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그 뒤에는 별로 적을 만한 것이 없었다. 기차를 탈 때 필요한 먹을 거리를 슈퍼에서 좀 구입하고, 아무 생각 없이 역으로 돌아갔다. 걸어서. 이미 역까지 가는 골목은 약 5번 정도를 왕복했었다. 버스를 타지 않아도 역까지 자동으로 발걸음은 움직였고, 딱히 사진기를 들 생각은 들지 않았다. 거리의 모습은 눈 안에 충분히 담겨 있었고, 지금 필요한 것은 정리할 시간일 뿐이었다. 지친 몸은 어제와 같은 의자 위에 얹어졌다. 그곳에서 머릿 속의 글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크라스나야르스크에서 남은 시간은 금세 불타 없어졌다. 쳇바퀴를 돌릴 준비가 끝난 듯, 기차는 시끄럽게도 선로와의 마찰음을 내며 승객들을 재촉하였다. 여독에 찌든 유학생을 태운 기차는 언제나와 같은 속도로 이르쿠츠크로 출발했다.
디지털 카메라를 켜고, 이틀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둘러 보았다.
특이할 것은 없었다. 모자란 손놀림으로 중요한 포인트만을 간신히 담아 놓은 사진들은 마치 증명사진처럼 그 외관만을 비추고 있었다. 시내의 건물 양식은 러시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건물들이었고, 이 곳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관광지들도 모두 다른 도시에 있는 것들이었다.
다만, 그 곳에 있었기에 특별했다. 예배당은 그 날 따라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던 눈밭 위에 있었기에 특별했다. 댐은 아무나 올라갈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특별했다. 그리고, 그 곳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다. 여행의 매력은 젖은 모래 위에 반짝이는 햇볕과 같다. 파도는 언제나 백사장을 적시고, 태양은 아침이면 뜨고, 저녁이면 진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변하지 않는 사실. 하지만 그 안에서 반짝이는 한순간을 눈에 담고 즐거워 하는 것은 그곳을 찾는 이만이 즐길 수 있는 특권이다. 그리고 그 파도 위에 일렁이는 아지랑이에 뛰어드는 것 역시. 그 때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즐기는 것이, 여행을 보내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아닐까.
100시간도 안되는 여정이었다. 찍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사진 속에 남은 짧은 추억은 긴 여운을 주고 있었다. 창 밖에는 어느 샌가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처음 이 곳에 닿은 그 모습처럼.
- H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