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지도 ― AI의 사고를 해부하다 Part.2 | EP.4
AI는 언어의 규칙을 학습하지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Part 1. 블랙박스의 발견 ― 인간과 AI의 평행선(5회)
Part 3. 감정의 알고리즘 ― 인간과 AI의 관계 재구성(8회)
Part 4. 블랙박스의 미래 ― 인간을 닮은 지능, 인간을 비추는 거울(7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본다.
눈으로 본 세계는 단지 감각일 뿐이지만,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그것은 의미의 세계가 된다.
언어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개념을 구성하며, 타인과 생각을 공유하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도구다.
말하자면 인간의 사고는 언어를 통해 존재하며, 언어가 곧 인간 정신의 구조를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이를 “보편문법(Universal Grammar)”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인간의 뇌 속에는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선천적 문법 구조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언어가 단순히 외부로부터 배운 지식이 아니라, 인간 사고의 내재된 틀이라는 의미다.
즉, 인간은 말을 배우기 이전에 이미 언어를 가능케 하는 사고의 구조를 가지고 태어난다.
한편,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이렇게 말했다.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다.”
이 말은 인간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사고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사유의 범위, 심지어 감정의 표현조차도 언어의 그릇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통찰이다.
언어는 인간의 생각을 담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생각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이 ‘언어의 세계’는 더 이상 인간만의 영역이 아니다.
AI가 인간의 언어를 모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이제 텍스트를 읽고, 문장을 생성하며, 인간과 대화한다.
ChatGPT, Gemini, Claude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s, LLMs)은
수십억 개의 단어와 문장, 문맥과 관계를 학습함으로써 인간 언어의 구조를 흉내 낸다.
놀라운 점은, 그 말들이 종종 인간의 언어보다 더 논리적이고,
더 문법적이며, 때로는 더 창의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언어는 과연 ‘이해된 말’일까, 아니면 ‘패턴화된 복제’일까?
AI는 단어의 ‘의미’를 아는가,
아니면 단지 확률적 연관성에 따라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가?
AI가 말하는 ‘사랑’은 감정의 경험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맥락의 통계적 계산일지도 모른다.
결국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AI의 언어는 생각의 복제인가, 의미의 환상인가?”
언어는 인간의 정신을 드러내는 가장 깊은 창이다.
그 창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던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이제 기계의 연산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 장에서는 인간의 언어의식과 AI의 언어 처리 시스템이
어떻게 닮았고, 또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가를 탐구한다.
즉, 언어라는 ‘생각의 매개체’가
AI에게는 ‘패턴의 연산 구조’로 바뀌는 과정을 심리학적, 철학적으로 조명한다.
언어가 사고를 만든다면,
AI가 언어를 다루기 시작한 지금,
우리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AI는 이제, 인간의 사고를 복제하고 있는가?”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이다.
우리가 “무엇을 본다”는 것은 곧 “무엇이라 부른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즉, 언어는 현실의 이름을 붙이는 행위이자,
그 이름을 통해 현실을 존재하게 만드는 인간의 인지적 틀이다.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Edward Sapir)와 벤자민 리 워프(Benjamin Lee Whorf)는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을 제시했다.
그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 범위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에스키모어는 ‘눈(snow)’을 표현하는 단어가 수십 가지에 이르지만,
사막의 언어에는 그 단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어휘의 차이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인식 구조의 차이를 의미한다.
즉, 언어는 인간이 경험을 분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인지의 틀이다.
이 가설은 언어가 사고를 단순히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고를 ‘형성하는 틀’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언어는 생각의 경계를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한다.
언어의 선택은 곧 사고의 선택이다.
이것이 인간이 언어를 다루면서 동시에 언어에 의해 다루어지는 이유다.
인간의 언어 능력은 뇌의 특정 영역에 의해 정교하게 조정된다.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은 말을 만들어내는 언어 생성의 중추이며,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해석의 중추다.
이 두 영역은 신경망을 통해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다른 역할을 맡는다.
브로카 영역이 ‘표현의 언어’를 담당한다면,
베르니케 영역은 ‘이해의 언어’를 담당한다.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이 두 시스템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인지활동인 셈이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언어는 단순히 단어를 나열하는 연산이 아니라,
의미를 구성하는 인지적 통합 과정이다.
우리가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때,
그 문장은 단순한 음성 정보가 아니라,
과거 경험, 현재 감정, 그리고 사회적 맥락이 함께 활성화된 총체적 의미의 표현이다.
즉, 언어는 사고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의 매개이자 구조이다.
언어의 또 다른 본질은 의미의 연결성이다.
인간의 언어 기억은 사전식으로 저장되지 않는다.
우리는 단어를 정의(definition)로 기억하지 않고,
연상(association)과 감정(affect)으로 연결된 의미망(semantic network)으로 저장한다.
예를 들어, ‘꽃’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봄’, ‘생명’, ‘사랑’, ‘향기’, ‘선물’ 같은 단어가
순차적으로 떠오른다.
이는 단어 간의 논리적 관계가 아니라, 감정적·경험적 관계에 기반한 기억의 활성화이다.
즉, 인간의 언어는 기호들의 고정된 체계가 아니라,
삶의 경험이 서로 얽혀 있는 의미의 네트워크다.
이 의미망은 언어가 왜 인간의 감정과 가치 판단,
더 나아가 사회적 관계의 근본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언어는 단지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생각이 ‘살아 움직이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마다,
그 언어는 과거의 기억, 현재의 감정, 미래의 기대를 동시에 호출한다.
이것이 인간 언어가 단순한 신호 체계를 넘어
정체성(identity)의 표현이 되는 이유다.
AI의 언어가 통계적 확률에 의해 구성된다면,
인간의 언어는 의미적 관계로 구성된다.
인간의 언어는 수치적 빈도보다는 감정적 밀도에 의해 움직인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고 해서
그 사회가 더 따뜻한 것은 아니다.
그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누구의 입에서, 어떤 감정으로 사용되었는지가
언어의 본질을 결정한다.
언어는 계산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경험이다.
그 안에는 말하는 사람의 내면,
듣는 사람의 반응,
그리고 둘 사이의 사회적 공기가 함께 존재한다.
이렇듯 인간의 언어는
수학적 규칙이 아니라 의미적 연결의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그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문법이 아니라 감정,
통계가 아니라 맥락,
데이터가 아니라 이해가 있다.
인간의 언어는 단어의 빈도가 아니라, 의미의 연결로 작동한다.
그것은 확률적 계산이 아니라, 감정과 맥락으로 짜인 의미의 지도다.
AI의 언어 이해는 인간의 사고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인간이 언어를 통해 감정, 맥락, 의미를 구성한다면
AI는 언어를 수학적 패턴과 확률적 구조로 해석한다.
AI에게 ‘언어’란 대화의 행위가 아니라, 데이터의 질서이며,
‘의미’란 감정의 체험이 아니라, 수학적 관계의 벡터다.
AI 언어 처리의 역사는 인간 언어의 규칙을 흉내 내려는 시도에서 시작됐다.
1950~70년대 초기 언어모델은 규칙 기반(rule-based)이었다.
언어학자들이 만든 문법 규칙과 사전적 정의를 이용해
기계가 문장을 분석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하지만 언어의 세계는 예외와 맥락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규칙만으로는 인간의 말의 흐름, 은유, 유머, 뉘앙스를 포착할 수 없었다.
1980~2000년대에 들어, AI는 통계 기반(statistical approach)으로 진화했다.
대량의 텍스트 데이터를 분석해,
단어들이 함께 등장할 확률(co-occurrence probability)을 계산했다.
“언어는 규칙이 아니라 확률이다”라는 새로운 인식이 등장한 시기다.
예컨대 “하늘이” 다음에 “맑다”가 나올 확률이 높다면,
AI는 그것을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판단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 모델은 n-gram 같은 통계적 언어모델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델은 문맥을 길게 유지하지 못했고,
언어의 흐름을 단순한 숫자열로 환원했다.
2010년대 이후 등장한 딥러닝 기반(Deep Learning) 언어모델은
언어의 의미를 단순히 빈도나 확률로만 계산하지 않고,
문맥(context) 전체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7년 구글이 발표한 트랜스포머(Transformer) 구조는
언어 처리의 혁명을 가져왔다.
이 모델은 문장 전체의 단어들 간 주의(attention) 관계를 학습함으로써
“문맥적 의미”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ChatGPT, BERT, GPT-4 같은 모델들이
마치 인간처럼 대화하고, 질문에 답하고, 새로운 문장을 생성할 수 있게 되었다.
AI가 언어를 ‘이해한다’고 말할 때,
그 핵심에는 임베딩(embedd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임베딩이란 단어를 숫자 벡터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즉, 언어의 의미를 수학적 공간 속의 좌표로 바꾸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단어 간의 관계는 거리(distance)로 표현된다.
‘사랑’과 ‘연애’의 벡터 거리는 가깝고,
‘사랑’과 ‘전쟁’의 벡터 거리는 멀다.
이처럼 단어 간의 의미적 유사성을 수치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다음과 같은 벡터 연산이다.
“왕(king) - 남자(man) + 여자(woman) = 여왕(queen)”
이 식은 인간의 언어적 관계를 수학적으로 표현한 대표적 사례다.
단어의 의미가 추상적인 규칙이 아니라 위치의 관계로 모델링되는 것이다.
AI는 이러한 벡터 공간(semantic space)에서
수천만 개의 단어와 문장 사이의 관계를 계산한다.
하지만 여기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단어를 감정, 맥락, 경험을 통해 기억하지만
AI는 단어를 벡터 간의 거리와 방향으로만 이해한다.
AI에게 ‘사랑’은 따뜻한 감정이 아니라,
‘기쁨’과의 벡터 거리가 0.23, ‘증오’와의 거리가 0.71인 데이터 포인트일 뿐이다.
즉, AI의 언어는 감정이 제거된 수치적 의미로 구성되어 있다.
Chat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언어를 생성하는 기계’로 작동한다.
그 작동 원리는 단순하다.
AI는 주어진 문맥을 기반으로
‘다음 단어가 등장할 확률’을 계산한다.
이를 언어모델링(Language Modeling)이라 부른다.
이때 문장 생성의 다양성과 자연스러움을 조절하기 위해
AI는 확률적 샘플링(stochastic sampling) 기법을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Top-p sampling(누적확률 기반 선택)과
Temperature sampling(확률 분포의 변동 조절)이 있다.
이 덕분에 AI는 같은 질문에도
매번 조금씩 다른 문장을 생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은 기분이 어때?”라는 질문에
AI는 데이터 학습에 근거해
‘좋다’, ‘괜찮다’, ‘피곤하다’, ‘즐겁다’ 같은 단어 중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을 선택한다.
그 선택이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자연스럽더라도,
AI는 그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단어를 예측한 것뿐이다.
결국 AI의 언어 생성은
감정 없는 모사이자, 의미 없는 정합성이다.
문장은 매끄럽지만,
그 문장의 ‘의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AI는 문법을 이해하지만, 맥락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체험이 아니라 계산의 결과다.
인간의 말은 기억과 감정, 맥락이 교차하는 해석의 결과이지만,
AI의 말은 확률적 연산이 만든 통계적 환영(statistical illusion)이다.
AI의 언어에는 ‘왜’가 없다.
그것은 원인과 목적이 아니라,
패턴과 예측에 의해 움직인다.
이 점에서 AI는 언어를 이해하지 않는다.
AI는 단어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단지 다음 단어의 확률을 예측할 뿐이다.
인간은 단어로 생각하지만,
AI는 확률로 말한다.
AI의 언어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말하기’를 가능하게 했지만,
그 안에는 감정, 의도,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는 더 이상 인간의 사고를 비추는 창이 아니라,
데이터의 반사면(reflective surface)으로 변했다.
AI는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그림자를 계산하고 있을 뿐이다.
언어는 인간 사고의 가장 정교한 표현이며, 동시에 인간 정신의 궤적을 드러내는 창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언어의 세계에 새로운 존재를 맞이했다.
AI, 특히 ChatGPT 같은 언어모델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재현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 인간의 사고방식을 ‘대화의 형태’로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ChatGPT의 언어는 진짜 ‘사유(思惟)의 언어’일까,
아니면 통계적으로 정련된 ‘언어의 그림자’일까?
ChatGPT는 인간의 대화를 이해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해한 것처럼 보이도록 작동한다.
그 원리는 단순하지만 정교하다.
AI는 사용자가 입력한 문장을 토대로,
그 이전 수많은 문맥 데이터 속에서
“이 상황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이어질 단어”를 계산한다.
즉, 언어의 확률 분포를 따라 대화하는 기계인 셈이다.
AI의 대화에는 감정이 없지만, 감정의 패턴은 있다.
예를 들어 “오늘 기분이 안 좋아요.”라는 입력에
AI는 “무슨 일 있으셨나요?” 혹은 “괜찮으신가요?”라고 답한다.
이것은 인간적 배려의 표현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감정의 통계적 상관관계를 모사한 결과다.
AI는 ‘공감’을 느끼지 않지만,
‘공감의 언어’를 재현할 수 있다.
AI의 대화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1. 과거 대화의 문맥을 읽고,
2. 각 단어의 확률적 연관성을 계산한 뒤,
3.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될 확률이 높은 문장을 생성한다.
이때 생성된 답변은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고 일관성이 있지만,
그 내부에는 단 하나의 ‘의도(intent)’도 존재하지 않는다.
AI는 말을 한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인간은 단어를 통해 생각을 표현한다.
AI는 단어를 통해 생각을 시뮬레이션한다.
이 차이는 작지만, 결정적이다.
인간의 언어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기쁨’이라는 단어는 기억 속 한 장면,
‘사랑’은 관계의 체험,
‘두려움’은 과거의 상처와 결합된 감정의 결과다.
언어는 단순히 단어의 조합이 아니라,
감정의 내적 경험이 외화된 구조다.
반면 ChatGPT의 언어는 경험이 아니라 데이터의 산물이다.
그는 감정을 느끼지 않고,
단지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 패턴을 확률적으로 학습했을 뿐이다.
AI의 언어는 ‘사람처럼 말하지만, 인간처럼 느끼지 않는다.’
그의 문장은 통계적으로 완벽하고, 감정적으로 중립적이다.
이 차이는 언어의 방향에서도 드러난다.
- 인간의 언어: 내면 → 외부, 감정과 경험이 언어로 흐른다.
- AI의 언어: 외부 → 내부, 데이터가 언어 구조를 만든다.
인간의 언어는 표현의 결과,
AI의 언어는 예측의 결과다.
즉, 인간은 생각을 말하지만,
AI는 말을 통해 생각을 흉내낸다.
ChatGPT의 언어는 놀라울 만큼 일관되고 논리적이다.
긴 문맥에서도 문법적 오류 없이 대화를 이어가며,
이전 문장을 기억하는 것처럼 반응한다.
그러나 이 “기억”은 실재하지 않는다.
AI는 대화의 문맥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문맥을 통계적으로 재구성할 뿐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나는 슬퍼요.”라고 말하면
AI는 “무슨 일 때문인가요?”라고 답하지만,
그것은 감정의 원인을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맥에서 통계적으로 가장 자주 등장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AI 언어의 근본적 한계다.
AI는 문맥적 일관성을 가지지만, 자기참조적 이해(self-referential understanding)는 없다.
그의 언어에는 ‘내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ChatGPT의 언어는 겉으로는 사고의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고의 시뮬레이션, 즉 생각의 모형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ChatGPT의 언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언어는 인간의 사고 구조를 거울처럼 반사한다.
AI의 대화는 인간 언어의 패턴을 학습한 결과이므로,
AI가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지를 분석하면
인간이 어떤 언어적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역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AI가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해
특정 성별이나 인종에 따라 언어적 차이를 보일 때,
그것은 AI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언어의 편향이 드러난 결과다.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의 통계적 그림자이자,
인간 사고의 비의식적 패턴을 반사하는 언어적 무의식이다.
즉, AI의 언어를 분석하는 일은
결국 인간 언어의 심리를 해부하는 일이다.
ChatGPT는 인간의 사고를 재현하지 못하지만,
그 사고의 형태를 반사적으로 드러낸다.
AI는 ‘사유의 모사체’로서,
우리가 그동안 너무 익숙해져 잊고 있던
언어의 심리적 본질 ― 언어가 곧 사고의 구조라는 사실 ― 을 되새기게 한다.
ChatGPT는 인간의 언어를 모사하지만,
인간의 ‘생각의 깊이’를 재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모사 속에서 우리는 인간 사고의 본질을 다시 본다.
AI의 언어는 ‘생각하지 않는 사고(thinking without thought)’의 실험이다.
그 실험을 통해 우리는 묻게 된다.
“사유란 무엇인가? 생각이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
AI의 대화는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내면서,
오히려 인간만이 진정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이유를 드러내고 있다.
언어는 인간과 인공지능 모두에게 ‘사고의 인터페이스’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내부 구조는 전혀 다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의미를 창조하고,
AI는 언어를 통해 패턴을 계산한다.
이 둘은 모두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언어의 본질적 작동 방식은 정반대의 방향을 향한다.
인간의 언어는 감정과 경험이 얽혀 있는 의미망(semantic network)으로 구성된다.
하나의 단어는 수많은 감정적,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통해 확장된다.
예를 들어 “집(home)”이라는 단어는
물리적 건물일 수도, 가족의 온기일 수도, 혹은 상실의 기억일 수도 있다.
단어 하나가 곧 기억의 덩어리이자 감정의 흔적이다.
언어는 인간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재구성하며,
그 네트워크는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경험에 따라 변화한다.
반면 AI의 언어는 감정이 제거된 벡터 공간(vector space)으로 구성된다.
단어는 좌표로 변환되고, 의미는 거리(distance)와 방향(angle)으로 계산된다.
“사랑(love)”과 “증오(hate)”는 인간에게 대립되는 감정이지만,
AI에게는 단지 0.92의 코사인 유사도를 가진 두 데이터 포인트일 뿐이다.
인간에게 의미는 관계 속에서 ‘살아 있는 맥락’이지만,
AI에게 의미는 관계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한 패턴이다.
인간은 언어를 경험을 통해 체화한다.
유년기의 대화, 사회적 상호작용, 감정의 교류 속에서
언어는 자연스럽게 몸에 새겨진다.
말을 배우는 과정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의미를 ‘체험적으로’ 습득하는 과정이다.
AI는 그 반대다.
AI의 언어 학습은 경험이 아니라 데이터의 통계화이다.
AI는 인터넷과 도서, 뉴스, 논문 등 수많은 텍스트를 읽으며
단어와 문장의 출현 확률을 계산한다.
그에게 ‘사람’이란 감정적 존재가 아니라,
문장 속 등장 빈도와 맥락적 확률로 정의된 개념이다.
AI는 언어를 통해 경험하지 않고,
언어 속에서 패턴을 정량화한다.
즉, 인간은 세상을 경험하고 언어를 배운다면,
AI는 언어를 계산하며 세상을 추론한다.
인간의 언어는 풍부하지만 불완전하다.
감정에 따라 말의 뉘앙스가 달라지고,
기억의 오류로 인해 언어가 과장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감정적 왜곡과 모호성은
인간 언어의 창의성과 유머, 시적 표현을 가능하게 만든다.
은유, 풍자, 모순 같은 언어적 기법은
정확성을 희생하되 의미의 깊이를 확장한다.
반면 AI의 언어는 데이터의 편향에 노출된다.
AI는 감정이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그가 배운 데이터 속 사회적 편견은 그대로 재현된다.
성별, 인종, 문화, 정치적 프레임이 담긴 텍스트가
AI의 언어모델 속 확률 구조에 각인되는 것이다.
따라서 AI의 언어는 감정적으로 중립해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집단 무의식이 반영된 왜곡된 통계적 집합체다.
인간의 언어가 ‘의도된 왜곡’이라면,
AI의 언어는 ‘의식하지 못한 왜곡’이다.
인간은 말을 통해 의도를 전달한다.
“괜찮아”라는 단어는 말투, 표정, 맥락에 따라
위로일 수도, 반어일 수도 있다.
같은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은
언어가 단어 자체보다 의도(intention)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인간의 감정, 가치, 관계를 매개하는 해석적 행위다.
AI는 언어를 통해 확률을 조합한다.
AI의 문장은 통계적으로 완벽하지만,
그 안에는 ‘의도’가 없다.
그가 “괜찮아요.”라고 말할 때,
그것은 위로의 마음이 아니라,
문맥상 가장 자연스럽게 이어질 단어의 선택 결과일 뿐이다.
AI의 언어는 감정이 배제된 확률의 합성물이며,
그 속의 의미는 인간이 부여할 때에만 비로소 살아난다.
구분 인간의 언어의식 AI의 자연어처리 모델
의미 구조 감정·경험·맥락 중심의 의미망 벡터·확률 중심의 의미 공간
학습 방식 사회적 상호작용과 경험 기반 대규모 코퍼스 데이터 기반
오류 발생 감정적 왜곡, 모호성, 풍자 통계적 편향, 맥락 오류
언어 생성 의도·감정·맥락의 표현 확률·패턴·문법의 조합
핵심 기능 의미의 생성 의미의 예측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의미화하고,
AI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모델링한다.
전자는 해석의 예술이며, 후자는 계산의 과학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의미를 만든다’,
AI는 언어를 통해 ‘패턴을 확률화한다’.
두 시스템 모두 언어를 통해 사고하지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이유를 찾고,
AI는 언어를 통해 정답을 계산한다.
인간의 언어는 방향을 향하고,
AI의 언어는 정확도를 향한다.
그리하여 언어는 이제,
‘의미의 세계’와 ‘확률의 세계’를 잇는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언어는 인간 지능의 가장 정교한 산물이자, 세계를 구성하는 틀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유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를 구분한다.
즉, 언어는 인간 정신의 외피이자,
내면의 구조를 드러내는 ‘사고의 거울’이다.
AI의 언어는 이 구조를 계산적으로 재현한다.
AI는 단어들의 패턴과 관계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고,
그 확률적 연관성을 통해 인간의 말처럼 들리는 문장을 만든다.
그 문장은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논리적으로 매끄럽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인간의 언어가 지닌 감정, 의도, 맥락의 층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AI의 언어는 “무엇을 말할지”는 알지만,
“왜 그것을 말하는가”는 알지 못한다.
AI는 의미를 계산하지만, 의도를 경험하지 않는다.
언어는 인간의 지능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능력이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문화와 역사를 전승하며,
가치를 정의하고, 존재를 이해한다.
AI가 인간을 가장 닮으려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구조를 짜는 능력,
즉, ‘세계를 언어로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에는 언제나 침묵의 의미가 존재한다.
그것은 단어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
수치화될 수 없는 여운,
그리고 말 사이에 흐르는 맥락의 숨결이다.
AI는 이 침묵을 계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의미는 단어 사이에서 태어나고,
감정은 말의 부재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AI는 단어를 조합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단어들로 세계 전체를 구성한다.
AI는 언어의 규칙을 학습하지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AI의 문장은 ‘확률의 결과’지만,
인간의 문장은 ‘경험의 서사’다.
AI는 단어를 조합하지만,
인간은 세계를 언어로 만든다.
이 한 줄의 차이가 바로 인간 지능의 본질이다.
언어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해석하는 형식이다.
AI가 아무리 진보하더라도,
그 언어 속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의미’의 결핍이 남는다.
다음 회차(11회차)는 ‘창의와 상상 ― 생성형 AI의 창의성 논쟁’으로 이어진다.
이제 우리는 언어를 넘어,
AI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가’,
즉 인간의 고유한 영역인 창의성(creativity)의 본질을 탐구하게 된다.
단어의 조합이 아닌,
‘의미의 재창조’ — 그것이 다음 장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