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dinary kim Sep 07. 2021

강인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파친코 줄거리/결말 스포)

파친코를 통해 본 삶의 강인함



오랜만에 공원에서 아는 분을 만났다. 이야기하다 보니 딸 픽업을 가야 된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통 와있었다. 딸에게 10분 내로 가겠다고 전화를 하고 부랴부랴 학교에 도착했다. 딸은 처음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내 걱정을 했다. 아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늦었다고 이실직고하니 딸은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짜증을 냈다. 시간은 확인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전화라도 받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며칠 전 식사를 함께한 한 사모님의 이야기였다. 그녀에게 딸에 대한 서운함은 없었다. 변명도 없었다. 사모님은 컵에 핸드폰을 기대어 두고 아이 픽업 시간을 중간중간 확인했다. 


소설 파친코에는 1910년부터 1989년까지 시대와 민족과 개인적인 어려움에 빠진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자신의 인생을 걸어서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한 이삭, 집안은 남자가 먹여 살려야 한다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집을 산 요셉, 평범한 일본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 명문대에 진학한 노아, 공부에 흥미가 없어 파친코 사업을 해 큰 부자가 된 모자수, 미국 명문대에서 공부하고, 졸업한 이후에 글로벌 금융회사에 취업한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이 있다. 


이들은 이상을 가지고 있었고,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다. 이삭은 삶의 모든 결정에 있어 성경을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떠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아비 없는 자식을 낳게 될 하숙집의 여자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했고, 그녀와 결혼하는 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여겼다. 요셉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가 일하지 않아도 되는 가정형편을 만드는 것이었다. 자신이 경제적인 활동을 못 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아내가 일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노아는 실력을 갖추는 방식으로 삶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의 모든 규칙을 지켰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아내에게도 조선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모자수는 부자가 되면 차별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사업을 크게 운영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아들은 차별받는 신세를 벗어날 수 있도록 교육만이 살길이라고 아들에게 되새겨왔다. 


목표 지향적인 태도가 만들어 낸 동력으로 이삭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요셉은 더 나은 벌이를 위해 오사카에서 나가사키로, 노아는 오사카에서 동경으로, 솔로몬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모자수는 사업의 성공으로 가게를 늘려갔다. 그들의 에너지가 컸기 때문에 변화를 만들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들은 이동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꽤 그것은 상향적 이동이었다.


한편 이 이야기에 시작점은 하숙집을 운영하여 아빠 없이 자라나는 딸을 구김 없이 키운 양진이다. 그녀의 딸 선자는 유부남인지 모른 채, 유부남의 아이를 갖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지만 아이가 아버지 없이 자라는 것만이라도 막고 싶어 노아와 결혼했다. 그리고 남편이 경찰에 끌려가게 되자 김치와 장아찌, 과자를 팔아 생계를 꾸려나갔다. 요셉의 아내, 경희는 아이를 못 갖는 것에 평생 아쉬워하면서도 조카와 피도 섞이지 않은 동서의 어머니를 살뜰히 보살폈다.


그들은 이상과 한계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자신들이 어려움을 겪는 원인도, 여성으로, 조선인으로 차별받는 현실도, 그 현실을 뛰어넘고 싶다는 생각도 오래 하지 않았다. 무엇을 이룰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굶지 않을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이들이 가진 일상 중심적 에너지는 더 나쁜 상황으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삶에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양진의 남편은 선자가 열세 살이 되던 날에 세상을 떠났고,. 양진은 다음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여느 때처럼 하숙인들의 밥을 준비했다. 선자가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간 것은 그것이 배 속의 아이를 아빠 없는 아이로 키우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경희는 남편이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갈등을 피하면서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집에서 반찬을 만들었고, 선자가 나가서 팔았다. 


이삭은 신사 참배 문제로 일본 경찰에 잡혀가 고문을 받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지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요셉은 집안을 이끌려는 책임감 강한 사람이었으나, 동생이 죽은 슬픔과 원폭 피해를 입은 요셉은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도움만 받는 처지가 되어 괴로워하다 죽음을 맞았다. 조선인이라는 것도 숨기고 일본인 아내와 결혼한 노아는 조선인이라는 것이 밝혀질 상황이 놓이자 자살을 택했다. 큰 부자가 된 모자수는 아들만큼은 조선인의 한계를 뛰어넘길 바랐지만, 그 아들 솔로몬은 결국 글로벌 금융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돌아와 파친코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솔로몬은 미국에서마저 조선인으로서 불이익을 받자 더 이상 미련 없이 미국을 떠난 것이다. 


이들은 변화를 만들려고 했고, 또 변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결국 목표만을 향해 달리다가 죽거나 죽음을 택했거나, 인생을 걸고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희망이 좌절됨을 느꼈다.


그들 곁에 있는 그들의 가족 양진과 선자와 경희가 수많은 굴곡 가운데서도 생(生)을 유지했다. 이 시대에 여성인 양진, 선자, 경희는 남성들보다 더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었고, 그 상황에서 생계를 이끌면서 그 취약함을 여실히 느꼈을 것이다. 아비 없는 아이를 여자 혼자 키우는 것은 첩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고, 시장 좌판에서 여자가 물건을 파는 것과 여자가 전당포에 가는 일조차도 눈초리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차별받고, 비참한 처지를 마음에 새기지 않았다. 파친코 게임처럼 예상할 수 없었던 인생의 풍파를 그대로 맞았다.


또한 남편이 죽고, 아들이 죽는 아픔을 겪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밥을 지었고, 남은 가족들을 챙겼다. 나이 든 양진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시간에 맞춰 트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가족의 생명줄이 되었다.


긴 이야기는 머리가 흰 선자가 이삭의 무덤을 찾아가고, 아들들의 사진이 담긴 열쇠고리를 묘석 근처에 파서 넣고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 경희가 기다리고 있다.”는 마지막 말로 끝이 난다. 슬픔과 좌절, 아쉬움과 후회를 묻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삶이었던 것이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이 책의 첫 줄에 담긴 삶의 강인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저자는 강인함이 역사의 풍파 속에 죽음을 맞이하고, 이상이 좌절되었지만 한 때 인생을 걸어 도전했던 이들의 목표 지향적 삶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이상도, 목표도 없었지만 삶에 홍수가 밀어닥치지 않도록 매일 벽돌에 진흙을 덧바른 일상 중심적 삶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질문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아주 짧은 소설] 오늘도 인사를 건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