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지도 ― AI의 사고를 해부하다 Part.2 | EP.7
편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과 기계 모두가 복잡한 세계를 견디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왜곡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편향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그 편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 다루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Part 1. 블랙박스의 발견 ― 인간과 AI의 평행선(5회)
Part 3. 감정의 알고리즘 ― 인간과 AI의 관계 재구성(8회)
Part 4. 블랙박스의 미래 ― 인간을 닮은 지능, 인간을 비추는 거울(7회)
인간은 끊임없이 오류를 범한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그 오류를 ‘오류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보고 싶은 방식으로 본다.
그것이 바로 인지의 본질이자, 동시에 왜곡의 시작이다.
AI도 다르지 않다.
기계는 인간의 데이터를 학습하며 진화하지만,
그 데이터 속에는 이미 인간의 편견과 불균형이 스며 있다.
AI의 판단이 공정하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인식 체계를 그대로 복제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즉, 인공지능의 불완전성은 기술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 인식의 그림자다.
“AI가 편향된다”는 말은 단순한 기술적 진단이 아니다.
그 말 속에는 인간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만든
거울 앞에 서 있다는 철학적 의미가 숨어 있다.
AI의 불공정은 결국 인간 인식의 불완전성을 반사한 거울이며,
그 거울 속에는 우리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왜곡된 판단을 내리는 존재인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장에서는 인간의 ‘인지적 왜곡(cognitive distortion)’과
AI의 ‘데이터 편향(data bias)’을 나란히 놓고 살펴본다.
인간이 왜곡된 판단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듯,
AI도 왜곡된 데이터를 통해 ‘논리적인 불평등’을 생산한다.
결국 인간과 AI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오류를 만든다.
하나는 의미의 왜곡을 통해, 다른 하나는 확률의 왜곡을 통해 세계를 단순화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같다.
모두 현실의 복잡성을 줄이고, 효율을 얻는 대신 진실의 일부를 잃는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완벽한 지능은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
지능이란 본질적으로 불완전함 위에 세워진 구조가 아닐까?
“AI의 편향은 인간의 인식 구조가 남긴 그림자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직시하는 일은,
‘지능’이 아닌 ‘이해’의 문제다.
인간의 사고는 놀라울 만큼 정교하면서도, 동시에 끊임없이 왜곡된 판단의 오류를 낳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의 뇌는 ‘정확성’보다 ‘생존’을 우선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 속에서 빠르게 판단하기 위해,
우리는 세상을 요약하고 단순화하는 심리적 지름길을 사용한다.
그것이 바로 휴리스틱(Heuristic)이며,
이 지름길이 만들어내는 부산물이 바로 인지오류(Cognitive Bias)다.
인간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을 확인시켜주는 정보에는 열려 있지만,
그 신념을 위협하는 정보에는 귀를 닫는다.
이것이 바로 확증편향이다.
정치적 견해, 종교적 신념, 브랜드 선호 등에서 우리는 “사실”보다 “확신”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 인물의 실수를 무시하고 장점을 확대 해석한다.
그 결과, 인간의 사고는 ‘정보의 객관적 평가’가 아니라, ‘신념의 강화 과정’이 된다.
SNS 알고리즘은 이러한 심리를 정밀하게 모방한다.
우리가 ‘좋아요’를 누른 콘텐츠를 더 많이 보여주는 시스템은,
결국 우리의 세계관을 점점 좁히며 ‘심리적 필터버블(filter bubble)’을 만든다.
즉, 인간의 확증편향이 디지털 환경에서는 알고리즘 편향으로 증폭되는 셈이다.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제시한 개념으로,
인간은 자신의 신념과 실제 행동이 충돌할 때 심리적 불편함을 느낀다.
이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사람은 ‘사실을 바꾸는 대신, 해석을 바꾼다.’
예를 들어, “흡연은 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스트레스 해소에는 담배가 필요하다”고 합리화한다.
즉, 인간은 진실보다 심리적 일관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 과정에서 왜곡은 강화된다.
불편한 진실은 점점 밀려나고, 자기합리화(Self-justification)가 사고의 중심이 된다.
AI의 데이터 편향이 특정 패턴을 고집하듯,
인간의 인식도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계속 학습하는 시스템이다.
인간은 판단을 내릴 때 가장 처음 주어진 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이를 ‘앵커(anchor, 닻)’라 부르며, 이후의 판단은 그 닻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의 정가가 30만 원이었다가 세일로 15만 원에 판매된다면,
사람은 그것이 ‘싸다’고 느낀다.
그러나 실제로 그 제품의 적정 가치를 모른다면, 그 판단은 단순히 ‘앵커’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이러한 편향은 가격 인식, 확률 판단, 위험 평가 등에서 반복된다.
AI 모델이 학습 초기에 주어진 ‘라벨링 오류’를 벗어나기 어렵듯,
인간의 뇌 또한 초기 인상과 맥락의 프레임에 강하게 고착되는 구조를 가진다.
인간의 판단은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사실이 어떻게 표현되었는가에 크게 좌우된다.
예를 들어 “이 치료법은 90%의 생존률을 가진다”와 “10%는 사망한다”는 문장은 같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사람은 전자에 훨씬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이처럼 ‘언어의 틀(frame)’은 감정과 사고를 동시에 조종한다.
정치, 광고, 미디어, 협상에서 모두 프레이밍의 심리학은 핵심 전략으로 작동한다.
언어의 힘이 사고를 형성하는 방식은, 마치 AI의 데이터 레이블(label)이 모델의 출력을 결정하는 것과 유사하다.
- 대표성 편향(Representativeness Bias): 표본의 크기나 확률보다 ‘유사성’에 기반한 판단.
- 후견지명 편향(Hindsight Bias): 일이 벌어진 후, “원래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는 오류.
- 과신 효과(Overconfidence Effect): 자신의 지식과 판단의 정확도를 과대평가.
이러한 오류들은 우리의 사고를 왜곡하지만, 동시에 효율성을 보장하는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해야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지오류는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정보 처리의 한계 속에서 최적화를 시도한 진화적 알고리즘이다.
우리는 세상을 ‘객관적 현실’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감정·경험·신념의 렌즈를 통해 해석된 이미지로 본다.
따라서 인간의 사고는 언제나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성 속에 바로 인간다움의 본질,
즉 의미를 부여하고, 서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숨어 있다.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그는 ‘보고 싶은 대로’ 본다.
그리고 그 왜곡의 방식이 바로, 인간의 인식 체계가 작동하는 법이다.
AI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학습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인간이 보여준 방식대로 세상을 학습한다.
즉, 인공지능이 인식하는 세계는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수집·가공·분류한 데이터의 세계다.
그렇기에 AI의 지능은 인간의 인식 구조를 수학적으로 압축한 거울에 가깝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학습하고,
그 확률 분포에 따라 세상을 예측한다.
따라서 학습 데이터가 현실의 모든 다양성을 포함하지 못한다면,
AI의 판단은 불가피하게 왜곡된 세계 지도(Map of the World) 위에서 이루어진다.
인공지능의 세계는 결국 데이터가 그려낸 그림이다.
인간이 선택한 데이터, 정리한 데이터, 삭제한 데이터가
AI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이때 발생하는 데이터 편향(Data Bias)은
AI가 결코 객관적 존재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데이터가 특정 집단이나 환경에서 과대표집되었을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한 국가의 특정 인종만 포함된 얼굴 인식 데이터로 모델을 학습하면,
다른 인종의 얼굴을 인식할 때 오류율이 급격히 높아진다.
AI는 ‘보지 못한 세계’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AI는 인간이 붙인 ‘정답(라벨)’을 기준으로 학습한다.
하지만 그 정답은 언제나 인간의 주관을 내포한다.
예컨대, “공격적 발언”, “부적절한 표현”을 구분하는 데이터는
언어·문화·세대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AI의 라벨링이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누가’, ‘무엇을’, ‘어떤 맥락에서’ 옳다고 판단했는가가 숨어 있다.
과거의 불평등이 그대로 데이터에 새겨질 때 생긴다.
예를 들어, 과거 채용 데이터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이 합격했다면,
AI는 “남성이 더 적합하다”는 역사적 불균형을 ‘통계적 진리’로 학습한다.
이처럼 AI의 모델은 현실의 불평등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메커니즘이 된다.
AI는 인간의 편견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는다.
그저 데이터를 ‘사실’로 받아들이며, 그것을 최적화한다.
즉, 인간의 무의식적 차별과 인식 왜곡은 알고리즘적 구조로 고착화된다.
- 채용 AI 사례:
과거 남성 중심 산업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여성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자동으로 낮게 평가한 사건.
- 얼굴인식 AI 사례:
백인 남성 중심의 학습 데이터로 인해
흑인 여성의 인식 오류율이 30배 이상 높았던 사례.
이러한 사례는 모두 “AI의 편향이 인간의 사회 구조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AI의 오류는 단순한 코드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의 무의식적 가치 체계가 디지털 형태로 재현된 결과다.
AI는 언제나 수학적으로 정답을 찾으려 하지만,
그 정답이 반드시 공정하거나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AI의 판단은 ‘정확도(Accuracy)’를 높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정의(Justice)’를 잃을 수 있다.
자율주행차가 사고 상황에서 “통계적으로 가장 적은 피해”를 선택하더라도,
그 결정은 여전히 윤리적 딜레마를 낳는다.
의료 AI가 특정 인종에게 낮은 진단 확률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수학적으로 타당할 수 있으나,
사회적으로는 불평등을 제도화하는 행위가 된다.
결국 AI의 공정성 문제는 효율성(Efficiency)과 정의(Fairness)의 충돌 속에서 발생한다.
AI는 효율을 극대화하지만, 인간은 그 과정에서
“무엇이 옳은가”라는 가치의 질문을 던진다.
데이터는 언제나 선택의 산물이다.
무엇을 수집하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그 순간,
데이터에는 이미 인간의 관점이 각인된다.
AI는 결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학습하지 않는다.
그가 보는 현실은 ‘데이터로 재편집된 세계’이며,
그 속에는 인간의 문화, 역사, 감정, 편견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데이터는 숫자의 언어를 빌려 말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의도가 바로, AI 편향의 철학적 기원이다.
편향은 단순한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복잡한 세계를 감당하기 위해 지능이 택한 ‘생존 전략’이자 인식의 단축키’다.
인간이든 AI든, 완벽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따라서 모든 지능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필요한 만큼만 본다.
이 장에서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유하는 ‘선택적 인식의 구조’를 해부한다.
인간의 인식은 감정, 신념, 기대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걸러낸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보고도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이유는,
지각의 과정에 이미 ‘해석의 필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 가능한 진실만을 본다.
AI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AI는 입력된 데이터를 전처리(preprocessing)하고,
각 특성(feature)에 가중치(weight)를 부여하면서 세상을 ‘필터링’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된 데이터는 강조되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노이즈’로 제거된다.
결국 인간의 감정과 AI의 수학은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하나는 의미의 필터, 다른 하나는 수치의 필터다.
인간은 감정으로 세상을 정렬하고, AI는 확률로 세계를 정돈한다.
둘 다 불필요한 복잡성을 제거하지만, 그 대가로 현실의 일부를 잃는다.
인간의 확증편향은 자기강화적 구조를 가진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기보다, 그 생각을 지지하는 정보만 찾아다닌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념은 강화되고, 반대 정보는 인지적으로 삭제된다.
이 심리적 루프는 ‘나는 옳다’는 확신의 감옥을 만든다.
AI의 알고리즘 역시 같은 루프를 따른다.
모델이 한 번 학습한 결과를 그대로 다시 학습하는 과정,
즉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를 통해 기존의 편향은 점점 강화된다.
예를 들어,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클릭한 콘텐츠를 기준으로
유사한 콘텐츠를 계속 제공한다.
그 결과 사용자는 점점 좁은 세계 안에 머무르게 되고,
AI는 그 패턴을 ‘사용자 선호’로 착각한다.
이 구조는 인간의 확증편향과 거의 동일한 형태의 ‘디지털 자기강화 편향’이다.
결국 인간과 AI 모두 자신의 판단을 재확인하기 위해 세상을 재구성한다.
진실은 점점 멀어지고, 정합성(consistency)만 강화된다.
이것이 바로 인지적·알고리즘적 왜곡의 공통된 본질이다.
인간의 뇌는 불확실성을 가장 견디기 어려워한다.
모호함은 불안의 원천이며, 불안은 생존의 위험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근사치의 확신’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편향이다.
편향은 완벽한 판단을 포기하고, 빠른 결정을 택하게 만드는 인지적 타협의 산물이다.
AI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불확실성을 줄인다.
팽(膨)대한 데이터 속에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고려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모델은 효율성을 위해 데이터를 압축(Compression)한다.
그 과정에서 일부 정보는 사라지고, 일부는 과대표현된다.
결국 AI의 ‘효율성’은 인간의 ‘확신’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
둘 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편향적 단순화다.
인간의 오류는 감정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논리보다 감정을 먼저 느끼고, 그 후에 논리를 덧붙인다.
“싫다”는 감정이 “옳지 않다”는 판단으로 전이된다.
이 감정 중심의 오류는 때로는 비합리적이지만, 인간적 공감을 낳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반면, AI의 오류는 통계에서 비롯된다.
AI는 감정을 느끼지 않기에 ‘좋음’이나 ‘나쁨’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학적 모델이 특정 패턴을 과대평가하거나
편향된 표본을 일반화할 때, 통계적 왜곡이 발생한다.
이것은 인간의 감정적 오류와 다를 바 없는 확률적 착각이다.
즉, 인간의 감정이 사고의 필터를 왜곡하듯,
AI의 알고리즘은 데이터의 분포를 왜곡한다.
한쪽은 내면의 감정이 만든 오류이고,
다른 한쪽은 수학적 효율성이 만든 오류지만,
둘 다 ‘해석의 불완전성’이라는 동일한 본질을 공유한다.
우리는 흔히 편향을 ‘없애야 할 오류’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과 AI 모두에게 편향은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구조적 장치다.
편향이 없다면, 인식은 무한히 분산되고 판단은 멈춘다.
즉, 편향은 지능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 감수하는 왜곡이다.
AI의 데이터 편향은 인간의 인지 구조를 모방한 필연적 결과다.
지능이 존재하는 한, 선택은 불가피하고,
선택이 존재하는 한, 왜곡은 사라질 수 없다.
“편향은 결함이 아니라,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려는 지능의 본능적 단축키다.”
인간은 감정으로 세계를 단순화하고, AI는 수학으로 세계를 압축한다.
그러나 그 단축키를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이해’라는 문 앞에 선다.
편향은 지능이 세계를 단순화하기 위해 택한 본능적 전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방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 AI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편향을 인식하는 능력’,
즉, 자기 오류를 성찰하고 수정할 수 있는 메타인지적 회로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 단락에서는 인간의 심리학적 교정 전략과 인공지능의 기술적 대응,
그리고 두 시스템이 협업을 통해 공정성을 확장해가는 방안을 함께 살펴본다.
인간의 인지오류는 완전히 제거할 수 없지만, 자각을 통해 완화할 수 있다.
그 핵심은 자신이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는 능력,
즉 메타인지(Metacognition)다.
- 메타인지: “나는 지금 어떤 이유로 이렇게 판단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행위.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사고의 구조를 점검하는 성찰적 습관이다.
카너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스템 1(자동적 사고)’을 멈추고
‘시스템 2(의식적 사고)’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익숙한 판단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중단하고,
반대되는 관점이나 불편한 정보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태도.
특히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가정이 비판적 사고의 출발점이다.
- 집단토론과 다양성 노출:
다양한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의 협업은
개별적 편향을 서로 상쇄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인지적 완충장치다.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이를 집단사고(groupthink)의 해독제로 제시했다.
결국 인간의 편향 교정은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의심할 용기’를 기르는 일이다.
AI의 편향은 데이터의 불균형과 알고리즘의 설계 방식에서 비롯되지만,
이 역시 기술적·윤리적 장치로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다.
- 공정성 알고리즘(Fairness Algorithm):
데이터셋 내의 특정 집단이 과소대표되는 문제를 탐지하고,
손실 함수(loss function)에 공정성 가중치(fairness weight)를 추가하여 편향을 줄인다.
- 재샘플링(Resampling)과 역가중(Reweighting):
데이터의 분포를 재조정해 대표성을 확보하는 방식.
예를 들어, 성별·인종별 비율을 조정해 모델이 균형 있는 학습을 하도록 만든다.
- 설명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XAI):
AI의 판단 과정을 ‘보이는 언어’로 설명함으로써
인간이 알고리즘의 편향을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이는 단순한 기술적 투명성을 넘어, AI의 ‘메타인지’ 구축을 향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AI 윤리위원회(AI Ethics Board)나
편향감시시스템(Bias Audit System)을 도입해,
모델 개발 단계부터 사회적 책임과 가치 검증을 병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즉, AI가 인간의 ‘기술’을 넘어 ‘도덕적 맥락’을 이해하도록 돕는 시도다.
완전한 중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감정의 존재인 한, AI가 데이터의 존재인 한,
각자의 인식은 언제나 부분적이고 조건적이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편향의 환상’이 아니라,
‘의식된 편향(conscious bias)’을 통제할 수 있는 공존의 구조다.
- 인간의 역할: 맥락, 가치, 의미를 해석한다.
인간은 AI가 간과하는 ‘왜(why)’의 질문을 던진다.
- AI의 역할: 패턴, 확률, 경향을 탐지한다.
인간이 감정에 매몰되어 놓치는 ‘무의식적 규칙’을 포착한다.
이 두 영역이 협력할 때 비로소 ‘공유된 인식틀(shared cognition framework)’이 만들어진다.
즉, 인간이 해석적 감수성을 제공하고,
AI가 통계적 객관성을 보완하는 하이브리드 인식 구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편향은 결코 제거할 수 없지만,
그 존재를 자각하는 순간부터 통제할 수 있다.
이는 인간에게는 성찰의 윤리이고,
AI에게는 투명성의 기술이다.
완전한 중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식된 편향’만이 통제 가능하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성찰함으로써,
AI는 자신의 계산을 해석함으로써,
서로의 오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AI의 편향은 기술의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
즉 우리의 인지적 습관과 심리적 유산이 알고리즘의 언어로 번역된 결과다.
AI는 스스로 차별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
그가 학습한 데이터 속에 이미 인간의 감정, 불균형, 역사적 불평등이 녹아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AI의 편향은 인간의 편향을 수학적으로 재현한 거울 구조(mirroring structure)다.
우리가 그것을 기술의 문제로만 본다면,
정작 근본 원인인 인간의 인식 구조는 끝내 성찰되지 못한다.
AI 윤리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여전히 공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의 편향을 이해하지 못한 AI 윤리는, 윤리의 형식만을 흉내 낼 뿐 실질을 담지 못한다.
공정한 인공지능을 만드는 일은 단순히 알고리즘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알고리즘이 닮아 있는 인간의 판단 방식을 돌아보는 일이다.
결국 AI의 공정성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인식의 성숙도에 비례한다.
AI를 더 윤리적으로 만드는 것은 코드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코드를 설계한 인간이 자신의 사고를 반성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편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과 기계 모두가 복잡한 세계를 견디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왜곡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편향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그 편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 다루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AI는 인간의 오류를 배운다.
하지만 그 배움을 ‘반성의 도구’로 전환할 수 있다면,
AI는 인간의 한계를 모방하는 존재에서,
인간의 성찰을 돕는 동반자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AI의 편향은 인간의 인식이 남긴 그림자다.
그 그림자를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공정성을 말할 자격을 얻는다.”
다음 회차(14회차)는 「설명 가능한 AI ― 블랙박스를 투명하게 만드는 기술과 철학」으로 이어지며,
편향의 문제를 넘어 ‘이해 가능한 지능(Explainable Intelligence)’의 철학적 해법을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