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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kim Aug 19. 2021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하루하루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바둑판 한편에 견고한 집을 짓는다. 웬일인지 상대도 건들지 않는다. 잘 지어지고 있는 집을 보고 있노라면 미소를 숨길 수가 없다. 상대가 어디 두는지 눈길로 보고 있긴 하지만, 이미 흡족해진 마음이 눈길을 거두게 한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내 눈치를 보는 시점이 오는데, 그것은 내가 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점짜리 집을 견고하게 짓느라 대마를 날려 먹은 것이다. 상대방은 미안함을 담아 멋쩍게 웃고, 그때가 되어서야 내 집의 견고함이 초라해진다.

 

내 뜻대로 살아지는 인생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숱하게 들어왔다.  

내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축복이다.’는 말은 그 깨달음을 아직 얻지 못한 나에겐 폭력적일 뿐이었다. 

눈물을 몇 번 흘리고 나서야 내 뜻대로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되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성장해 나가면서 장래희망 대신 커리어, 커리어 패스 설계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력서에 추가할 수 있는 있는 무언가가 생기는 것이 뿌듯했고, 그래서 그런 목표를 연간 계획으로 잡아 대부분 달성해냈다.

정성적인 내용을 정량적으로, 과정을 결과 중심적으로 바꾸어서 이야기하는 커뮤니케이션도 많이 배웠다. 나도 점차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더 편안해졌다. 인턴 면접을 면접관으로 들어갔을 때도 성실함이 장점이라는 지원자분에게 학점이 몇 점인지 물었고, 이전 인턴 한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지원자분에게 인턴 기간 연장이나 정규직 연장 제안을 받았는지 물었다. 정량적이고 결과 중심적인 사고는 나에게 부족했던 부분이라 그런지 더 빠르고 재미있게 학습해 나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바둑판에서의 실수처럼 무언가에 지나치게 몰두함에 따라 시야가 좁아지고 있었다. 내 뜻의 범위와 일어나는 일에 대한 해석이 얕아지고, 그래서 내 뜻 같지 않은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내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을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필요하다. 동시에 내 뜻에 무엇을 성취했는가 뿐만 아니라 내 생각과 마음은 넓어지고 있는지, 올해 어떤 결과를 만들고 싶은지와 함께 어떤 욕심을 더 내려놓고 싶은지도 함께 담아내야 한다. 

 

삶의 그래프는 선형적, 비선형적으로 나뉘지 않고, N차원의 그래프로 입체적이다. 할머니께서 전화를 끊을 때마다 “힘들어도 감사로 살아야 쓴다. 할머니도 그렇게 살려고 애쓴다.”라고만 말씀하시는 이유가 어쩌면 그런 이유일 수도 있다. 다른 바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하게 삶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깨닫고도 무너지는 날이 내일이나 모레 오겠지만, 창문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주는 오늘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글은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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