埼玉県日高市高麗神社
실버위크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다. 굉장한 상심과 슬픔의 소용돌이가 마음을 마구 휘젓는 날이다.
주말이나 연휴가 다가오면 이 귀중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무척 고민에 빠진다. 근무 중에는 '이번에야 말로..!'라고 생각하며 온갖 계획을 세우며 월급 도둑을 자처하지만 막상 연휴 시작 전날 퇴근 무렵이 되면 일주일 내내 하기 싫던 일은 왜 이렇게 재미난 건지, 퇴근 후에는 왜 이렇게 집안일에 의욕이 생기는 건지, 오늘따라 조깅하는 몸은 왜 이렇게 가벼운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고선 뿌듯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일어나면 다음 날 오전 10시. 이번에도 또 망했다.
사실 나는 궁극의 무거운 엉덩이 인간이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자주 떠들지만 실제로는 '주둥이 여행 애호가'에 가깝다. 여행에만 시간을 모두 쏟기엔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너무 많다. 그래도 여행을 좋아한다고 떠드는 이유는 게으른 나를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휴에는 하고 싶은 공부가 많았다. 이틀 동안 웹페이지를 뒤지고 자료를 찾고 강의를 들으며 책을 펼쳐서 같은 페이지를 몇 시간 동안 노려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곧 연휴가 끝이란다. 갑자기 조바심이 들어 노려보던 책을 포기하고 훌쩍 집을 나섰다.
언젠가 한 번은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 마침 거리도 적당한 듯 해 일단 전차에 올라 타 본다. 오늘의 목적지는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고마신사(埼玉県日高市高麗神社)이다.
https://goo.gl/maps/YX8QLVB6gWnqehsGA
이름에서 짐작되듯 고구려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대학시절 담당 교수님이 이 분야에 관심이 많으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언젠가 가 보고 싶은 곳으로 나의 무의식에 스며든 곳 중 한 곳이다. 벌써 몇 년도 전의 일이니 고마신사에 관한 배경 지식이 대부분 휘발되어 인터넷 자료의 힘을 빌어 보았다.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의 아들인 약광(若光)은 666년 야마토(일본. 당시 왜)에 외교사절단의 부사로서 파견되었으나, 666년부터 시작된 나-당 연합군의 고구려 정벌로 인해 668년 고구려가 패망한 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야마토에 정착하게 된다. 도래 당시는 사가미노쿠니 오오이소(相模国大磯 현, 카나가와현 오이소쵸)에 살았었으나 716년 야마토 조정이 스루가(駿河 현, 시즈오카静岡), 가이(甲斐 현, 야마나시山梨), 사가미(相模 현, 카나가와神奈川), 가즈사/시모우사(上総/下総 현, 치바千葉), 히타치(日立 현, 이바라키茨城), 시모쓰케(下野 현, 토치기栃木)의 7개 지역에서 고구려인 1799명을 무사시(武蔵 현, 사이타마埼玉) 지역으로 이주시켜 고마군高麗郡을 창설하여 그를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고마군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출처 1 : https://komajinja.or.jp/korean-html/ (고마신사 공식 홈페이지)
출처 2 :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C%95%BD%EA%B4%91 (위키피디아 '고약광' 페이지)
야마토 조정의 영토는 나라 분지를 중심으로 교토 분지, 오사카 평야에 걸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일본 혼슈本州의 북쪽-관동, 북동지역-은 에미시라고 하는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기록을 생각하면 약광이 다스렸던 지역은 당시로선 변방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그러한 상황에서 고려왕 약광이 죽을 때까지 고마군을 잘 다스려서 그의 후손들과 그 지역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추대하여 모셔온 것이 현재의 신사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 간단한 역사적 배경이다. 고마신사는 관리자 또는 통치자로서의 약광의 업적을 기리는 성격을 가진 신사여서 그런지 "입신양명, 자손 번영, 무병장수"에 관한 소원에 효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서 일본의 저명한 정치가, 관료들이 참배를 하러 오기도 한다고 한다. (한일 관계를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매우 간단하다. 경로는 다양하지만 내가 선택한 경로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출발 -(JR中央線)-> 八王子 -(JR八高線)-> 高麗川駅
JR중앙선은 타치카와立川역을 지나면 정말 한 순간에 외곽의 분위기로 변모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녹음의 비율이 늘어나고 공기가 맑아지는 만큼 배차 간격에 주의해야 한다. 자칫하다간 벤치도 없는 작은 역에서 하염없이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있게 될지도 모른다.
전차를 타고 약 1시간 정도를 이동하면 고마가와역에 도착하게 된다. 만약 배경지식 없이 이곳에 처음 방문하게 된다면 역을 내려서는 순간 눈을 의심하게 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반겨주기 때문이다.
일본에 와서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드는 이유에는 도쿄의 지형이 한몫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항상 '뒷 산'이 존재하는 지형의 동네에 살았는데 해가 지고 뜰 때 푸근하게 안겨 보호받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뒷 산이 있는 것이 참 좋았다. 도쿄에 와서는 오르막길이 없어서 편하기는 하지만 기댈 곳 없이 툭 내던져진 느낌이 항상 내가 타지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곤 했다. 그런데 역에서 고마신사로 가는 길은 굉장히 익숙한 푸근한 느낌을 준다. 신사는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고마강(고마가와高麗川)이 흐르고 있어서 배산임수라는 풍수지리는 그 시절 고구려인들에게도 이미 정착된 상식이었을까라고 괜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보며 혼자서 빙글빙글 웃으면서 걷다 보면 깔끔하게 정돈된 아담한 신사에 도착한다.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참배하러 오는 신사여서 그런지 규모는 작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 적힌 기념식수가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입구에는 역사적 배경에 관해 적어놓은(것이라고 추정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일본 거리를 걷다 보면 생각보다 흔히 무궁화나무를 볼 수 있어서 특별히 의미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신사 내에서는 본 적이 드문 무궁화나무도 여기저기 보인다.
일본 국내 각지의 신사를 들를 때는 그때 당시에 가장 고민하는 일에 관한 오마모리(お守り 부적?)를 꼭 하나씩 사서 돌아온다. 참배는 하지 않는다. 원래 종교가 없기도 하거니와 어떤 존재에게 염원을 전한다는 그 행위가 어쩐지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 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1300여 년 전 (물론 신분적 차이로 보면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계급이었겠지만) 나와 비슷한 이방인의 처지로 타국에 정착해서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죽어서는 신으로까지 추앙받는 존재에게 솔직하게 말을 걸어 보았다. 근거는 없지만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 본전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 다음 목적지로 길을 나섰다.
신사를 나와 5분 정도 걸어가면 약광의 무덤이 있다고 알려진 쇼텐인(聖天院)이 나온다. 여기에 도착할 때쯤 되니 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한다. 점점 하늘이 노을로 물들어 가는걸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다 보니 이 마을에 더 머물고 싶어 져서 다음 이사 후보지에 조심스럽게 이름을 올려보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역으로 향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본다. 다음 이사를 할 때쯤엔 나는 어디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무사히 이방인의 삶을 마감한 약광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것은 내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숙함의 반증인 것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에 서둘러 복작복작한 도쿄로 돌아오는 열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