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처럼 일하는 사람들 Part.1 | EP.1
“질문이 멈추는 곳에서 커리어도 멈춘다.
그리고 질문이 이어지는 곳에서, 인생은 언제든 다시 설계된다.”
Part 2. 기자조직의 수평문화(4회)
Part 3. 기자의 경력철학(6회)
Part 4. 조직은 기자처럼 구성원을 관리하라(6회)
Part 5. 기자형 조직의 경영철학(6회)
첫 취재 현장에 섰을 때, 나는 마이크를 들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건의 개요는 머릿속에 있었고, 관련자 이름도 다 외워왔다.
하지만 막상 눈앞의 사람을 마주하니,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랐다.
순식간에 침묵이 흘렀다.
그날 편집국으로 돌아오자, 데스크가 조용히 말했다.
“질문이 없으면, 기사가 아니야.”
그 한마디가 내 안을 강하게 흔들었다.
기자는 정보를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사건을 기록하는 대신 ‘이 일이 왜 일어났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그 질문이 내 취재의 방향을 정했고, 결국 나라는 기자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 경험은 비단 기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시작점은 질문이다.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일은 누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이 일을 더 나은 방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 단순한 물음이 우리의 태도를 바꾼다.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은 멈춰 있고, 질문하는 사람은 움직인다.
질문은 곧 자기주도성(Self-directedness)의 첫걸음이다.
‘취재하듯 일한다’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다.
단순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속에 숨은 이유와 의미를 스스로 탐색하는 사람,
그가 기자처럼 일하는 사람이다.
조직이 멈출 때는 언제일까.
대부분은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질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왜?”라는 말이 사라지면, 생각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관성에 기대어 일하고, 일은 점점 의미를 잃는다.
반대로 질문이 살아 있는 조직은 늘 새로워진다.
질문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 새로운 해석의 문을 연다.
그래서 ‘질문이 있는 조직’은 매일 성장한다.
그곳에는 배움이 있고, 탐색이 있고, 변화가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자처럼 일하는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묻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 길을 찾는 사람.
세상이 던져주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정보의 의미를 다시 묻는 사람이다.
질문이야말로 일의 방향을 정하고, 커리어의 깊이를 만든다.
겉으로 보면 기자의 하루는 정보로 가득 차 있다.
메일함에는 보도자료가 쏟아지고, 휴대전화에는 제보 문자가 끊이지 않는다.
하루 종일 통계표를 들여다보고, 브리핑을 들으며, 인터뷰를 녹취한다.
누가 봐도 ‘정보의 홍수’ 속을 살아가는 직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보가 많다고 해서 좋은 기사가 되는 건 아니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정보’가 아니라 ‘의미’이기 때문이다.
좋은 기자는 단순히 사실을 모으지 않는다.
그는 그 사실들 사이의 맥락을 읽는다.
표면적인 사건보다 그 뒤의 이유를 탐색하고,
사람들의 말보다 그 말이 나온 배경의 온도를 포착한다.
“무엇이 일어났는가”보다 “왜 일어났는가”를 집요하게 묻는 것,
그게 바로 의미 탐사의 출발점이다.
예를 들어 한 기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매일 지방의회 회의록을 읽는다.
겉으로 보기엔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문장 하나에서 멈춘다.
‘예산 조정으로 인해 지역 청소년 지원 사업이 전면 보류된다.’
그 문장 뒤에는 한 세대의 기회가 사라지는 사회적 신호가 숨어 있다.
그때 기자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는 의미의 탐색자가 된다.
이 구조는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많은 직장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집중한다.
주어진 목표, 마감, 보고서, 회의, 프로젝트 일정이 일의 전부라고 믿는다.
하지만 일의 본질은 ‘왜’와 연결될 때 비로소 생긴다.
보고서의 수치가 아니라, 그 수치가 가리키는 방향을 읽는 사람이 결국 성장한다.
기자가 현장에서 맥락을 찾듯,
일하는 사람은 업무 속에서 의미의 패턴을 찾아야 한다.
단순한 업무 보고와 의미 탐사는 다르다.
전자는 “무엇을 했다”로 끝나지만,
후자는 “왜 그렇게 했고, 무엇이 달라졌는가”로 확장된다.
업무 일지를 쓰는 대신, 탐사 노트를 써보자.
‘이 일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과정에서 새롭게 배운 것은 무엇인가’,
‘다음에는 어떤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이 세 가지 문장만 기록해도 일은 정보가 아닌 경험의 의미로 쌓인다.
기자의 사고방식은 바로 이 세 문장을 반복하는 데 있다.
1. 무엇이 일어났는가 — 사실(Fact)
2. 왜 일어났는가 — 맥락(Context)
3. 그래서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 의미(Meaning)
이 세 단계는 기사 작성의 기본이지만, 동시에 모든 경력 관리의 기본 구조이기도 하다.
‘무엇’만 아는 사람은 단기적 성과로 평가받지만,
‘왜’와 ‘그래서’를 함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장기적 성장을 인정받는다.
AI 시대의 업무도 이 점에서 다르지 않다.
AI는 정보를 빠르게 모으고, 요약하고, 정리한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가 사건을 데이터로 분석한다면,
인간은 그 데이터의 ‘이유’를 해석해야 한다.
기자는 이 구분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질문한다.
“이 사실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수치 뒤에는 누구의 목소리가 있는가?”
이 질문이 단순한 기사 문장을 ‘탐사 보도’로 바꾸고,
단순한 일의 결과를 ‘경력의 서사’로 바꾼다.
의미 탐사의 습관은 결국 사유의 근육을 만든다.
반복적인 일 속에서도 생각하는 힘을 잃지 않게 하고,
매일의 일과 속에서 자신만의 문장을 발견하게 만든다.
기자가 세상에 대한 이해를 쌓아가듯,
일하는 사람도 자신만의 세계관을 쌓아간다.
그 세계관이 커리어의 깊이를 결정한다.
기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질문을 던진다.
그중 대부분은 답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실패한 질문들이 쌓여 사유의 지층을 만든다.
우리가 일하는 세계도 같다.
완벽한 정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사고는 깊어진다.
일의 본질은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탐색하는 것’이다.
질문은 정보를 의미로 바꾸는 통로다.
묻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묻는 순간 일은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질문이 곧 일의 방향을 정한다.
질문의 깊이가 곧 커리어의 깊이다.”
탐사 기자는 언제나 같은 곳에서 출발한다.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불일치, 남들이 지나치는 모순 하나에서.
한 줄짜리 통계의 오류, 기록과 현실의 작은 어긋남,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묘하게 맞지 않는 지점.
대부분의 사람은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지만
탐사 기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왜?”라고 묻고, 그 “왜”를 끝까지 따라간다.
탐사정신은 끈질김의 다른 이름이다.
표면을 긁고 멈추지 않고, 맥락의 끝을 향해 기어이 파고드는 힘이다.
그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든 주제로 움직인다.
이때 기자는 단순한 ‘직무 수행자’가 아니라 ‘문제 정의자’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탐사정신은 커리어의 본질과 맞닿는다.
일터에도 같은 구조가 있다.
어떤 사람은 늘 시킨 일만 한다.
주어진 일정, 명확한 지시, 정해진 절차가 있어야 비로소 움직인다.
그는 정확하지만, 늘 한 발 늦다.
반면 어떤 사람은 주어진 일의 뒤를 본다.
“왜 이 절차가 이렇게 되어 있지?”,
“이 방식이 정말 최선일까?”,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거 아닐까?”
이 질문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탐사정신은 ‘일을 수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일을 새롭게 정의하는 능력이다.
문제를 단순히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작동하는 구조 자체를 다시 바라보는 태도다.
결국 조직에서 인정받는 사람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다르게 본 사람”이다.
이 두 부류의 차이가 커리어를 갈라놓는다.
탐사 기자의 세계에서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사실 하나를 찾는 데 하루가 걸리지만, 그 사실의 이유를 찾는 데는 몇 달이 걸린다.”
이 말은 끈기의 미학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유의 지속성에 대한 이야기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하고, 다시 질문하는 과정 속에서
사건은 점점 깊어지고, 결국 사회의 구조를 드러낸다.
경력의 세계에서도 똑같다.
끈질기게 “왜”를 묻는 사람이 결국 성장의 패턴을 발견한다.
스스로 탐색을 멈추지 않는 사람,
그가 바로 자기주도적 커리어를 만들어간다.
한번은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품질관리팀의 한 직원이 매일 반복되는 오류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그는 숫자를 옮겨 적는 일을 수년째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같은 오류가 매번 같은 공정에서, 같은 시간대에, 같은 유형으로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그는 그 질문을 붙잡고 데이터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문제는 단순한 작업자의 실수가 아니라 설비의 구조적 결함이었다.
그가 개선안을 올리자 회사는 설비를 교체했고,
전체 불량률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그의 보고서는 곧 회사의 사례집에 실렸다.
누구도 그에게 “그걸 조사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스스로 탐사했다.
그의 경력은 그날부터 달라졌다.
탐사정신은 이처럼 지시를 기다리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궁금해서 한 일’.
그 차이가 경력의 질을 결정한다.
이런 사람에게 조직은 늘 더 큰 문제를 맡긴다.
“이번에도 저 사람이 뭔가 찾아내겠지.”
그 신뢰가 쌓이면 직책이 바뀌고,
직책이 바뀌면 더 넓은 무대를 얻게 된다.
결국 탐사정신은 커리어의 추진력이다.
탐사 기자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그들은 낯선 주제에 스스로 뛰어든다.
정치부에서 사회부로, 사회부에서 경제부로 옮겨가면서
다시 처음부터 배운다.
어떤 이는 환경 이슈를 다루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금융 범죄를 취재한다.
이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처음이라 모른다”가 아니라 “모르니까 배운다”로 전환한다.
그 배움의 태도는 곧 탐사정신의 연장이다.
커리어 역시 마찬가지다.
한 분야에서만 완벽해지려는 사람보다,
낯선 분야를 탐사하며 새로운 관점을 배우는 사람이 더 빨리 성장한다.
왜냐하면 그는 지식을 재구성하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탐사정신은 결국 배움의 순환 구조를 만든다.
새로운 영역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학습하고,
그 경험을 다시 자신의 영역으로 가져와 확장한다.
탐사정신을 가진 사람의 일에는 일정한 공통 패턴이 있다.
1. 의심에서 출발한다. — ‘이게 맞을까?’를 묻는다.
2. 맥락을 파고든다. — 사실이 아니라 이유를 찾는다.
3. 의미를 재구성한다. — 정보를 새로운 이야기로 엮는다.
이 세 단계를 반복하면
단순한 직무 수행자는 점차 해석자(Interpreter)로 성장한다.
그는 더 이상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흐름을 이해하고 제안하는 사람이 된다.
탐사정신은 바로 이 ‘해석의 능력’을 길러준다.
한 조직의 리더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문제를 다르게 보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 문장은 오늘날의 커리어 세계를 요약한다.
탐사정신이 없는 조직은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창의적이지 않다.
탐사정신이 있는 조직은 시간이 더 걸리지만, 결국 더 멀리 간다.
탐사 기자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듯,
탐사형 직장인은 조직의 혁신을 이끈다.
탐사정신은 자기주도적 경력관리(Self-directed Career Management)의 핵심 덕목이다.
자신의 업무를 단순히 ‘과제’로 보는 사람은 한정된 영역 안에서만 움직이지만,
그 일을 탐사 프로젝트로 바꿔보는 사람은
그 안에서 배우고, 해석하고, 확장한다.
이때 경력은 더 이상 회사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성하는 이야기(Story)가 된다.
결국 커리어란 “내가 어떤 질문을 오래 붙잡았는가”의 역사다.
누군가는 승진을, 누군가는 연봉을, 누군가는 타이틀을 목표로 하지만,
진짜 탐사형 커리어는 ‘나는 어떤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었는가’로 기억된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직업의 변화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이제 기억해두자.
탐사정신은 자기주도성의 다른 이름이다.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그 이유를 밝혀내는 사람.
그가 결국 커리어의 주인이 된다.
“정해진 업무보다 스스로 만든 주제로 평가받는다.”
이 한 문장은 탐사정신의 본질을 꿰뚫는다.
남이 준 일을 잘하면 ‘유능한 직원’으로는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정의한 문제를 조직의 과제로 끌어올리는 사람은
‘기여도가 높은 전문가’로 성장한다.
탐사정신은 바로 그 변곡점을 만들어주는 내면의 엔진이다.
기자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은 단 하나의 단어다.
“왜(Why)?”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 이 네 가지는 사실을 밝히기 위한 기본이다.
하지만 “왜”는 다르다.
“왜”를 묻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이유를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유 속에는 가치(Value)가 숨어 있다.
기자는 바로 그 가치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사건을 넘어 인간을 이해하고, 사실을 넘어 의미를 탐구하는 사람.
그래서 “왜”를 묻는 능력은 기자의 본질이자,
모든 커리어를 깊게 만드는 가장 인간적인 기술이다.
우리가 일터에서 던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도 바로 그것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성찰이 아니다.
방향을 정하는 나침반이다.
많은 사람이 일을 하면서 방향을 잃는다.
성과는 있지만 의미는 없고, 성장은 있지만 목적이 흐릿하다.
그 이유는 대부분 “왜”라는 질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왜”를 묻지 않는 일은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결코 지속되지 않는다.
일의 ‘왜’를 묻는 사람은 가치 중심으로 일한다.
그는 매 순간 ‘해야 하는 일(What)’보다 ‘해야만 하는 이유(Why)’를 먼저 생각한다.
조직의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과보다 과정의 의미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 태도는 바로 프로티언 경력태도(Protean Career Attitude)의 핵심이다.
프로티언(Protean)이란 ‘자기 가치관에 따라 유연하게 경력을 바꾸는 태도’를 말한다.
프로티언형 인재는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내면의 기준으로 성장한다.
회사의 승진 제도나 타인의 평가보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연결된 일을 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에 강하다.
환경이 변해도, 회사가 바뀌어도, 자신의 방향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경력은 ‘직무의 이동’이 아니라 가치의 일관성으로 이어진다.
가치는 일의 의미를 만든다.
기자는 “이 기사가 세상에 왜 필요한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 질문이 없으면 그는 단순한 기록자에 머문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 프로젝트가 왜 필요한가”,
“이 강의가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이 정책이 지역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이 질문이 없으면 일은 단순히 ‘업무’로 끝나지만,
이 질문이 있으면 일은 ‘사명’으로 바뀐다.
결국 일의 품격은 동기의 질에서 결정된다.
“이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명확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조직의 변화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난관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시 세운다.
그 이유가 단순한 보상이나 평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가치와 의미의 언어로 일하는 사람이다.
‘왜’를 묻는 습관은 커리어의 깊이를 만든다.
이 습관이 없는 사람은 일을 잘해도 쉽게 지친다.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회의감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왜’를 묻는 사람은 일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믿는 가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일은 단순한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자아 실현(Self-realization)의 과정이 된다.
한 기업의 사례를 보자.
한 중간관리자는 팀의 실적 압박으로 지쳐 있었다.
그는 매일 KPI 보고서를 작성하며, 숫자를 채우는 데 급급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원 한 명이 물었다.
“팀장님, 우리 이 성과가 고객한테 어떤 도움이 되는 거죠?”
그 질문은 단순했지만, 팀장의 사고를 완전히 바꿨다.
그는 다시 고객의 피드백을 모으기 시작했고,
성과 지표의 정의를 ‘매출’이 아니라 ‘고객의 재이용률’로 바꿨다.
이후 팀의 목표는 단순한 판매량이 아니라
‘고객이 다시 찾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으로 진화했다.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의미를 묻는 질문이 방향을 바꾼 것이다.
기자가 “왜”를 묻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왜 알아야 하는지, 왜 중요한지를 전달해야만
기사의 존재 이유가 생긴다.
우리의 일도 다르지 않다.
보고서를 쓰고, 강의를 하고,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목적은
단순히 일을 끝내는 데 있지 않다.
그 일을 통해 누군가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짜 이유다.
이 ‘왜’를 잃지 않는 사람은
어떤 자리에서도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왜’를 묻는 습관은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든다.
의미 중심으로 일하는 사람은
외부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남의 시선보다 자신의 기준을 따른다.
그의 일은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연결하는 행위가 된다.
그 결과, 그 사람의 커리어는 한결같이 ‘진정성’을 품게 된다.
이제 묻자.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성장을 남기는가?”
“이 일을 통해 나는 세상에 어떤 의미를 더하고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은 단순히 성찰의 문장이 아니다.
직업을 ‘사명’으로 바꾸는 열쇠다.
기자에게 “왜 쓰는가”가 존재 이유이듯,
우리에게 “왜 일하는가”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왜”를 묻는 사람은 단순히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그의 커리어는 직업이 아니라 철학이 된다.
기자는 혼자 일하지 않는다.
기사의 출발점은 개인의 질문이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철저히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
취재원, 동료 기자, 현장의 관계자,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외부인까지—
그들은 모두 하나의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좋은 기자일수록 더 넓고 깊은 관계망을 가지고 있다.
이 네트워크가 바로 그의 ‘정보력’이자, 동시에 영향력의 반경이다.
기자의 세계에서 ‘취재 네트워크’는 단순한 인맥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명함은 많지만, 그 명함이 곧 신뢰는 아니다.
기자는 신뢰를 거래하지 않는다.
그는 진심을 기반으로 정보의 순환 구조를 만든다.
정보를 받기만 하지 않고, 상황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고,
서로의 신뢰를 유지하며 관계를 키운다.
이 과정을 통해 기자는 단순한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의미의 연결자(Connector of Meaning)’가 된다.
그가 쌓은 네트워크는
단순한 연락처의 모음이 아니라 사유의 확장망이다.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는
사건의 이면을 새롭게 해석할 단서를 제공한다.
결국 기자의 통찰력은 개인의 머리에서가 아니라
이 관계의 다양성 속에서 만들어진다.
커리어 세계도 다르지 않다.
직장인에게 네트워크는 더 이상 ‘사람을 알아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제를 함께 탐구할 수 있는 연결 구조다.
한 사람의 역량은 한정적이지만,
신뢰 기반의 네트워크는 그 한계를 초월한다.
프로젝트를 하다 막힐 때,
다른 부서, 다른 회사, 다른 분야의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커리어는 공유된 지식의 네트워크 위에서 성장한다.
이런 사람은 문제 해결 속도가 빠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로 전환하는 힘이 강하다.
기자의 취재 네트워크는 늘 ‘서로의 교환’ 위에 있다.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함께 확장하는 협력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얻기만 하면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반대로, 서로의 질문과 해석을 나누는 관계는 오래간다.
기자는 ‘관계의 깊이’를 위해 시간을 쓴다.
단 한 명이라도 진심을 다해 신뢰를 쌓는 것,
그게 취재 네트워크의 본질이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은 항상 성과가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은
대체로 네트워크가 잘 연결된 사람이다.
그는 혼자서 답을 찾지 않는다.
적절한 사람에게 묻고, 서로의 경험을 조합해 문제를 해결한다.
이때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느냐’다.
결국 신뢰 네트워크가 곧 경력의 확장망이다.
기자들은 이 관계의 가치를 일찌감치 배운다.
어느 날 한 사건이 터졌을 때,
전화 한 통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그는 평소에 관계를 진심으로 관리한 기자다.
반대로, 평소 연락이 없다가 급할 때만 전화를 거는 사람은
결코 취재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경력의 세계도 똑같다.
평소엔 소극적이던 사람이
프로젝트가 막히자 도움을 구하면,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평소에 지식과 아이디어를 나누던 사람은
위기 때에도 손을 내민다.
결국 관계는 위기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 진가를 결정짓는 건 평소의 태도다.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기업의 신입사원이 선배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배님,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많이 알아요?”
그 선배는 웃으며 답했다.
“나는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러 다닌다.”
그 말은 기자의 언어이자,
현대 커리어의 핵심 전략이다.
좋은 질문은 좋은 사람을 연결한다.
질문은 관계를 열고, 관계는 배움을 확장시킨다.
기자의 네트워크가 사건의 본질을 밝혀내는 ‘탐사망’이라면,
직장인의 네트워크는 자신의 커리어를 진화시키는 ‘탐색망’이다.
그 탐색망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시야를 얻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한다.
결국 경력의 깊이는 사람의 깊이에서 비롯된다.
단단한 커리어는 혼자 쌓는 것이 아니라,
함께 탐색하고 해석하는 사람들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제 다시 묻자.
“내 일의 네트워크는 얼마나 살아 있는가?”
“나는 나의 관계망 속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고 있는가?”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던질 때, 나는 그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인가?”
커리어의 확장은 사람의 확장이다.
관계를 쌓는다는 것은 단순히 명함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창을 넓히는 일이다.
기자가 취재 네트워크로 세상의 진실을 엮듯,
우리도 관계의 힘으로 일의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
혼자 아는 것은 정보이지만, 함께 아는 것은 통찰이다.
그 통찰의 연결선 위에서 커리어는 자란다.
기자의 세계에는 묘한 긴장이 흐른다.
어제의 특종이 오늘의 기준이 되지 못하고,
오늘의 기사도 내일이면 금세 낡아버린다.
그래서 기자는 단 한 번도 완성형이 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다시 배우고, 다시 묻고, 다시 써야 한다.
이것이 바로 ‘탐색의 지속성’, 즉 기자가 성장하는 방식이다.
탐색은 사건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좋은 기자는 원고를 마감하는 순간에도
“이 이야기의 다음 장은 어디일까?”를 고민한다.
그는 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그 불완전함 속에서 새로운 질문을 찾는다.
탐색의 지속성은 바로 이 ‘불완전함을 견디는 능력’이다.
완성된 기사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사를 쓰기 위해 걸어온 사유의 흔적이다.
어떤 기자는 단 하나의 사건을 1년 넘게 파고들며,
진실의 끝에 닿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를 기록으로 남긴다.
그 과정이 바로 성장의 여정이자, 경력의 토대가 된다.
우리가 일하는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을 완성했다고 해서 배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일에서 무엇을 느꼈고, 어떤 점이 남았는지를 돌아보는 순간,
그 경험은 단순한 성과를 넘어 지식의 자산이 된다.
탐색형 커리어는 바로 이런 ‘되돌아봄의 기술’에서 완성된다.
단 한 번의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탐색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다.
기자들은 이를 “끝나지 않는 취재”라 부른다.
한 사건을 마무리하더라도, 그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고,
한 사람을 인터뷰하더라도,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상상한다.
탐색의 지속성은 단절이 아니라 순환이다.
한 신문사의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자는 매일 초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 말 속에는 깊은 통찰이 숨어 있다.
탐색의 지속성은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는 힘이다.
기자는 어제의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시야로 세상을 본다.
그가 다루는 주제가 정치든 사회든 문화든 상관없다.
핵심은, 그가 여전히 궁금해하는가 하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에게도 이 자세는 똑같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스스로를 초보로 두는 사람만이 오래간다.
탐색의 지속성은 바로 그런 겸손의 기술이다.
탐색의 지속성을 지닌 사람은 작은 변화에 민감하다.
그는 주변의 일상에서 배움의 기회를 찾는다.
회의에서 나온 짧은 발언,
동료의 실수,
고객의 반응,
이 모든 것이 탐색의 단서다.
그는 사건보다 과정을 본다.
성과보다 흐름을 본다.
이 시선이 커리어의 깊이를 만든다.
탐색은 ‘끊임없는 수정’의 과정이기도 하다.
기자는 원고를 쓰면서 수없이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쓴다.
마감 직전까지 문장의 리듬을 다듬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완성보다 완성해가는 법을 배운다.
우리의 경력도 같다.
완벽한 직무나 완벽한 역할은 없다.
대신 ‘조금 더 나아지는 하루’를 만드는 반복이 있을 뿐이다.
그 반복이 쌓여 커리어는 단단해진다.
탐색의 지속성은 또한 자기 회복력(Resilience)의 근원이다.
탐색을 계속하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실패를 멈춤이 아닌 재시작의 신호로 읽는다.
기자는 오보를 내면 깊은 상처를 입지만,
그 경험이 다음 보도를 더 정확하게 만든다.
직장인 역시 실수를 통해 배운다.
실수는 탐색의 일부다.
실수를 끝으로 삼는 사람은 멈추지만,
실수를 계기로 다시 탐색하는 사람은 성장한다.
탐색의 지속성은 결국 커리어의 시간감을 바꾸는 일이다.
많은 사람이 경력을 ‘직선적 성장’으로 본다.
하지만 기자의 탐색은 직선이 아니라 원이다.
계속 돌면서 넓어지고, 그 중심에는 ‘배움’이 있다.
직업의 경로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그 배움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면,
그 사람의 커리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기자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는 매일 다시 쓰는 사람이다.
우리의 커리어도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 새로 배우고, 새로 묻고, 새로 쓰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인간’으로 남는다.
탐색은 불안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만 성장은 일어난다.
기자는 오늘도 불완전한 질문을 품고 현장에 나선다.
그 불완전함이 그를 움직이게 하고,
그 움직임이 결국 진실에 가까워지게 한다.
우리의 일도 다르지 않다.
완벽을 꿈꾸기보다,
매일의 불완전함 속에서 배우고 다시 시작하는 것.
그것이 탐색의 지속성이며,
그 힘이 커리어를 오래 빛나게 한다.
“기자는 완성되지 않기에 매일 새롭다.
우리 역시 완성되지 않기에 계속 성장한다.”
기자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기자가 질문을 멈추는 순간이다.
그때부터 그는 더 이상 기자가 아니다.
기록은 남지만, 의미는 사라진다.
질문이 사라지면 세상은 닫히고,
닫힌 세상에서 새로운 이야기는 태어나지 않는다.
일터도 똑같다.
질문이 사라진 조직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의 목적을 잃고, 절차와 규칙만 남는다.
보고서는 늘어나지만 생각은 줄어들고,
성과는 쌓이지만 배움은 사라진다.
결국 ‘왜’가 사라진 자리에는 습관적 반복만 남는다.
질문은 단순히 무언가를 묻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사유를 여는 문이자, 변화의 출발점이다.
“왜”라고 묻는 순간, 사고의 구조가 열리고
새로운 가능성이 들어온다.
질문은 세상을 확장하고, 나를 성장시킨다.
그래서 기자는, 그리고 진짜 일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묻는다.
“지금 이 일은 누구를 위한 일인가?”
“이 선택은 어떤 가치를 남길 것인가?”
“이 방향이 정말 우리가 가야 할 길인가?”
이 질문들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바로 그 ‘다시 생각함’이 성장의 시작이다.
기자처럼 일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외부의 사건을 탐색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내면을 탐사하는 일.
그것이 진짜 커리어의 본질이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시야도 넓어진다.
질문이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그리고 그 다리를 건너는 동안
사람은 조금 더 성숙해지고, 조금 더 단단해진다.
AI가 정보를 대신 찾아주고,
검색이 모든 정답을 제공하는 시대에
질문은 인간의 마지막 기술로 남는다.
AI는 데이터를 조합하지만,
인간은 의미를 묻는다.
바로 그 의미를 찾는 과정이
‘생각하는 인간’의 증거이자,
‘성장하는 전문가’의 본질이다.
질문이 사라진 곳에서는
지식도, 관계도, 경력도 멈춘다.
하지만 질문이 살아 있는 곳에서는
항상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난다.
기자는 오늘도 그 가능성을 따라 현장으로 향한다.
불완전한 대답을 얻더라도,
그 질문이 자신을 더 나은 내일로 이끌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커리어도 그렇다.
명확한 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내가 하는 일은 누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이 일이 나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을 잊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커리어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기자가 질문으로 세상을 다시 쓰듯,
우리는 질문으로 자신의 경력을 다시 쓴다.
답을 찾는 사람은 한때의 성취를 남기지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평생의 성장을 남긴다.
그 차이가 곧 커리어의 깊이다.
“질문이 멈추는 곳에서 커리어도 멈춘다.
질문이 이어지는 곳에서 인생은 새롭게 쓰인다.”
이것이 바로 기자처럼 일하라는 말의 마지막 뜻이다.
그것은 단순한 직무 태도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삶의 철학이다.
묻는 사람으로 남는 한,
우리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며,
그 배움 속에서 일과 인생은 끊임없이 새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