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관계를 향한 임순례 감독의 따듯한 시선, <리틀 포레스트>
한국사람들은 참, 밥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합니다. 인사말도 ‘밥 먹었어?’ 아니면 ‘식사하셨어요?’로 하잖아요.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도 애매한 이 ‘밥 감성’이란. 2018년, 활명수 광고에서도 한국인의 '밥'으로 전하는 마음에 대한 카피가 등장합니다.
아버지가 사회에 갓 입문한 아들에게 전화를 합니다. 무뚝뚝한 그 시절의 그 아버지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어색해 시종일관 밥만 찾아요. '밥 먹었니?'‘밥은 먹고 다니니?’ ‘밥 먹고 해라’. 그런데 아버지의 말과 동시에 자막으로 잘 지내니? 사랑한다. 보고 싶구나, 가 떠오릅니다. 광고를 기획한 사람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대단한 통찰이었어요. 따듯했고요. 활명수 광고를 하면서 이런 감성을 끌어오다니.
영화 리뷰하는데 왜 뜬금없이 밥타령이냐고요? 오늘 영화가 밥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오늘 리뷰해볼 영화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임순례 감독님의 <리틀 포레스트>입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루 종일 먹어요. 농촌 힐링 먹방이라는 별칭도 붙어있죠. 이 영화가 아쉽다고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이 영화가 너무 뻔뻔하게 농촌 판타지를 포장해 가짜 힐링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혜원(김태리)은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고, 진짜 삶과 부딪히기 위해 노력을 하는 대신 아주심기라며 도피하여 귀농했다고요. 귀농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냐? 어디서 힘든 거 다 빼고 아름답고 예쁘게 포장만 하냐, 라는 비판이 이어졌는데 음, 저는 좀 다른 생각입니다. 제가 이해한,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방향을 한번 제시해 보도록 할게요.
혜원은 취업에 실패하고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남자 친구는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자신은 떨어졌거든요.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는 속도 모르고 '존심 상해서 잠수 타러 내려왔냐'라고 핀잔을 줍니다. 그러자 수줍게 웃으며 혜원은 '배가 고파서 내려왔어.'라고 합니다. 배가 고프면 배달의 민족도 있고 쓱도 있는데 왜 배달음식도 안 되는 시골까지 내려왔을까요? 정크푸드를 멀리하고 웰빙식단을 차리자는 국민건강증진 캠페인 영화인가요?
혜원은 ‘인스턴트 음식으로 허기를 채울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삼각김밥, 편의점 도시락 같은 걸로는 배가 차지 않는다네요. 말도 안 되는 궤변이죠. 서울에서도 음식은 충분히 해 먹을 수 있잖아요. 농촌만큼은 아니겠지만 신선한 식재료는 서울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냉장고 속 재료도 모두 썩어있네요.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상징인 거 같은데.
그러니까, 이 영화는 다른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음식’을 상징으로서 가져온 겁니다. 아마 이 지점에서 영화에 대한 평가가 나뉠 것 같아요. 음식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파악하는 것.
'허기'라는 말을 듣고 <꽃게 무덤>이라는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권지예 작가의 단편인데요, 이 소설 속에서 '그녀'로 표현되는 여자는 채워지지 않는 고독을 '허기'로 표현하며 게살을 파먹어요.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꽃게였는데, 꽃게 껍데기로 무덤이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탐욕스럽게 게를 먹습니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아요. 허기, 또는 고독이요.
혜원도 그런 것 같았거든요. 그 허기가 고독처럼 느껴졌습니다. 고향에는 진짜 관계가 있는데 서울에는 진짜 관계가 없어요. 남자 친구도 자신이 진심을 담아 만든 도시락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기는 시간을 아껴야 하는 곳이고, 도시락을 만들 시간이 있으면 공부라도 한자 더 해서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둬야 합니다. 성공을 위해 시간을 아껴야 하는, 표면적인 가짜 관계들에 지쳐가던 혜원은 진짜 음식, 그러니까 진짜 관계를 찾아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혜원이 고등학생 때,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혜원이 사라진 엄마를 가장 처음으로 찾는 곳은 어디일까요? 부엌입니다. 엄마는 음식, 또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죠. 당연하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던 사람이 사라진 뒤 혜원은 홀로서기를 해야 했습니다. 홀로 관계를 만들어내야 했어요. 감독은 영화 초반 반복적으로 주방=음식=엄마를 보여주며 음식이 상징적인 의미임을 알렸습니다.
영화의 모든 음식을 관계로 치환해보면 영화는 굉장히 의미심장 해집니다. 엄마는 음식과 함께 관계를 가르칩니다. '최고의 음식은 기다림이 만든다'고도하고, 진짜 음식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줘요. 진심을 담은 달달한 사랑은 사람의 삐침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한다는 것도.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토마토 씬입니다. 혜원과 길가에서 토마토를 먹던 엄마는 꼭지를 노지에 툭 던져놔요. 그리고 말합니다. '저렇게 던져놔도 토마토는 열린다.'라고요. 하지만 여기에도 조건은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던져도 다시 싹을 틔우려면 노지에서 햇볕을 듬뿍 받고 완숙된 토마토여야 가능하답니다.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매번 토마토가 열리는 것도 아닙니다. 토마토는 비에 너무 약하니까요. 비가 계속해서 내리면 그대로 시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토마토 농사는 복불복이라고. 올해는 불복이라고 합니다. 계속되는 우울에 그녀의 마음이 시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내년을 기다려 볼 수는 있겠죠.
사랑이랑 닮았죠? 사랑을 하려면 사랑을 받아봐야 합니다. 그것도 듬뿍.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사랑을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나의 아저씨>의 지안도 그랬죠. 하지만 뒤늦게라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괜찮아요. 괜찮아질 거예요. 끝없이 내리는 장마가 토마토를 시들게 할 수도 있지만, 해는 반복되고 내년엔 또 다른 사랑의 기회가 찾아오겠죠. 복불복이긴 하지만 희망을 가지라고, 감독이 위로를 전합니다.
영화는 보고만 있어도 설레는 시골 마을의 맑고 깨끗한 풍경으로 힐링을 시도합니다. 현실을 반영해보면 그렇지 않을 거예요. 현실을 반영하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지저분한 화장실과 문을 뚫고 들어오는 한기, 어떻게 봐도 귀엽기는 어려운 곱등이와 생명을 위협하는 장수말벌, 하루 종일 치워도 먼지가 쌓이는 집구석이 나왔겠죠. 예쁘게 포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현실을 바라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가 실패하고 무너져도 물러날 곳은 있다고 가짜 위안이라도 받고 싶은 거잖아요. 농촌의 삶은 아름답고 노량진의 하루는 숨 막힌다, 이런 메시지를 주려는 게 아닐 겁니다.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취뽀에 실패했다고 해도 아직 삶은 남아있다고 하는 거예요. 막다른 골목이야! 여기서 물러나면 곱등이와 함께 처참한 삶을 살게 돼!라고 말하면, 그게 어디 힐링 영화가 되나요.
물론 그 취준생의 상황에 내몰려 있는 사람에게 '물러날 곳은 있다'같은 말을 해 봐야,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지도 몰라요. 지금 숨 막혀 죽겠는데 옆에서 염불을 외고 있으면 그 좋은 말씀이 들어오나요. 하지만 그래도 감독은 영화를 보는 2시간 만이라도 위로를 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삶, 사랑, 관계 같은 것도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고요. 사회적 성공에 몰두한 나머지 모든 것을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래서 혜원은 고시생활을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옵니다. 명품 가방이나 하와이로 떠나는 럭셔리 여행은, 그녀의 인생에 더 이상 없겠죠. 하지만 진짜 관계를 찾고 매일매일을 충만한 삶으로 채워나간다면, 작은 것에 기쁨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삶 아닐까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많은 명작들이 그렇듯, 오래 곁에 두고 천천히 음미해봐도 좋을만한 작품입니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볼 때마다 다른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영화죠. 인생의 목표를 찾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순간, 이 영화를 떠올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가 여러분을 치유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