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 수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Feb 18. 2020

가짜 인간의 진짜 사랑 이야기

각본, 음향, 영상, 연출까지 완벽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영화의 길이는 어느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세요? 한 시간 반? 두 시간? 장담하건대, 3시간이라던가 3시간 반이라고 하는 분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왜 감독들은 자꾸 긴 영화를 만드는 걸까요? 히치콕 감독님이 그만 하라고 이런 명언까지 남겨 주셨는데.


영화의 길이가 방광의 길이를 시험해서는 안된다.
-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관으로서도 손해가 막심합니다. 짧은 영화 보고 얼른 영화관이 회전이 되어야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데. 그래서 제작/배급 과정에서 2시간이 넘는 영화는 칼질을 많이 당합니다. 그래서 영화관 버전과 감독판의 평가가 뒤집히는 경우도 많죠. <왓치맨>이라던가, <킹덤 오브 헤븐> 같은 작품들. 안타깝습니다. 물론 흥행을 하고 돈을 벌어야 다음 영화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러니까,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3시간짜리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진짜 메시지는 이런 겁니다. 이건 자르면 안 되는 영화다. 이건 길이로 인한 제작사의 압박을 뚫고 개봉된 엄청난 영화다. 돈 좋아하는 제작사도 이건 차마 건들 수 없었다. 이런 건 대체로 감독이 대가의 반열에 올라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에일리언 3>를 찍었던 데이빗 핀처도 편집권 다 뺏기고 '이건 내 영화 아니다'라고 선포했죠. 그때는 신인 감독이었거든요.) 대가들은 관객들이 이거 보느라 어떤 인내가 필요할지 관심이 없어요. 진짜 보고 싶으면 화장실 참고 보던가 기저귀를 차고 가던가 하겠지 뭐, 이런 생각일까요?



하긴 그래요.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어쎔블!!!" 할 때 화장실 간 사람 본 분 계신가요? 하나도 없어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데쓰!!!!" 외치는데 팝콘 씹는 사람 있었어요? 없습니다. <다크 나이트>랑 <포드 v 페라리>도 152분이에요. 영화가 일단 겁날 정도로 길다, 하시면 저거 명작일지도 모르겠는데?라고 생각해보세요. 물론 그렇게 본 영화가 망해도 제가 그 시간 보상해 드릴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명화는 <블레이드 러너: 2049>입니다. 198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 <블레이드 러너>의 후속작이죠. 감독은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맡았다고 합니다.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와 <컨텍트>의 감독이군요?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관람을 하시려면 두 가지를 준비해 주셔야 하는데, 첫째는 방광을 비우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 (영화가 좀 깁니다) 둘째는 큰 스크린과 저음을 확실하게 잡아줄 스피커를 준비하는 겁니다. 다들 집에 영화관 정도는 있잖아요? 이 영화는 환경을 잘 갖추고 봐야 합니다. 극한의 비주얼리스트라는 드니 빌뇌브 감독과 아카데미 촬영상을 두 번이나 받은 괴물같은 영상감독 로저 디킨스가 함께했거든요. 이번에 <기생충>과 경합했던 <1917> 아시죠? 그 영화의 영상 감독이 로저 디킨스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로도 촬영상과 시각효과상을 동시에 수상했구요. 


누가 이 영화의 영상미에 도전장을 내밀까요. 출처: 블레이드 러너 2049


여기에 영화 음악의 끝판왕, 한스 짐머가 함께합니다. 와! 영화 재미없어도 그냥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작품 아닌가요? 그냥 예술작품을 감상한다 라는 생각으로 봐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당부드릴 것은 제발 폰이나 노트북으로 감상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리뷰를 위해 11인치 아이패드로 장면들을 다시 보고 있는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 감동이 돌아오지 않아요. 뭐요? 아이폰 11 맥스요? 갤럭시 노트 플러스? 안됩니다. 저는요, 비행기 엔터테인먼트에 <그래비티>가 있길래 틀고 10분 만에 잠들었습니다. 우주 체험 빼고나니 영화가 너무 지루해 지더군요. <위플래시> 보는데 번들 이어폰 끼고 카라반 드럼 독주 듣는 셈입니다. 뭐 그래도 그럭저럭 볼 수는 있겠죠. 하지만 명작을 낭비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점에서, 그냥 안 보는 편이 낫습니다. 재개봉을 기다리세요.


이 영화는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를 원작으로 합니다. 철학적인 제목이네요. 인간은 양을 세며 잠이 드니 인조인간, 복제인간인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바꾸어 말하면, 이 소설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입장을 바꾸어서 물어보지요. '당신은 무엇으로 당신을 인간이라 규정하는가?'



scene #1, 가짜와 가짜의 가짜.


K는 블레이드 러너입니다. 경찰직을 가지고 있긴 한데 사실은 레플리컨트(복제인간)이에요. 이들의 임무는 단 하나, 인간이 정해놓은 순리를 거부하고 자유를 찾아 도망친 다른 레플리컨트들을 죽이는 것. 하지만 이들은 '살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폐기(retire)라고 표현해요. 이들은 모두 유년기 없이 성인으로 '생산'되었고, 영혼이 없는 이들이기 때문에 살인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죠. 생산되었으니 폐기되는 겁니다.


레플리칸트는 껍데기를 쓰고 인간 흉내를 내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인간들에게 스킨 잡(Skin job)이라는 멸칭을 듣습니다. 그렇다면 K는? 스킨잡인 동시에 그 위장 껍데기를 벗겨내어 폐기 시키는 사람, 스키너(Skinner)입니다. (K의 아파트 문 앞에 skinner라는 단어가 적혀있죠)


어쨌든 모든 것은 다 인간의 모조품일 뿐입니다. <블레이드 러너>의 세상에서 레플리컨트는 모두 목적에 의해 생산돼요. 힘든 작업을 시킬 거라면 지성이나 애정 같은 옵션은 필요가 없으니 굳이 그렇게 생산할 필요가 없죠. 기억이 아무것도 없는 레플리컨트는 존재 자체가 무너질 수 있으니 인간이 '유사 기억'을 넣어줍니다. 자신은 분명 그것이 일어난 일이라고 믿지만 사실 조작된 기억이예요.



'윌리스'사는 유전자 조작 농업으로 크게 성공한 이후, 세력을 넓혀 레플리칸트를 생산하는 기업 '타이렐'의 모든 지적재산을 사들입니다. 그리고 직접 레플리칸트를 생산하기 시작하죠. 재미있는 것은, 이들은 인간들을 위해 레플리칸트를 생산하고 레플리칸트들을 위해서는 다시 홀로그램 인간 '조이'를 판매한다는 겁니다. 바로 이 지점부터  이 영화의 탁월함이 시작됩니다. 아니, 레플리칸트들도 성욕 해소 같은 것을 위해서는 같은 레플리칸트를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굳이 가짜의 가짜, 홀로그램이 존재한다고? 만지지도 못하는 홀로그램을 구매한다고? 왜?



영화 <기생충>이 계급을 지상과 반지하, 지하로 나눠 듯 이 영화는 계급을 인간과 복제인간, 홀로그램으로 나눈 겁니다. 그리고 이걸 계속해서 구분해서 보여줘요. 인간에서 '기억'이 빠지면 복제인간이 됩니다. 복제인간에서 만질 수 있는 '육체'를 빼버리면 홀로그램이 돼요. 관객에게 묻고 있는 거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기억과 경험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레플리칸트도 오래 살면 인간이 되겠네? 육체가 없으면 인간이 아닌가? 하츠네 미쿠는 인간이 아니에요? 이 영화가 제대로 된 결론을 지으려면 이 질문을 두 번 무너뜨려야 할 겁니다. 전작을 넘어서 가짜의 가짜까지 만들어 냈으니까요.


K/DA는 진짜라구욧!!



Scene #2, 가짜와 가짜의 가짜 사이의 진짜 사랑


홀로그램 '조이'는 자신이 경찰의 손에 들어가면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을 경찰이 볼 수 있게 된다며, 자신을 콘솔과 분리하여 휴대기기에 담아 데려가라고 K에게 말합니다. 경찰이 자신의 기억을 훑으면 K가 바로 경찰이 쫓는, 레플리칸트가 낳은 기적의 아이라는 것이 밝혀질 테니까요. K는 그러다가 휴대기기가 깨어지면 너는 완전히 죽는 거다,라고 말하지만 조이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인간처럼 죽겠다고.


조이의 죽음 이후에 K는 도시를 거닐다 거대한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조이의 광고를 봅니다. 그리고 자신을 '조'라고 불렀던 것이, 사실은 조이 안에 프로그래밍되어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K는 자신의 기억이 조작되었다는 것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조이의 말도 (조작된) 가짜였다는 것을 깨닫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랑은 가짜였을까요.


"고통은 네가 겪은 기쁨(조이)이 진짜였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Pain reminds you the joy you felt was real) 출처: 블레이드 러너 2049


저장장치가 짓밟혀 부서질 때 조이는 K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사라집니다. 어, 저는 슬펐어요. 그게 조작된 프로그래밍인지 아닌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사실 알고 보면 인간도 다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인데.

제가 남자보다 여자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것이 내 사유의 산물일까요? 내가 나의 부모님과 공통점을 공유하는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도 생각해낸 걸까요? 뭐 어느 정도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을 우리는 

'본능'이라고 부르고 그걸 굳이 '이성'과 분리해 내려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어느 정도 '본능'과 '이성'의 혼합이니까요. 그렇다면 '프로그래밍'과 '그 이후의 것'이 뒤섞인 홀로그램의 사랑을 진짜와 가짜로 나누는 것에 어떤 의미가 존재할까요? 조이는 메리에트를 질투할 수 있는 존재이고, K의 비행선이 추락했을 때는 절규하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인걸요. '사랑하게 태어난 존재의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저에게 주어진다면 '아니, 그녀가 가짜라도 그녀의 사랑은 진짜'라고 말하겠습니다.

   



Scene #3 가짜와 가짜의 가짜가 만드는 진짜


전작 <블레이드 러너>에서도 그랬듯, 이 영화에서도 이 유사 인간들이 자신의 인간성을 증명하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행동, 자기희생. 조이는 K를 감싸며 러브를 제지하다가 죽고, K는 데커드를 살리기 위해 구출하다가 죽습니다.


영화의 결론은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존재이다'로 보입니다. 이미 인간보다 훨씬 더 인간다운데, 그게 인간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거죠. 일베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가 일베충과 일반인을 구분하는 게 아니라, 일베충처럼 행동하는가 아닌가 가 일베충과 인간을 구분한다는 뜻입니다.


K와 조이는 둘 다 가짜이지만, 이들 사이의 사랑은 진짜입니다. 전작의 데커드와 레이첼의 사랑이 진짜였듯. 어차피 사랑이라는 것은 둘 사이에 존재하는 거니까. 가짜들도 진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고 알바생에게 짜증을 부리다가 알바생 뺨이라도 치면 이 폭행은 가짜 폭행입니까? 화가 난 알바생이 당신을 고소하면 가짜 기억이었으니 무효가 되요? 아니죠. 가짜 기억도 충분히 진짜 행동과 진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제발 주문 제대로 넣으시고 확실하지 않으면 손모가지 걸지 마세요. 당신의 가짜 기억에 알바는 곳통받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너나 내 안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 있을 거야.  출처: 비포 선라이즈



영화를 첫 관람할 때는 잘 몰랐는데 n차 관람 때는 많은 게 보입니다. 새퍼를 보여줄 때는 카메라를 아래부터 잡아서 물에 비친 모습부터 보여주고 (투영된 영상, 레플리칸트라는 암시) 죽은 나무 위에 얹어진, 하나의 줄기에서 뻗어 나온 두 개의 민들레 꽃을 통해 기적의 아이는 하나가 아니라 둘임을 표현합니다. 하나하나 너무 세심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인데 흥행에 참패한 것이 너무 아쉽군요.


조만간 Project: 자올 홈페이지를 통해 관람과 토론을 진행해봐야겠습니다. 흥행이 워낙 처참한지라 재개봉을 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하지만 이대로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쉬운 명작이니까요.


요즘 좋은 영화들이 왓챠에 많이 공개되고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처음 서비스를 사용할 때보다 기술적인 문제들도 잡혀가고 있는 것 같아요. 넷플릭스에 지지 말고 한국 OTT서비스의 자존심이 되어주길 기대해봅니다. 제발 언제 가능하면 <나의 아저씨> 판권좀 가져오시면 안될까요 제발... <곡성>이랑 <장화, 홍련>도...

매거진의 이전글 대한민국 사상 최고의 액션 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