있는가?’를 기준 삼는다.
이것이 바로 요즘 시대 윤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Accountability (책임성과 설명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나는 선의였어.”라고 말해도
상대가 피해를 입었다면, 그것은 설명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한 거야.”라고 말해도
그 기준이 모호하다면, 그것은 책임회피에 가깝다.
직업윤리는 결과 중심이 아니다.
과정과 태도 중심이다.
그 결정에 어떤 고민과 원칙이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기준이 있으며
그 기준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며
그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고
결정은 타인에게 설명 가능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
결국, 윤리는
신뢰의 언어이자, 조직문화의 기초 설계도인 셈이다.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무엇을 맡겨도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윤리란 바로 그런 ‘보이지 않는 안정감’을 만들어주는 능력이다.
윤리는 종종 ‘감’에 기대거나 ‘양심’에 맡기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업무상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건 상황마다 다르지 않나요?”
“그냥 상식적으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조직에서 ‘상식’이란 사람마다 다르고,
‘양심’이란 기준 없이 흔들리는 것이다.
바로 그 틈에서 누군가는 불이익을 받고,
또 누군가는 권력을 남용하게 된다.
이 질문에서 시작한 한 팀이 있다.
성과가 높았던 어느 프로젝트 팀이었지만,
막상 평가와 예산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생기면서
팀원 간 신뢰가 빠르게 흔들렸다.
특히 “기여도 평가”와 “시간외 수당 책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누가 더 일했는지를 놓고 팀 내에 미묘한 균열이 생겼다.
이후 팀장은 결심했다.
“이제 감으로 하지 말자. 우리는 매뉴얼을 만들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거창한 윤리 강령이 아니라,
작지만 구체적인 ‘행동 기준’ 리스트였다.
야근 기록 기준
→ 프로젝트 리더 승인 + 협의된 업무 리스트 존재 시 인정
성과 기여도 평가
→ 사전 정의된 주요 산출물 기준으로 평가
회식비 집행
→ 인원 수 기준 + 사후 회의록 첨부 필수
외부 강사 섭외 기준
→ 최소 2개 이상 유사 사례 사례비 분석 후 보고
누군가 보기엔 지나치게 꼼꼼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리스트는 팀원 모두가 협의한 끝에
신뢰의 기준으로 채택된 것이다.
예상 외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 기준 때문에 일이 더딜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빠르게 결정돼요.”
“이젠 서로에게 묻지 않아도, 어떤 선택이 맞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아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팀원 간의 눈치와 오해가 줄었다는 점이었다.
“이건 누구한테 유리하게 짠 거 아냐?”라는 의심,
“그 사람은 예외니까 그냥 넘어간 거지.”라는 불만,
“왜 나한테만 이걸 요구해?”라는 반발…
이 모든 감정들은,
불명확한 기준과 불균형한 설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매뉴얼은 그런 감정의 틈을 막아주는 조용한 방음벽이 되었다.
윤리를 실천하는 건, 누군가 특별히 정의롭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구조와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윤리 매뉴얼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저 행동이 아니라,
조직이 어떤 원칙으로 움직이는지를 설계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조직은 단지 성과 지향 조직이 아니라,
윤리 기반 조직(ethics-based organization)을 지향해야 한다.
성과는 우연히 오지만, 윤리는 매뉴얼로 만들어져야 지속된다.
직업윤리는 결과보다 오래 남는다.
성과는 숫자로 보여지지만, 윤리는 사람의 기억에 남는 태도다.
같은 결과를 만들어도 어떤 방식으로 도달했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거나, 의심하거나 한다.
성과보다 앞서는 것이 윤리이며,
그 윤리는 결국 공정함이라는 이름으로 축적된다.
사람들이 동료에게 바라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의외로 ‘능력’이 아니다.
함께 일하면서 “이 사람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기준을 지킨다”,
“이 사람은 결과보다 과정을 존중한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작은 윤리적 실천과 판단의 누적이
결국 사람의 태도를 만들고,
그 태도가 리더십이 되며,
그 리더십이 조직 문화를 만든다.
조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경쟁하며
성과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기준과 원칙이 흔들리면,
남는 건 피로와 불신뿐이다.
윤리는 어려운 철학이 아니다.
그저 내가 지금 내린 이 결정이
모두에게 같은 기준으로, 같은 설명으로 통용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그 질문을 잊지 않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믿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다.
직업윤리는 성과 이전의 태도다.
윤리는 기준을 만들고, 투명하게 적용하며, 설명 가능해야 한다.
윤리는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조직의 시스템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윤리를 실천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신뢰받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신뢰는, 성과보다 오래 간다.
결국 남는 건, 공정함이다.
그 공정함이 조직을 지탱하고,
사람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