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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빵 Mar 30. 2022

기필코

생계형 취미와 인생 취미


매일 아침마다 그녀는 읊조린다.

‘기필코... 오늘은 기필코’

일터에 도착한 그녀는 카페안의 조명을 켜지도 않은 채 커피머신을 지나쳐 넓은 사각형 스테인레스 조리대로 향한다. 그리고 한 쪽 귀퉁이에 키보드 일체형 아이패드를 열어둔다. 언제라도 두 세 단락 정도는 타이핑 할 수 있게 말이다. 금세 잠금 화면으로 바뀔 검은 바탕을 예감한 채 오픈 준비를 시작한다. 언제라도 뭔가 떠오르면 바로 쓸 수 있도록.

정오엔 카페인 충전을 하러 온 손님들로 잠시 북적인다. 그녀는 절도있는 동작으로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서른 번 쯤 컵에 얼음을 퍼 담는다. 그들이 머물고 가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싱크볼에 쌓인 컵을 설거지를 하고 나면 오후 3시가 되고 그녀는 그때 한번 아이패드의 안녕을 확인한다. 열심히 글을 쓰겠다며 거금을 들인 그녀의 키보드는 여러 성능을 탑재해서인지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는다. 단지 열어놨을 뿐인데 42%라니. 충전기를 꽂아 놓은 다음 다시 일을 한다.

한 차례 바쁜 시간이 지났으니 드문드문 오는 손님을 맞으며 그녀는 디저트를 만든다. 휘핑기로 달걀을 부풀리며 베이킹의 세계로 몰입한다. 그리고는 저녁 시간이 된다. 마감 정리를 앞둔 그녀는 아이패드 화면에 두 줄만 써 있는 문장을 보며(문장이면 다행, 단어만 나열되어 있기도 함) ‘글렀다’고 생각한다. 머쓱해진 마음으로 인터넷 국어사전 속 ‘글렀다’의 의미를 검색해 본다. 그녀가 자주 되뇌던 표현이 네이버에서는 서운하다 싶을 정도로 간략하다. 그녀가 생각하는 글렀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그 주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으나 현재는 어려운 것으로 보임. (글을 쓸 수 있는)확률이 0%는 아님, 단지 늦었을 뿐임. 따라서 오늘은 글렀음. 단,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 억지로라도 짜내면 할 수 있음.(게다가 아이패드 배터리도 100% 완충)

일주일 중에 적어도 세 번은 기필코를 내세워 결연한 다짐을 한다. 사실 이 기필코는 기한이 배제된 의지 표명이다. 그런 그녀의 의지를 더더욱 먼 미래로 이동시키는 것은 바로 베이킹이다. 레몬 모양의 틀에 구워낸 레몬 마들렌이라던가 초콜렛이 주르륵 흐르는 모양으로 굳혀 장식한 케이크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피로하지만 무척 즐겁기도 하다. 카페에서 커피와 곁들일 소소한 디저트를 만들어 보는 게 목적이 있는데 만들다 보니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카페 근처엔 산책하는 노인과 노령견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세대 주택과 드문드문 높지 않은 빌라가 있고 1인 가구와 주인집 할머니,할아버지가 많은 동네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정겨운 동네 풍경은 아니다. 회색의 높은 건물이 늘어나고 있고 차와 보행자가 다니는 길이 구분없이 아스팔트로 되어있다. 큰 도로로 이어지는 길이라 차가 많이 다녀 카페 앞에 내놓은 의자엔 미세먼지가 없는 날에도 새카만 먼지가 앉는다. 한마디로 최적의 카페 상권이 아니라는 것이다. C급 상권의 카페를 운영하는 그녀로선 뭐든 해봐야했다. 디저트가 하나씩 늘어 날수록 손님들이 머무는 시간도 늘어났다. 디저트 진열대 앞에서 달콤한 고민에 빠진 손님의 모습을 보면 그녀는 몹시 뿌듯했다.

 베이킹을 만나기 훨씬 전부터 글쓰기는 그녀의 즐거운 취미였다. 그렇다고 완성된 글이 많은 것은 아니다. 대체로 시도하다가 잊혀지거나 잃어버리기 일쑤다. 일기마저도 쓰다만 것들이 수두룩하다. 어쩌면 글을 쓰는 것이 아닌 ‘쓰고 싶어 하는 것’이 그녀의 취미일 수도 있다. 언젠가는 완성이 될 거라는 낙관이 지금 그녀의 글쓰기 생활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는 현재 불성실한 취미고 오로지 그녀 자신만 기쁘고 웃기며 신기루 같은 성취감을 동반한 비생산적인 활동이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누군가를 위로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글로서 가능할 지 의문이지만 그녀의 성격이 긍적적이라 다행이다.

그녀는 정말이지 어떤 글이든 완성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몸은 달걀을 풀고 밀가루를 체치고 있다. 글은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단지 글씨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아름답거나 화려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상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마감이 정해져 있지 않는 한 무기한이다. 이러한 무기한 성이 그녀로 하여금 기필코를 읊조리게 한다. 그녀는 작가가 되고 싶다. 어떤 이야기를 읽고 그 속에서 마주하는 생각들이 뜻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카페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나 특별하게 느껴졌던 순간을 글로서 이야기 하고싶다. 예를 들면 하루에 한번씩 꼭 오는 노부부 라던가, 베이킹 파우더와 베이킹 소다를 헷갈려 실패한 마들렌 같은 얘기들 말이다. 바로 오늘이 마들렌을 실패한 날이다. 너무 뚱뚱해진 마들렌을 마주한 그녀의 체력은 0%다. 오늘도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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