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나 이젠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아...
엄마, 아빠. 나 이젠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아. 학교 수업시간에 남자, 여자가 크면서 어떻게 변하고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는지 PPT로 보여주고 알려줘서 모두 부끄러워서 난리였어.
아이는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성(性)'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아빠와 엄마에게 한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성에 관한 이야기에 아빠와 엄마는 적잖은 당황을 한다. 30년 전 나의 학창 시절엔 그 정도까지는 알려주지 않았었는데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의 학교 그리고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지금의 세대 앞에 아빠와 엄마는 어떠한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늘 어린아이와 같았던 아들이 벌써 만 12살이 되어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몸의 변화에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고 남자인 자신이 여자들과 얼마나 다른지 알아가고 있다. 아니. 사실 내 아이는 늦게 안 것일 수 있다. 알아도 벌써 알았어야 할 것들을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겨야 해. 너의 몸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 너와 다르지만 같은 교실의 여학생들의 몸도 소중한 것이란다. 그러니 어릴 때처럼 개구쟁이처럼 험악하게 놀고 그러면 안돼, 알았지?
내가 한 말이지만 참 구시대적이고 꼰대스러운 말이다. 요즘 같은 세대에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 않은 말 같다. 나에겐 상식적인 말이지만 세대가 변한 아이에겐 다르게 들렸을 수 있다.
아이는 부쩍 멋을 부리고, 어디 가든 옷과 신발 어쩔 땐 시계와 같은 액세서리에 욕심이 많아졌다. 몇 년 전만 해도 늘 엄마가 정해준 옷을 입던 아이는 이젠 자신의 원하는 옷을 입고 신발을 싣는다. 같은 반에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는지 날이 갈수록 더욱 자신을 꾸미려 한다. 그래서 아빠와 엄마는 그러한 아이의 모습에 더욱 놀라한다.
하지만, 당연한 것이다.
아빠와 엄마는 아이의 당연한 변화에 놀라 한다. 아이가 10대에 접어들어서도 멋도 부리지 않고 이성에도 관심에 없다면 그것이 비정상적인 일이지 않겠는가. 아이의 변화는 아주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 아빠와 엄마가 겪었던 시절들의 기억들을 희미하게 남아있어 받아들이는 것이 어색할 뿐이다. 당연한 변화에 어른의 조언보다는 이해와 공감이 아이에게 좋은 것 것임을 나도 아내도 배운다. 그래서 아이의 변화에 아빠와 엄마도 더욱 어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