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사유 vs 열린 사회와 비판

[진리 탐구 11] 하이데거 vs 포퍼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여전히 캠퍼스 잔디밭을 스친 어느 오후, 한 대학 강의실에서는 특별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었다. 주제는 다소 무겁고 추상적으로 들렸다. “AI 시대, 존재를 묻는 것과 열린 사회를 지키는 것은 어떻게 만나는가?”
강단 앞에는 두 명의 학생 사회자가 서 있었다. 사회자 한 명은 철학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인문학도였고, 다른 한 명은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생회를 이끄는 활동가였다. 흥미롭게도, 두 사회자의 성향은 정반대였다.


인문학도 사회자는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쏟아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존재의 물음을 회복해야 합니다”라며 시작했다. 그의 말은 마치 하이데거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듯했다.


반면 정치학도 사회자는 이렇게 맞섰다. “물론 존재의 물음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지금 당장의 권력, 제도, 정책이 우리 삶을 규정합니다. 권력의 남용과 전체주의의 위협을 막으려면 열린 사회, 비판적 합리주의가 필요합니다. 하이데거의 깊은 사유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현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청중석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웅성거렸다. 어떤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요즘 우리는 너무 피상적이다. 존재의 깊이를 묻는 훈련이 필요해”라고 속삭였고, 또 다른 학생은 “그런 얘기만 하다 보면 현실 정치의 문제를 놓치게 된다. 열린 사회가 먼저다”라고 반박했다.


이 풍경은 단지 한 대학 토론회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20세기 두 철학자, 하이데거와 포퍼의 대립을 현대 청년 세대가 자기 언어로 다시 재현한 장면이었다.






하이데거는 20세기 가장 심오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불린다. 그는 인간이 기술문명 속에서 ‘존재를 망각’했다고 경고했다. 스마트폰 화면에 매몰되어 시간을 보내는 우리 청년들의 일상은, 그가 말한 “도구적 인간”의 전형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무엇을 존재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그의 물음은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포퍼는 달랐다. 그는 전체주의와 권위주의가 어떻게 사회를 파괴하는가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단순한 철학서가 아니라, 파시즘과 전체주의에 맞서 시민들이 어떻게 비판적 합리성을 무기로 삼아야 하는지를 역설한 책이었다. 포퍼라면 지금 한국 사회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권력 남용과 민주주의 위기 앞에서, “깊은 사유만으로는 부족하다, 열린 사회를 위한 제도적 비판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오늘날 청년 세대가 마주하는 현실은 이 두 목소리를 동시에 필요로 한다.


-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러나 동시에, 권력과 제도의 남용을 막지 못한다면, 그 물음조차 던질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존재의 사유와 열린 사회의 비판은 결코 따로 갈 수 없는 동행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강의실의 토론은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어떤 학생은 “AI가 인간의 존재를 대체한다면, 우리는 존재를 어떻게 사유해야 하나요?”라고 물었고, 또 다른 학생은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다면 열린 사회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나요?”라고 질문했다. 마치 하이데거와 포퍼가 그 자리에 앉아 서로 대화를 이어가는 듯한 풍경이었다.


도입부의 이 질문은 앞으로 이 회차가 풀어낼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깊이 없는 열린 사회는 공허하다. 그러나 열린 비판 없는 존재 사유도 위험하다. 청년 세대는 어떻게 이 균형을 찾아야 하는가?”


이제, 하이데거와 포퍼의 사상을 차례로 따라가며, 그들의 철학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살펴볼 차례다.










철학적 배경 – 20세기의 위기와 철학적 대응





20세기를 흔히 “극단의 시대”라고 부른다. 인류는 전례 없는 기술 발전과 풍요를 경험했지만, 동시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냉전,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극단적 실험을 목격해야 했다. 이 시대는 인간이 자랑하던 이성이 무너지고, 기술과 제도가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는 기묘한 역설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하이데거와 포퍼는 각기 다른 길로 나아갔다.




1. 20세기의 위기 – 기술과 전체주의의 그림자



첫째,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전기, 라디오, 자동차, 그리고 후에는 컴퓨터와 원자력 기술까지, 인간은 기술을 통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효율성과 속도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은 전쟁의 무기, 권력의 도구가 되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진보의 상징’이 어떻게 곧바로 ‘파괴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둘째, 전체주의의 폭압이 사회를 뒤흔들었다.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소련의 스탈린 체제는 모두 “공동체의 이익”과 “국가의 이상”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개인의 자유 억압, 대량 학살, 끔찍한 전쟁이었다. 이 시기에 철학자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인간의 이성은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공동체와 국가의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철학적 기반은 무엇인가?


셋째, 청년 세대의 혼란도 심각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국가와 전쟁에 바쳐야 했다. 한순간에 친구와 가족을 잃었고, 사회는 무너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사회를 세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절실했지만, 답은 쉽게 오지 않았다. 이 질문은 오늘날 청년 세대가 AI, 불평등, 기후 위기 앞에서 던지는 질문과도 겹쳐 보인다.






2. 하이데거 – 존재 망각의 시대를 고발하다



하이데거는 이 위기를 철학적으로 ‘존재 망각’으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기술 발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잊었다. 우리는 도구를 편리하게 사용하는 법은 알지만, 정작 그것이 인간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는 이를 “현존재(Dasein)”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인간은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나 기술 문명은 인간을 그저 효율성과 생산성의 도구로 환원시켰다.


예컨대, 오늘날 청년 세대가 스마트폰과 알고리즘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하이데거가 경고했던 장면 그대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대신, ‘얼마나 팔로워가 있는가’, ‘어떤 스펙을 쌓았는가’가 존재의 가치를 대신한다. 하이데거는 이런 시대를 “존재가 은폐된 시대”라고 불렀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술문명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이 다시금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3. 포퍼 – 열린 사회와 전체주의의 적들



포퍼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큰 위협을 전체주의에서 보았다. 나치즘과 공산주의 체제가 공통적으로 보여준 것은, 비판 없는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사회를 무너뜨리는가 하는 점이었다.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따라서 모든 제도도 불완전하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사회’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제도와 정치에 대한 철저한 현실주의였다. 완벽한 사회를 설계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권력 독점으로 흐르고, 결국 폭압적 체제가 된다. 따라서 사회는 완벽을 꿈꾸기보다 열린 비판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선거, 언론의 자유, 시민의 토론은 모두 포퍼가 말하는 열린 사회의 핵심 장치였다.


오늘날 청년 세대가 ‘정치 무력감’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력은 종종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시민의 목소리는 쉽게 묵살된다. 그러나 포퍼는 말한다. “시민이 끊임없이 비판하고 감시할 때만 사회는 건강하다.” 이는 청년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해져서는 안 되는 철학적 이유이기도 하다.






4. 두 철학자의 접점과 대비



하이데거와 포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은 것처럼 보인다.


- 하이데거는 기술문명 속 인간의 존재적 위기를 성찰했다.

- 포퍼는 전체주의 속에서 정치적 자유를 지키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나 두 철학자는 공통적으로 “20세기의 위기를 직시했다”는 점에서 만난다. 존재를 잃은 인간, 자유를 빼앗긴 사회는 모두 파국으로 향한다. 철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지켜내는 실천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같은 시대의 증언자였다.






5. 오늘의 청년에게 주는 의미



오늘날 한국의 청년 세대는 AI, 기후 위기, 불평등, 정치 불신이라는 다층적 위기 속에 있다.


- 하이데거는 이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묻는 깊이”를 일깨워준다.

- 포퍼는 이들에게 “열린 사회를 지켜내는 비판적 참여”를 요구한다.


이 두 목소리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함께 가야 한다. 존재의 깊이가 없는 자유는 공허하고, 자유의 제도적 보장이 없는 존재 사유는 현실에서 무력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세기의 철학적 대응은 오늘날 청년 세대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적 나침반이 된다.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 – 기술 시대의 인간 조건





1. 존재를 묻는 철학자



하이데거는 철학사에서 “존재를 근본적으로 물은 철학자”로 불린다. 그가 평생 붙잡은 질문은 단 하나였다.
“존재란 무엇인가?”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사물을 경험한다. 책상, 스마트폰, 컴퓨터, 친구, 직장 등은 모두 ‘존재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하이데거는 이런 무심함을 “존재 망각”이라 불렀다.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고, 단지 사물을 도구로만 취급하는 태도가 인간을 얕아지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풀어내기 위해 “현존재(Dasein)”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현존재란 단순히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의미를 해석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뜻한다. 인간은 세계와 관계 맺으며 존재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2. 기술 시대와 ‘대상화된 인간’



하이데거가 살던 20세기 초는 기술이 사회를 급격히 바꿔놓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는 기술을 단순히 ‘편리한 도구’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기술은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세계관이라고 보았다.


그는 기술 시대의 특징을 “대상화”라는 말로 설명한다. 기술 문명 속에서 인간은 세계를 그저 자원(resource)으로만 본다. 강은 물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댐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자원으로 바뀐다. 숲은 산책의 공간이 아니라, 벌목과 상품화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인간도 효율성을 따지는 자원처럼 취급된다. 노동자는 생산 단위로 계산되고, 청년은 입시와 취업 스펙으로만 환원된다. SNS에서는 한 개인이 고유한 존재가 아니라, ‘팔로워 수’와 ‘좋아요 개수’로 평가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현상을 “현대 기술의 본질은 인간까지도 대상화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3. 존재 망각의 결과 – 불안과 공허



존재의 의미를 잊은 인간은 어떤 상태에 빠질까? 하이데거는 그것을 “불안(Angst)”이라고 불렀다.


불안은 단순한 두려움과 다르다. 두려움은 구체적 대상(시험, 면접, 실패 등)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불안은 이유 없이 생기는 막연한 공허감이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길 때, 인간은 근원적 불안에 직면한다.


오늘날 청년 세대가 겪는 ‘정체성 위기’는 하이데거가 말한 불안과 닮아 있다. 스펙을 쌓고, 취업 준비를 하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지만, 막상 마음속에서는 공허감이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내가 나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설계한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런 상태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징후로 보았다. 기술 문명 속에서 인간이 존재를 망각한 결과, 누구나 불안과 공허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4. 현존재의 과제 – 본래성으로의 회귀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하이데거는 인간이 다시 본래적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본래적 삶이란,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틀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자각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 반대로 비본래적 삶이란,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 “사회가 요구하니까 따른다”라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오늘날 청년들이 “자기답게 살고 싶다”라고 말할 때, 그 안에는 하이데거적 본래성의 갈망이 담겨 있다. 문제는 기술 시대의 강력한 유혹이다. 알고리즘은 개인의 관심사를 조작하고, 취업 경쟁은 ‘자기다움’보다 ‘스펙’을 요구한다. 본래적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바로 그 어려움 속에서 존재를 다시 묻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 청년 세대와 하이데거의 울림



하이데거의 사상은 단순히 추상적 철학이 아니다. 오늘날 청년 세대의 고민을 비추는 거울이다.


- 취업 준비: “나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라는 질문은 사실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된다.

- SNS 문화: ‘좋아요’와 팔로워 수로 자신을 평가받는 현실은 존재의 가치를 외부에 맡겨버리는 비본래적 삶의 전형이다.

- AI 시대: ChatGPT, 생성형 AI, 자동화 기술이 확산되면서, 청년들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마주한다.


이 모든 상황에서 하이데거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존재를 망각하지 말라. 너는 수단이 아니라, 세계와 의미를 창조하는 현존재다.”






6. 존재 사유의 철학적 의의



하이데거가 남긴 유산은 ‘존재 사유’라는 철학적 전환이었다. 그는 인간을 단순히 이성적 동물로 보지 않고, 세계와 의미를 만들어 가는 유일한 존재로 보았다. 기술 시대가 인간을 효율과 도구성으로만 환원시킬 때, 그는 다시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의 철학은 청년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는 지금 네가 원하는 길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사회가 원하는 길을 살고 있는가?”

“네 존재는 스펙과 점수로 정의될 수 있는가, 아니면 더 깊은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들은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서 청년들은 ‘본래적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









포퍼의 열린 사회 – 비판과 자유의 철학




1. 전체주의와 열린 사회의 문제의식



포퍼(Karl Popper, 1902~1994)는 20세기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그는 젊은 시절 오스트리아에서 파시즘과 나치즘의 부상을 목격했고, 러시아 혁명 이후의 스탈린주의 역시 경험했다. 두 체제는 서로 적대적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역사의 법칙’을 내세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비판을 봉쇄했다는 점이다.


포퍼는 이런 시대적 경험 속에서 “열린 사회(Open Society)”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열린 사회란, 권위와 절대적 진리에 의해 봉쇄되지 않고, 누구든 자유롭게 비판하고 수정할 수 있는 사회다. 그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유혹이다.”






2. 역사주의와 결정론의 비판



포퍼가 특히 문제 삼은 것은 역사주의(Historicism)였다. 역사주의란, 역사가 일정한 법칙이나 필연적 방향에 따라 진행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 법칙’, 나치즘의 ‘민족의 운명’, 심지어 플라톤의 이상국가론까지 포퍼는 모두 역사주의적 사고로 분류했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현실 정치에서 비판을 봉쇄하는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역사의 필연이니 너는 따라야 한다.”

“민족의 운명이니 비판하면 반역자다.”


포퍼는 이런 태도를 거부했다. 역사에는 절대적 법칙이 없으며, 미래는 언제나 열려(open)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사회는 끊임없이 비판과 토론을 통해 스스로를 수정해 나가야 한다.






3. 비판과 ‘반증 가능성’의 철학



포퍼의 과학 철학은 그의 정치철학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는 과학의 핵심을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으로 보았다.

과학적 이론이란, 언제나 반증될 가능성을 열어둔 이론이다.

“나는 절대로 틀릴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순간,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교리다.


이 원칙은 사회에도 적용된다. 열린 사회는 언제나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하고, 비판을 허용하며, 제도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완벽한 진리나 절대적 권위를 내세우는 사회는 결국 닫힌 사회로 전락한다.






4. 자유와 민주주의 – 완벽함보다 ‘점진적 개선’



포퍼는 민주주의를 완벽한 제도로 보지 않았다. 민주주의 역시 많은 결함을 갖고 있으며, 언제든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다른 체제보다 우월한 이유는, 권력자를 평화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점진적 개선(Piecemeal Social Engineering)”이라고 불렀다.


사회 개혁은 일거에 완성될 수 없다.

다만 오류를 발견할 때마다 조금씩 고쳐 나가는 방식으로 사회는 진보한다.


이는 청년 세대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세상을 한 번에 바꾸겠다”는 급진적 열망은 때로 위험하다. 대신 작은 개선, 꾸준한 비판, 점진적 변화를 통해 열린 사회를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다.






5. 청년 세대와 비판적 시민성



오늘날 청년 세대는 포퍼가 강조한 열린 사회의 핵심적 주체다.


- SNS와 여론 형성: 청년들은 SNS를 통해 사회 문제를 폭로하고, 불평등을 비판하며, 기성세대가 외면하는 의제를 제기한다. 이는 열린 사회의 ‘비판 기능’을 실시간으로 구현하는 장치다.


- 정치 참여: 청년 정치인들의 등장, 청년 의제(주거, 노동, 환경 등)의 확산은 열린 사회가 단지 제도적 장치에 머물지 않고, 실제 시민의 목소리에서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 AI 시대: 알고리즘과 플랫폼 권력이 여론을 조작할 위험이 커진 오늘날, 청년 세대의 비판적 감수성은 열린 사회를 지켜내는 최전선이 된다.


포퍼의 철학은 청년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희는 단순히 체제에 순응하는 세대인가, 아니면 열린 사회를 지켜내는 비판적 세대인가?”







6. 하이데거와 포퍼의 대비



앞선 하이데거가 인간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묻는 철학자라면, 포퍼는 사회 제도의 열림을 강조한 철학자였다.

- 하이데거는 “기술 시대의 존재 망각”을 경계하며, 개인이 본래적 삶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포퍼는 “전체주의의 유혹”을 경계하며, 사회가 비판과 자유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철학은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듯 보이지만, 오늘날 청년 세대에게는 동시에 필요한 메시지다.

한편으로는 자기 존재를 깊이 묻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열어두고 비판을 허용하는 것.


바로 이 균형 속에서 청년 세대는 AI 시대의 새로운 시민 철학을 세울 수 있다.









토론 장면 재현 – 존재와 열린 사회의 대화




1. 장면 설정 – 청년 철학 포럼



서울의 한 대학 강당. ‘AI 시대, 철학의 길’이라는 주제로 청년들이 모인 포럼이 열렸다. 강당 앞에는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 하이데거와 포퍼가 앉아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무대는 철학적 상상의 공간이다. 청중은 주로 20대 청년들,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손에 든 학생들이며, 질문지를 손에 쥔 채 진지하게 토론을 기다린다.


사회자가 말한다.
“오늘 우리는 ‘존재와 열린 사회’라는 주제로 두 철학자의 대화를 들어보려 합니다. 하이데거 선생님, 먼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2. 하이데거의 발언 – 기술과 존재 망각



하이데거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나는 오늘날 인간이 기술의 세계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고 봅니다.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를 ‘존재하는 자’로서 경험하지 못합니다. 대신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 데이터, AI 알고리즘 속에서 길들여집니다. 이 모든 것은 ‘있음’을 잊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너희 청년들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AI를 배우고 코딩을 익히지만, 정작 스스로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묻는 시간은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존재를 묻지 않는 삶은 결국 도구적 합리성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기술은 인간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청중은 숙연해진다. 한 학생이 무심코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3. 포퍼의 응답 – 자유와 비판의 사회



포퍼가 곧장 맞받는다.


“하이데거 선생의 말씀에는 깊은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지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누가 통제하고, 어떻게 비판할 수 있는가입니다.


역사를 보십시오. 전체주의가 사람들을 억압한 이유는, 사람들이 ‘존재를 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판할 자유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랫폼 기업이 데이터를 독점하고, 알고리즘이 우리의 선택을 은밀히 조종할 때, 우리는 그것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열린 사회란 완벽한 사회가 아닙니다. 다만 잘못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수정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나는 청년 세대가 이 열린 사회의 감시자이자 비판자로 나서야 한다고 믿습니다.”






4. 청년 질문 – 존재냐, 자유냐?



청중석에서 한 청년이 손을 들었다.


“저는 24살 대학생입니다. 요즘 취업 준비와 자기계발에 몰두하다 보면, 정말 내가 ‘존재하는 자’인지, 아니면 그냥 점수와 스펙을 쌓는 기계인지 혼란스럽습니다. 하이데거 선생님 말씀처럼 존재를 잊고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포퍼 선생님 말씀처럼 사회를 바꾸려면 제도 속에서 비판적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저 같은 청년은 존재를 먼저 묻는 게 중요한가요, 아니면 열린 사회를 지키는 비판자가 되는 게 중요한가요?


강당 안은 고요해졌다. 모두의 눈이 두 철학자에게 향한다.






5. 하이데거의 답변 – 본래성의 회복



하이데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젊은이여, 네가 겪는 혼란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존재를 묻지 않는 비판은 공허하다. 네가 왜 자유를 지켜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사회를 비판해야 하는지, 그 근본적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결국 그 비판조차 또 다른 도구적 합리성으로 흡수될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네가 누구인지 물어라.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네가 속한 공동체에서 어떤 존재로 서고 싶은지. 존재를 묻는 이 질문이 있어야만, 너의 자유와 비판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6. 포퍼의 답변 – 열린 사회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포퍼가 이어서 말을 받았다.


“나는 하이데거의 말에 동의한다. 다만 나는 조금 더 실천적인 답을 덧붙이고 싶다. 존재를 묻는 철학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질문이 개인에게 머무를 때,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열린 사회는 각자가 던진 질문을 공적 토론으로 연결할 때 가능하다.


그러니 너는 스스로에게 묻는 동시에, 그것을 세상에 던져야 한다. 대학에서, 온라인에서, 시민 집회에서 네 목소리를 내야 한다. 존재에 대한 성찰이 비판적 실천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열린 사회를 지킬 수 있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남겼다. “존재의 성찰 → 사회적 비판.”






7. 두 철학자의 화해 – 서로의 보완성



토론이 끝나갈 무렵, 사회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존재와 열린 사회, 이 두 철학은 서로 충돌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보완적인 것일까요?”


하이데거가 대답했다.
“존재를 망각한 자유는 공허하다.”


포퍼가 곧바로 이어받았다.
“비판 없는 존재 성찰은 고립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필요하다.”


강당은 박수로 가득 찼다. 청년들은 이 대화가 단순한 철학적 논쟁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과 사회를 살아내는 지침임을 느꼈다.






8. 청년 세대의 깨달음



포럼을 마치고 나오는 길, 한 청년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결국 우리는 둘 다 해야 하는 거네. 내가 누구인지 묻는 것, 그리고 사회를 향해 질문하는 것. 존재와 열린 사회는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같은 길의 두 얼굴인 거지.”


그 말에 친구가 웃으며 답했다.
“맞아.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균형을 찾는 거야. AI 시대에도, 진짜 인간으로 남기 위해.”










실제 사례 분석 – AI와 민주주의, 청년의 선택





1. 문제 제기 – 기술이 민주주의를 흔드는 방식



AI 시대에 들어선 지금,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자유로운 판단과 비판의 가능성’이 흔들리고 있다. 알고리즘이 여론을 선도하고, 데이터가 권력을 대체하는 현실은 하이데거와 포퍼의 논쟁을 그대로 재현한다. 하이데거가 우려했던 ‘존재 망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사고하기보다, AI가 제공하는 맞춤형 정보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포퍼가 강조했던 ‘비판할 자유’는 플랫폼 독점과 기술 권력 앞에서 쉽게 제약된다.


특히 청년 세대는 이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취업 준비, 자기계발, 사회 참여까지 거의 모든 과정이 온라인과 플랫폼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가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선택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2. 사례 ① – AI 면접과 청년 구직



한국에서는 이미 다수의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AI 면접 시스템을 도입했다. 카메라 앞에서 청년 지원자는 표정, 음성, 시선 처리까지 평가받는다. 알고리즘은 수천 건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적합성’을 판단한다.


이 과정은 효율성과 공정성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청년의 존재를 ‘데이터 패턴’으로 환원하는 문제를 낳는다. 한 청년은 이렇게 토로했다.
“면접이 끝난 뒤 내가 평가받은 건 나의 생각이나 가치가 아니라, 표정이 얼마나 정형화된 기준에 맞는가였습니다.”


이 경험은 하이데거가 말한 ‘기술의 지배’와 맞닿아 있다. 인간은 주체적 존재로 평가받기보다, 데이터로 분절된 조각들로만 인식된다. 동시에 포퍼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제도는 비판할 통로가 거의 없는 ‘닫힌 시스템’이다. 청년들이 제도적 문제를 제기해도, 기업은 “AI가 그렇게 판단했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한다.






3. 사례 ② – SNS와 여론 형성



SNS는 청년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소통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은 민주주의적 공론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알고리즘의 감정 조종 장치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선거철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짧은 영상이나 밈이 폭발적으로 확산된다. 그 과정에서 사실보다 감정이 우위를 점한다. 분노와 혐오를 자극하는 콘텐츠는 빠르게 공유되고, 차분한 분석은 묻혀버린다.


여기서 청년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참여’라는 이름으로 정보를 소비하고 공유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생각한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던져준 것을 되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현상은 포퍼가 말한 ‘열린 사회’의 위기다. 열린 토론이 아니라, 편향된 정보의 섬 속에서 자기 확신만 강화된다.






4. 사례 ③ – 기후 위기와 청년 운동



반면 청년 세대는 하이데거와 포퍼의 철학을 동시에 실천하는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대표적 사례가 기후 위기 대응 운동이다.
전 세계 청년들은 “미래 세대가 존재할 권리”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이는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존재의 질문’을 되살리는 행위였다. 단순히 당장의 경제적 이익이나 효율성을 넘어, 인간이 지구와 함께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동시에 이 운동은 포퍼적 의미에서 ‘비판과 개혁’을 제도에 요구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청년들은 정부와 기업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는 존재 성찰과 열린 사회의 비판이 결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5. 청년 세대의 과제 – 존재와 자유를 함께 붙잡기



이 세 가지 사례는 청년 세대가 직면한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AI 면접은 ‘존재의 환원’을,

SNS 여론은 ‘비판의 왜곡’을,

기후 운동은 ‘존재와 비판의 결합’을 보여준다.


결국 청년 세대가 짊어진 과제는 존재와 자유를 동시에 지켜내는 일이다. 존재를 잊은 비판은 방향을 잃고, 자유 없는 성찰은 고립된다. 청년이 주체로 서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존재를 묻는 동시에, 열린 사회의 비판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






6. 정리 – 오늘의 질문



이 단계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을 마주한다.
“청년은 AI 시대에 기술에 길들여진 존재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존재의 물음을 붙잡고 열린 사회를 지켜낼 주체가 될 것인가?”


하이데거와 포퍼의 철학은 이 질문에 두 가지 서로 다른 길을 제시하지만, 그 길은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 오히려 청년 세대의 삶 속에서 두 길은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의 균형점을 찾아가야 한다.










중간 해설 – 청년이 권력과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1. 권력과 자유, 두 축의 긴장



철학의 역사에서 권력과 자유는 늘 긴장 관계였다. 권력이란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자유란 개인의 창조성과 비판 정신을 보장하지만,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쉽게 무질서로 흐른다.
하이데거는 ‘존재 망각’ 속에서 인간이 기술 권력에 길들여질 수 있음을 경고했고, 포퍼는 ‘열린 사회’를 위협하는 전체주의적 권력에 맞서 비판의 자유를 외쳤다. 이 두 관점은 서로 다르지만, 청년 세대가 직면한 현실 속에서는 동시에 고민해야 할 문제다.






2. 청년 세대의 현실적 딜레마



청년들은 오늘날 권력과 자유의 가장 민감한 교차점에서 살아간다.


- 대학과 취업: AI 면접, 빅데이터 기반 학습관리 시스템은 권력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효율적 평가를 보장하는 동시에, 청년을 하나의 ‘데이터 값’으로 환원시킨다. 이때 청년의 자유는 평가 기준 속에 종속될 위험에 놓인다.


- 정치 참여: 청년들은 SNS를 통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지만, 알고리즘에 의해 여론이 왜곡될 때는 오히려 권력의 간접 지배를 받게 된다. 자유를 행사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권력이 설계한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이다.


- 사회적 의제: 기후 위기, 불평등, 젠더 갈등 등에서 청년들은 자유로운 문제 제기와 행동을 시도하지만, 때로는 국가와 제도의 권력적 벽 앞에서 좌절한다.


즉, 청년 세대는 자유를 지향하면서도 권력 구조 속에 끊임없이 제한당하는 이중적 현실을 살고 있다.






3. 균형의 철학 – 성찰과 실천의 결합



그렇다면 청년은 권력과 자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첫째, 존재 성찰이 필요하다.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나는 무엇으로 환원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AI 면접에서 내가 단순히 ‘표정 점수’로 남는다면, 이는 존재의 축소다. 청년은 기술 시스템 속에서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규정되는지를 묻고 저항할 필요가 있다.
둘째, 비판 실천이 필요하다. 포퍼가 강조했듯 열린 사회는 비판 가능성에서만 유지된다. 청년은 정책 결정, 사회적 담론, 온라인 여론 속에서 적극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이어야 한다.


결국 균형은 성찰(내적 자유)과 실천(외적 자유)의 두 축이 맞물릴 때 가능하다.






4. 사례로 본 균형의 가능성



- AI 면접 제도 개선 운동: 실제로 일부 청년 단체는 “AI 면접의 불투명성과 차별 가능성”을 문제 삼으며 개선을 요구했다. 이는 존재 환원의 문제를 성찰하고, 동시에 비판적 실천을 통해 제도 변화를 시도한 사례다.


- 청년 기후 운동: 단순히 “존재할 권리”를 외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법적 소송과 국제 협약 참여로 이어졌다. 자유로운 외침이 제도적 권력을 변화시키는 실천으로 연결된 것이다.


이 두 사례는 청년 세대가 권력과 자유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철학적 성찰과 사회적 실천을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5. 정리 – 오늘의 질문



따라서 중간 해설의 지점에서 던질 질문은 분명하다.
“청년은 권력과 자유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권력에 종속된 존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자유의 이름으로 무책임한 방종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성찰과 실천을 결합해 균형을 찾는 새로운 길을 열어갈 것인가?”


하이데거의 성찰은 청년에게 존재의 본질을 묻도록 요구하고, 포퍼의 철학은 청년에게 열린 사회를 지켜낼 책임을 부여한다. 두 길은 따로가 아니라 함께 걸어야 할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청년 세대는 권력과 자유의 긴장을 새로운 균형으로 바꿔낼 수 있다.









결론 및 성찰 – 청년 세대가 던져야 할 최종 질문





1. 철학적 대립에서 발견한 오늘의 길



하이데거와 포퍼의 대립은 단순한 학문적 논쟁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기술과 제도가 인간을 객체화하고 존재의 본질을 망각하게 만든다고 경고했고, 포퍼는 전체주의적 유혹에 맞서 열린 사회와 비판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철학자의 목소리는 다른 지점을 바라보지만, 오늘 청년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동시에 울린다. 기술 권력에 환원되지 않고도 자기 존재를 지키는 성찰, 그리고 사회 구조와 권력에 도전하는 비판적 실천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과제다.






2. 청년의 과제 – 존재와 비판의 결합



오늘의 청년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더 많은 자유를 누리지만 동시에 더 많은 제약을 경험한다. AI 알고리즘, 빅데이터, 온라인 플랫폼은 자유로운 소통의 장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권력적 통제의 새로운 형식이 된다. 여기서 청년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존재 성찰 없이 흐름에 편승한다면, 청년은 기술 권력이 설계한 존재로 축소된다.

비판 실천 없이 분노에만 머문다면, 청년의 자유는 방종과 무력감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성찰과 실천을 결합한다면, 청년은 권력과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창조하는 주체가 된다.


이 결합이 바로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와 포퍼의 열린 사회가 만나는 지점이며, 청년 세대가 다음 시대의 문을 열어갈 방법이다.






3. 청년이 던져야 할 최종 질문



철학은 언제나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결론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물음은 단순하지 않다.

“나는 지금 어떤 존재로 환원되고 있는가? 기술과 제도 속에서 스스로를 잃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열린 사회를 지켜낼 만큼 충분히 비판적이며 용기 있는가? 불의와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나는 권력과 자유의 균형을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개인의 고민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철학적 토대다. 질문 없는 사회는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지만, 질문을 품은 사회는 열린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4. 결론 – 청년의 이름으로 열어야 할 미래



오늘의 결론은 하나다. 청년은 더 이상 미래의 수혜자가 아니라, 미래의 설계자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성찰과 포퍼가 강조한 비판의 자유를 함께 끌어안는 순간, 청년은 단순히 시대에 적응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시대를 다시 쓰는 창조자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나는 단순히 살아가는 존재인가, 아니면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주체인가?”
“나는 단순히 자유를 누리는가, 아니면 자유를 지켜내는 시민인가?”


이 질문을 붙잡는 순간, 청년 세대는 권력과 자유 사이의 흔들림 속에서도 스스로 길을 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는 열린 사회 속에서 ‘존재를 잊지 않는 인간’으로, ‘비판을 포기하지 않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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