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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그네 한 Jul 09. 2022

첫걸음들

이젠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음을 배운다.


나의 부모님 세대와 달리 1970-80년 이후부터 소(小) 가족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보통 한 가정에 두 자녀 많은 면 3-4 자녀가 대다수였다. 주로 농사를 지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와는 달리 나의 부모 세대들은 보통 도시로 올라가 삶을 살았기에 많은 자녀를 낳을 필요가 없었고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나 그리고 나의 세대는 확실히 부모 세대보다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다. 8-10 형제가 나눠가지던 것들을 이젠 둘 아니면 셋이서 나눠 가지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1950-60년도에 비해 경제적인 여유와 사회적 변화도 한몫했다.


공동체 안으로...


40년 전 일이지만 내가 다녔던 유치원이 어렴풋 기억난다. 가톨릭 제단의 유치원이었으며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유치원이었음에도 40-50명의 어린이들이 함께 있었다. 무서웠던 수녀님들 그리고 선생님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들은 때론 타이르거나 혼을 내며 내가 하고 싶고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을 멈추게 하였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6살, 지금은 시기가 많이 앞당겨져 2-3살이 되면 매일 일정 시간 집과 분리되어 낯선 또래의 사람들과 공동체를 배운다.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인내, 절재, 양보를 배우게 된다. 집에선 당연히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던 것을 그곳에서 함께 가져야 하고 함께 누려야 한다. 그곳에선 무엇이든 나의 것이라 주장할 수 없다.


만남


집에서 나온 아이는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된다.   만남을 선생님 그리고 친구와 함께한다. 아이는 그들을 통해 사회를 배운다. 상대방에 대한 감정(사랑, 미움 ) 알게 된다. 집에 돌아오면  만남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 ooo 좋아", "ooo 괴롭혀", "ooo선생님이 무서워" 아이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뒷담화(?)' 시작한다. 그리고 부모 역시 아이가 말할  있도록 유도한다.


  만남들은 보통 아이에겐 훗날 아름다운 추억의 장면이 된다. 그리고  만남들을 시작으로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게 한다.  어린 시절의 만남은 어른이 되고 경험할  없는 순수함과 행복함이 존재한다.  시절엔 만남이 마냥 아름답고 즐겁게 느껴진다. 그래서 점점 나이가 들며 순수함이 사라지는 만남들 가운데 아직은 순수한 마음으로 만남을 갖고 있는 자녀들 그리고 나의 오랜 시절을 보며 먼가 모를 안타까움이 밀려오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나의 자녀가 부럽다. 그리고 만남의 순수함을 갖던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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