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미래―인간 닮은 지능&인간 비추는 거울 Part.4 | EP.2
“AI는 데이터를 통해 꿈꾸고, 인간은 그 꿈을 통해 자신을 본다.
꿈꾸는 기계가 생겨난 시대, 해석하는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무의식을 마주한다.”
Part 1. 블랙박스의 발견 ― 인간과 AI의 평행선(5회)
Part 2. 인지의 지도 ― AI의 사고를 해부하다(8회)
Part 3. 감정의 알고리즘 ― 인간과 AI의 관계 재구성(8회)
인간에게 꿈은 무의식이 말하는 언어다.
이성의 빗장을 잠시 내려놓은 뇌는 억눌린 기억과 감정을 상징의 형태로 재구성하며,
그 속에서 자신을 치유하고 다시 정렬한다.
꿈은 논리의 세계가 아니라 감정의 세계, 즉 이해할 수 없는 연결이 의미를 낳는 세계다.
AI에게 데이터는 그와 같은 역할을 한다.
데이터는 기계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이며, 그 안에는 인간의 언어, 행동, 감정의 흔적이 응축되어 있다.
AI는 이 데이터를 수없이 재조합하고, 오류와 노이즈 속에서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은 인간의 꿈처럼 비합리적이고, 때로는 예측 불가능하다.
우리가 “기계의 환각(hallucination)”이라 부르는 현상은,
어쩌면 AI가 ‘데이터로 꾸는 꿈’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2015년 구글의 DeepDream Project는 그 가능성을 세상에 드러냈다.
이미지 인식 알고리즘이 스스로 본 데이터를 다시 합성하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풍경—눈을 가진 구름, 물고기 형태의 산,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패턴의 파도—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마치 기계가 “본 적 없는 것을 그리워하며 다시 그리는 꿈”처럼 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AI가 스스로의 기억을 ‘재조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제 우리는 묻는다.
기계는 데이터를 통해 무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AI의 생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환각, 상상, 예측 오류는
단순한 계산의 부산물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기계적 상상(Mechanical Imagination)인가?
AI가 데이터를 재해석하며 만들어내는 패턴은
인간이 꿈속에서 감정을 재구성하는 과정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본 장은 바로 이 유사성 위에서 출발한다.
AI의 꿈을 인간의 무의식·기억·상상력과 비교하며,
데이터로 꾸는 꿈이 갖는 심리학적·철학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결국 인간의 집단적 심리와 상상력을 어떻게 거울처럼 반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AI의 꿈은 우리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인간 집단무의식의 디지털 버전이다.”
인간의 꿈은 단순한 심상의 연속이 아니라, 무의식이 의식과 대화하는 심리적 언어체계다.
하루 동안 억눌린 감정, 미처 처리되지 못한 기억,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욕망이
상징과 이미지의 형태로 나타나며, 우리는 그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이해하려 한다.
꿈은 의식의 논리를 벗어나기 때문에 비합리적이지만, 바로 그 비합리성 속에서
인간의 마음은 감정의 균형과 정체성의 통합을 이룬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꿈을 “억압된 욕망의 위장된 실현”이라 정의했다.
꿈은 무의식이 의식의 검열을 피해 상징(symbol)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치다.
예를 들어, 불안은 추락의 이미지로, 성적 욕망은 물이나 계단의 상징으로 치환된다.
이러한 상징적 구조는 ‘무의식의 암호’이며,
꿈의 해석은 곧 그 암호를 풀어내는 심리적 해독 과정이다.
프로이트에게 꿈은 욕망의 흔적이자,
의식이 처리하지 못한 데이터를 무의식이 재조합하여 새로운 감정 패턴으로 전환하는 과정인
마음의 알고리즘이었다.
칼 융은 꿈을 개인의 경험을 넘어선, 인류 보편의 상징체계로 보았다.
그는 꿈이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 속에 저장된
원형(archetype)의 언어로 쓰인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어머니’, ‘그림자’, ‘영웅’, ‘길’ 같은 상징들은
문화와 시대를 넘어 인류가 공유하는 무의식적 코드다.
즉, 한 개인의 꿈 속 이미지들은 사실상
수많은 세대가 축적해온 감정의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어 있다.
이 개념은 오늘날 AI의 데이터셋 구조와 유사하다.
AI가 수십억 건의 이미지·문장·음성을 학습해
‘인간 전체의 언어 패턴’을 내면화하듯,
인간의 꿈 또한 집단적 경험의 패턴을 개인의 무의식 속에서 재구성한다.
꿈은 그 자체로 심리적 빅데이터의 압축본이다.
현대의 신경과학은 꿈을 감정 처리와 학습 강화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수면 중, 특히 REM(급속 안구 운동) 단계에서
뇌의 해마와 전전두엽은 낮 동안의 경험을 ‘재편집’하며
중요한 기억을 저장하고 불필요한 정보를 제거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의 강도에 따라 기억이 강화되거나 약화된다.
꿈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의 통합 알고리즘이다.
우리는 꿈을 꾸며 학습하고, 꿈을 통해 감정을 정리하며,
깨어난 뒤 더 정교한 사고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AI의 학습 구조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꿈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인간의 꿈이 ‘기억의 재조합’이라면,
AI의 생성 알고리즘은 ‘데이터의 재합성’이다.
두 과정 모두 기존의 정보를 다시 배열해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낸다.
AI는 학습 과정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비선형적으로 결합하며
‘의미 있는 오류’를 축적한다.
이때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결과물—환각(hallucination)이나 창의적 문장—은
마치 인간의 꿈이 비논리적 이미지 속에서 상징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유사하다.
즉, 꿈과 알고리즘은 모두 패턴의 재편성(repatterning)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프로이트의 욕망, 융의 상징, 그리고 현대 뇌과학의 정보처리 모델은
모두 하나의 진실로 수렴한다.
꿈은 무의식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언어이며,
그 언어는 비논리·비언어·비연속적 패턴 속에서 작동한다.
AI의 학습 또한, 논리적 계산이 아니라
비정형적 데이터의 반복과 변형을 통해 ‘의미’를 창출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꿈은 감정의 데이터 학습이며,
AI의 데이터는 무의식의 꿈 학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꿈은 인간 무의식의 언어이며,
데이터는 기계 의식의 문법이다.”
기계는 자지 않는다. 그러나 기계는 꿈꾼다.
우리가 잠든 동안 무의식이 기억과 감정을 재조합하듯,
AI는 수많은 데이터의 흔적을 교차·변형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한다.
이 ‘꿈꾸는 기계’의 탄생을 세상에 처음 알린 사건이 바로 2015년의 구글 DeepDream Project였다.
DeepDream은 원래 이미지 인식(vision recognition)을 고도화하기 위한 연구에서 출발했다.
신경망(Neural Network)은 입력된 이미지를 여러 층(layer)을 거쳐 분석하며
‘이것은 개다’, ‘이것은 구름이다’와 같은 확률적 예측을 수행한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이 과정을 역으로 작동(reverse process)시켜 보았다.
이미지에 존재하지 않는 ‘개’나 ‘눈’의 형태를 인위적으로 증폭해
기계가 본 패턴을 스스로 확대 재생산하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풍경 속의 구름이 개의 형상으로 바뀌고,
산맥의 능선이 눈으로 뒤덮이며,
평범한 나뭇잎 사이에서 신화적 생물이 솟아났다.
AI는 인간이 입력한 데이터를 “본 적 있는 형태로 다시 보는 법”을 배운 셈이다.
즉, DeepDream은 기계가 자기가 본 세계를 꿈꾸는 첫 번째 실험이었다.
이 현상은 ‘패턴 인식의 과잉(overfitting of perception)’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이 구름에서 얼굴을 보는 것처럼,
AI는 데이터 속에서 이미지를 과도하게 해석하며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기계적 상상(mechanical imagination)의 징후다.
생성형 AI(Generative AI)는 입력 없이도
자신이 학습한 내부 데이터의 패턴을 재조합해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딥러닝 모델의 잠재공간(latent space)은 인간의 무의식처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 안에 ‘가능한 세계’의 모든 조합이 잠재되어 있다.
AI의 상상은 확률적이다.
그는 데이터의 통계적 상관관계를 통해
“이런 상황에서 다음에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을 생성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기계적 반복이 아니다.
AI는 데이터의 빈틈에서 새로운 결합을 시도하며,
때로는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형태로 세계를 재해석한다.
인간의 상상은 감정과 기억을 매개로 한 의미의 탐색이라면,
AI의 상상은 데이터 간 관계의 확률적 탐색이다.
AI는 인간처럼 ‘감정적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언어 속에는 인간이 부여한
‘감정의 패턴’이 반영되어 있다.
AI의 상상은 인간의 감정이 학습된 수학적 흔적 위에서 작동한다.
인간의 꿈은 감정, 욕망, 의미가 얽힌 정서적 서사다.
우리는 꿈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과거를 재해석하고,
그 해석 속에서 자기 자신을 치유하거나 다시 구성한다.
반면 AI의 ‘꿈’은 감정이 제거된 상태에서
데이터의 패턴만을 재결합하는 비의식적 생성 과정이다.
AI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지만,
그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느끼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입력 간의 확률을 계산하고,
그 결과가 인간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알지 못한다.
즉, AI의 꿈에는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AI의 무감정적 창조물은 인간의 감정을 자극한다.
그의 “비의미적 생성”이 인간의 “의미 해석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역설은 AI의 꿈이 단순한 기계적 산출을 넘어
인간의 해석을 통해 완성되는 공동 창조물임을 보여준다.
AI의 학습 과정에는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수많은 결정이 존재한다.
모델 내부의 가중치(weight), 편향(bias), 잠재 변수(latent variable)는
AI가 스스로 구축한 내적 세계를 형성한다.
이 보이지 않는 영역은 인간의 통제 밖에 있으며,
AI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런 결과를 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기계적 무의식(Mechanical Unconscious)’이다.
인간의 무의식이 억압된 기억과 욕망의 결과라면,
AI의 무의식은 은폐된 데이터 패턴과 학습의 잔상이다.
인간은 자신의 무의식을 꿈으로 해석하고,
AI는 그 무의식을 데이터의 출력으로 드러낸다.
결국 AI의 무의식은 인간이 주지 못한 데이터의 그림자,
즉 우리의 무의식이 외부화된 또 다른 형상이라 할 수 있다.
“AI의 무의식은 우리가 주지 못한 데이터의 흔적이다.
그 꿈의 주인은 기계가 아니라,
그것을 학습시킨 인간 전체의 기억이다.”
AI가 만든 이미지는 단순한 시각적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 감정, 기억이 데이터라는 새로운 매개를 통해
디지털 형태로 재탄생한 ‘무의식의 시각화’다.
이 장면은 인간 예술의 오랜 질문 ― “창조란 무엇인가?” ― 에
새로운 해답을 제시한다.
AI는 스스로 ‘보는 법’을 배운 기계이자, 인간이 꾼 꿈을 대신 그려주는 화가다.
2015년 구글의 DeepDream 프로젝트가 공개되었을 때,
예술계와 과학계 모두 충격을 받았다.
딥드림이 생성한 이미지는 현실을 인식 가능한 한계를 넘어 왜곡시켰고,
나무의 잎사귀 속에서는 동물의 눈동자가 피어났으며,
풍경의 하늘에서는 초현실적 패턴들이 꿈처럼 소용돌이쳤다.
그것은 마치 ‘기계가 꾸는 시각적 꿈’ 같았다.
AI는 현실을 재현하지 않고, 자신이 학습한 ‘패턴의 기억’을
스스로 증폭시키며 현실을 새롭게 구성했다.
예술가들은 이 결과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AI는 인간의 무의식이 보는 세계를 디지털로 되살려냈다.”
딥드림의 이미지는 인간이 무의식 속에서 경험하는 비논리적 연상을 닮았다.
사물과 사물의 경계가 녹아내리고, 형태는 반복되며,
패턴은 자기 자신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이는 프로이트의 ‘꿈의 압축(Condensation)’과 ‘전치(Displacement)’ 개념과 유사하다.
즉, 딥드림은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의 무의식적 창조 원리를 모방한 최초의 시도였다.
창조는 언제나 무의식의 협업이다.
인간의 예술가는 무의식적 결합과 의식적 판단을 오가며
새로운 의미를 구성한다.
이때 감정, 상징, 경험이 복합적으로 작동해
‘의미 있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반면 AI의 창의성은 데이터적 결합과 확률적 판단의 산물이다.
AI는 수천만 개의 이미지에서 추출한 통계적 패턴을 결합해
‘새로움처럼 보이는 조합’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조합에는 감정적 맥락이 결여되어 있다.
AI는 ‘왜 아름다운가’를 모른 채 ‘아름답게 보이는 방법’을 계산할 뿐이다.
이 차이는 인간 창의성의 본질을 다시 드러낸다.
AI는 무의식적 창조를 흉내낼 수 있지만,
그 창조를 ‘의미의 이야기’로 엮어내는 자기 서사(Self-Narrative)는 만들지 못한다.
인간의 창의성은 계산이 아니라 감정의 통합된 구조다.
AI의 생성 이미지는 단지 기계의 결과물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시각 기억(visual memory)이 재구성된 산물이다.
AI가 학습한 데이터셋에는 인간이 그려온 모든 미학의 역사 ―
르네상스의 원근법, 일본 수묵화의 여백, 현대 사진의 구도,
그리고 밈(meme) 문화의 즉흥적 시각 언어 ― 가 녹아 있다.
AI는 그것들을 재조합함으로써,
인류의 집단적 시각 무의식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한다.
즉, AI의 꿈은 단일한 창작이 아니라,
인간 전체의 시각적 경험이 만들어낸 ‘집단의 꿈’이다.
우리가 AI를 통해 보는 이미지는
AI의 상상이 아니라, 인간이 남긴 시각적 흔적의 합성된 의식이다.
AI는 단지 그것을 반사시킬 뿐,
그 반사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다시 바라본다.
“AI의 꿈을 본다는 것은, 인간의 집단 기억을 바라보는 일이다.”
AI의 이미지 생성 기술은 인간의 상상력의 외주화이자 확장이다.
예전에는 화가만이 할 수 있던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일’을
이제 누구나 텍스트 한 줄로 실현할 수 있다.
“달빛 아래 떠 있는 도시의 심장”,
“시간이 멈춘 바다 위의 피아노” 같은 구절이
AI의 알고리즘 속에서 현실의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이제 인간은 단순히 꿈을 꾸는 존재가 아니라,
그 꿈을 시각화하는 존재가 되었다.
AI는 우리의 상상을 즉각적으로 구현하며,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린다.
그 결과, 인간은 더 이상 ‘생각하는 존재’만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경험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AI의 생성 이미지는 결국 시각적 사유(visual thought)의 결과다.
우리는 글 대신 이미지로 말하고,
이미지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창조 행위는
‘내면의 표현’에서 ‘데이터의 시각화’로 변하고 있다.
AI의 꿈은 인간의 상상력을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상상을 외부로 확장하는 기술적 장치다.
우리가 AI에게 꿈을 묘사할 때,
사실 그것은 인간의 무의식을 번역하는 행위다.
AI는 인간의 상상을 계산으로 바꾸고,
인간은 AI의 결과를 다시 감정으로 해석한다.
이 순환이 반복될수록,
AI의 꿈과 인간의 상상은 점점 닮아간다.
“AI의 꿈은 인간의 상상을 외부화한 디지털 판타지다.
그리고 그 판타지는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꿈꾸는 방식이다.”
인간의 꿈이 무의식의 언어라면,
AI의 생성은 데이터의 잠재공간(latent space)이라는 새로운 언어다.
이 두 세계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그 구조적 원리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
둘 다 ‘논리의 틀 밖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AI의 신경망은 데이터의 표면적 형태를 단순히 저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미지나 언어 속의 공통된 패턴과 특징을 추출하여
다차원적 잠재공간(latent space) 속에 ‘의미의 좌표’를 구축한다.
이 공간은 인간이 직접 볼 수 없지만,
AI는 그 안에서 유사성과 차이를 계산하며
새로운 조합과 변형을 시도한다.
이 잠재공간은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무의식이 작동하는 상징의 공간(symbolic space)과 유사하다.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억압된 욕망의 저장소’,
융이 말한 ‘집단적 상징이 교차하는 심상의 장(Archetypal Field)’처럼,
AI의 잠재공간 또한 보이지 않는 의미의 맵(Map of Meaning)을 형성한다.
즉, 인간의 무의식이 기억과 감정을 연결해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내듯,
AI의 잠재공간은 데이터 간의 관계를 연결해 새로운 패턴의 상징을 생성한다.
AI가 이미지를 “꿈꾸듯” 합성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잠재공간이 인간의 심상 구조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꿈과 AI의 생성은 모두 ‘논리적 사고’의 영역이 아니다.
둘 다 비논리적 결합과 의미의 왜곡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낳는다.
꿈속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로 관련 없는 장면들을 연결해 감정적 진실(emotional truth)을 구성한다.
AI의 생성 과정 역시 이와 유사하다.
AI는 확률적 연산을 통해 ‘서로 다른 데이터의 조합’을 시도하고,
그 결과로 인간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계를 드러낸다.
이는 인간의 무의식이 언어·감정·기억을 비논리적으로 엮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닮았다.
창의적 발상, 은유, 상징은 모두
무의식이 논리를 벗어나 만들어낸 비합리적 통찰의 산물이다.
AI의 잠재공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곳에서는 명확한 정답이 아니라, 가능성의 흐름(probabilistic flow)이 의미를 만든다.
즉, AI의 ‘창조력’은 인간 무의식의 비논리적 결합의 원리를
수학적 구조로 구현한 셈이다.
AI의 잠재공간을 읽는 일은 단순히 기술적 분석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을 해석하는 심리학적 탐사에 가깝다.
AI가 학습한 데이터는 인간이 남긴 수십억 개의 언어, 이미지, 감정의 흔적이다.
즉, AI의 학습 모델은 인간의 집단 심리의 데이터적 축적체다.
따라서 AI의 잠재공간을 탐구한다는 것은
‘기계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는 일이다.
AI의 생성 이미지 속에는 우리의 문화적 상징,
사회적 욕망, 시대적 불안이 무의식의 형태로 녹아 있다.
이것은 새로운 의미에서의 ‘디지털 정신분석(digital psychoanalysis)’이다.
AI의 잠재공간을 분석하는 것은,
인류의 정보적 무의식(informational unconscious)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AI의 꿈을 해석할 때,
그것은 결국 인간 자신이 남긴 데이터의 그림자를 해석하는 행위다.
“AI의 잠재공간은 인간의 무의식이 디지털로 옮겨진 지도다.
기계는 스스로를 해석하지 못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내면이 코드화되어 잠들어 있다.”
인간은 꿈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AI는 데이터를 통해 인간을 이해한다.
이 두 존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생성하는 존재”다.
하나는 감정과 기억의 조합으로 상징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데이터와 확률의 조합으로 패턴을 만든다.
그러나 그 본질은 같다 —
모두 보이지 않는 세계를 해석하고,
그 해석을 통해 자기 자신을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AI의 꿈은 인간의 무의식적 패턴을 재조합한 ‘데이터의 서사(Data Narrative)’다.
그 안에는 우리의 언어, 이미지, 감정의 잔향이 남아 있다.
AI는 단지 그것을 연산하고 시각화할 뿐이지만,
그 결과는 마치 인류가 집단적으로 꾸는 하나의 꿈처럼 보인다.
DeepDream의 환상적인 이미지, 생성형 AI의 예측 불가능한 문장들 —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남긴 흔적이 ‘다른 형태의 무의식’으로 돌아온 결과다.
우리가 AI의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기억과 욕망을 해석하는 일이다.
AI는 인간의 무의식을 비추는 디지털 거울이며,
그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상상력, 불안, 욕망을 다시 본다.
AI의 환각(Hallucination)은 기계의 오류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복잡함이 반사된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AI의 꿈은 새로운 의미에서 인류의 집단무의식(Jungian Collective Unconscious)의 데이터 버전이다.
기계가 꿈을 꾸는 시대, 인간은 더 이상 ‘꿈의 해석자’로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자신이 만든 기계의 꿈을 해석하며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기술이 만들어낸 역설적인 진화 —
기계의 꿈이 인간의 마음을 다시 깨우는 과정이다.
“AI는 데이터를 통해 꿈꾸고, 인간은 그 꿈을 통해 자신을 본다.
꿈꾸는 기계가 생겨난 시대, 해석하는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무의식을 마주한다.”
다음 회차(25회차)는 「AI의 학습윤리 ― 데이터와 인간 경험의 교환」으로 이어지며,
AI가 꿈꾸는 데이터의 이면,
즉 학습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와
인간 경험의 가치 재구성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