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그리고 경쟁의 시작... 추억들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여동생과 통화를 했다. 난 한 명뿐인 조카의 안부를 물었다. 조카의 학업이 궁금했다.
나: 하람이(조카)는 학원 몇 개 다녀?
여동생: 일곱 개 다녀.
나: 일곱 개? 그게 말이 돼? 한 달 교육비 지출도 엄청나겠는데?
여동생: 한국에서 그건 아주 일반적인 거야. 이렇게 안 하면 친구도 못 사귀고 왕따 당해.
요즘 아이들의 학업을 묻는 질문은 '학원'으로 시작한다. 지금은 방가 후 교육이 정규 교육보다 중요한 세대라 한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선 지금이 우리 세대보다 더욱 경쟁이 심해진 듯하다. 1980-90년대의 학교는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면 함께 할 수 없다고 한다.
학교 어디 다니니? 공부는 잘하고?
학창 시절 어른들을 만나면 꼭 듣는 질문이다. 학교가 어디인지 그리고 공부는 잘하는지. 그리고 난 늘 어른들에게 "그래. 공부 잘하고..."라는 덕담을 들으며 자랐다. 국민(초등)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늘 들었던 말은 '공부'다. 친구는 공부 성적과 상관없이 사귈 수 있었지만 학교 반에서는 어린 1학년 때부터 '수, 우, 미, 양, 가'로 아이들이 평가되었고 1등부터 50등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줄이 세워졌다. 오직 소수(1등과 2등)만을 위한 교육 현장이었다. 40등, 50등이 선생들에게 (알게 모르게) 불공평과 차별 그리고 은근한 폭력을 당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어린 시절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만난 어떤 담임 선생님은 성적도 낮고 내성적이었던 나의 이름을 1년이 지나도록 몰랐다. 한 반에 50명이 넘은 학생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해하기 쉽지 않은 담임선생이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그리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함께하는 우정 그리고 많은 추억들
나의 개인적인 느낌일까.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끼리는 '성적'으로 인해 왕따를 당하지 않았다. 방과 후 친구들과 학원이 아닌 놀이터, 뒷 산 그리고 작은 시냇가에서 놀았다. 함께 우르르 모여 다니며 종종 몸싸움이 있었지만 이후 서로의 어색함이 오래가진 않았다. 같은 장소에서 함께 뛰어 논다는 것은 남자아이들에겐 우정을 여자 아이들에겐 따뜻한 애정이 느껴졌다.
20대 초반. 인터넷이 막 활성화가 되던 시기. 20대에 많은 젊은이들을 가슴 뛰게 했던 '웹 사이트'가 있었다. 'l Love School' 인터넷, 핸드폰이 없던 시절 전학, 중학교 진학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헤어져야만 했다. 그 이후로 수년 동안 만나지 못한 많은 친구들. 대학생이 된 많은 친구들이 'I Love School'을 찾았다. 그곳에서 우린 5-6년 전, 10년 전 헤어졌던 친구들, 짝사랑했던 여학생, 남학생, 소꿉친구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곳으로 흩어졌던 친구들을 모두 온라인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오래전 함께 몰려다녔던 친구들, 짝사랑했던 이성 친구 등을 다시 만나며 서로 다른 삶을 보며 신기해했고 오래전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당시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오랜 과거의 추억을 나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것인 줄 몰랐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하지만,
추억은 추억일 뿐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에게 난 이런 말을 한다. 그때가 좋았다고. 컴퓨터, 게임, 인터넷이 없었지만 난 언제든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지금과 다르게 문구점에서 장난감 하나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시절이 그립다고. 나의 아이는 그러한 우리의 세대를 신기해한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나의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들으며 신기해했다.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 오래전 뛰놀던 고향에 다시 가보아도 지금은 모두 사리지고 새로운 모습에 먼가 모를 아쉬움만 있다. 추억은 오래전 경험한 시간들을 떠올리는 것이지만 그저 상상의 여행일 뿐이다. 지금은 남겨진 모습은 없고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억은 추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