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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10. 2020

안 되나요? 둘 다 사랑하면...

불륜영화 전문 리뷰어가 읽어본 JTBC 신작 드라마, 부부의 세계

불륜이란 주제는 항상 흥미롭습니다. 

원래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은 법이고, 금지된 사랑은 애달픈 법이라서요.

재미있는 점은 인류의 역사가 불륜과 바람, 질투와 배신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이죠.

인간이라는 영장류는 기본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성실하게 지키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은 듯합니다.


일부일처제를 누가 강제하지 않았는데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생명체들도 있잖아요?

인간은 틈만 나면 불륜의 기회를 찾죠. 결혼은 사실상 자연을 거스르려 하는 겁니다.


하지만 자연을 거스르는 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인간은 물리적 약육강식을 벗어나 사회규범을 만들어냈고, 이것은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해 왔으니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부일처제라는 것이 영원히 존속될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해갈, 우리 시대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입니다. 30년 후쯤에는 '그때는 일부일처제와 결혼이라는 제도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라면서 다른 형태의 가족이 탄생할지도 몰라요. 세상은 빠르게 변하니까.


어쨌든 아직 결혼이 강제력을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금지된 사랑을 하는 비운의 연인들은 괴롭습니다.

왜 인간은 두 사람을 사랑하도록 허락되어 있지 않은 거지? 왜? 어째서?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두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되는 건가요? 

자연적으로 인간은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종이 아니라면서? 이거 누가 만든 거야?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꼭 지켜야 하나?


두 사람과 동시에 사랑에 빠지는 것? 가능하지. 두 사람과 계속 사랑을 해 나가는 것? 그건 불가능해.
                                                                                           영화 <디스 민즈 워>의 대사 중


이건 사실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유전자적 차원의 일입니다. 번식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요?

인간은 사회화가 되면서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내 유전자, 내 새끼가 아닌 엉뚱한 놈의 유전자를 내가 부양할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은 엄청나게 소름 끼치는 일이에요. 뻐꾸기가 다른 새 둥지의 알을 모두 깨버리고 자신의 알을 슬그머니 갖다 놓잖아요? 혼외정사라는 건 그 가능성 때문에 터부시 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그저 유전 정보를 후대로 전달하기 위한 그릇일 뿐인가?  출처: 인터스텔라


혼외정사는 필연적으로 질투를 가져옵니다. 질투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유전자적 본능을 뛰어넘은 사람이에요. 우리 몸속에 존재하는 유전정보가 생존을 위해 부추기는 것을 무시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폴리아모리, 폴리가미를 실천하고 사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그냥 더러운 사상에 물든 쓰레기 집단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폴리아모리를 존중하고 더 발전된 사랑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톡 까놓고 얘기해서, 연애를 하고 있어도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이고 결혼을 했다고 해도 새로운 사랑이 다가오는 것을 뭐 어쩌겠습니까. 사람 마음이 그렇게 의식한 대로 움직여진다면 지구 상에 치정사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겠죠.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 이것은 죄도 뭣도 아니고 그냥 본능일 뿐입니다.


하지만 폴리아모리를 존중한다고 했지 불륜을 존중한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폴리아모리를 인정하고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결혼 제도를 받아들이고 서약과 맹세를 한다는 것은 제도권으로의 편입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맺은 맹세는 지켜야죠. 귀책사유가 상대에게 있지 않은 이상.


JTBC 신작 금토 드라마, 부부의 세계


<부부의 세계>의 이태오는 그래서 소름 끼칠 정도로 짜증 납니다. 선우와 결혼을 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하는 스윗 가이인데, 뒤에서는 다경과 놀아나며 '의무감에 선우와 섹스를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적당히 끊어내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냐, 라는 설명숙의 조언에는 '선우를 사랑하지만 다경도 사랑한다. 다경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며 조언을 무시합니다.


'사랑에 빠진 것도 죄야?'라고 태오가 절규하는데, 음. 사랑에 빠진 게 어떻게 죄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선우가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마음 아파하지 않을 신여성이라면 모를까, 자신도 '선우가 이걸 아는 순간 끝장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모습은 사랑이 아닌 소유욕이며 이기심입니다. 어떻게 사랑한다는 사람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행동을 하면서 자신의 이득만 추구할 수 있겠어요.


태오는 다경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에요. 다경이 선우와의 이혼을 요구하는데, 그녀와 섹스를 즐기면서도 선우에게 전화가 오면 사랑해라고 말하죠. 선우와 다경은 둘 다 피해자입니다. 다경은 피해자이면서도 선우에게 가서 시비를 거는 가해자의 입장도 동시에 가져가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궁극적인 쓰레기는 태오입니다. 선우가 아닌 다경을 사랑한다면 얼른 선우와 선을 긋고 다경에게 갔어야죠.


태오는 친구도 잃고 싶지 않아 그 사실을 함구해주길 요청합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자식새끼 보험에 걸린 돈까지 끌어다가 지 사업한다고, 다경에게 선물한다고 날려먹고 있는 중이죠. 얼굴 좀 반반하게 생겼다는 거 하나로 선우의 삶에 기생하는 기생충 같은 존재.


이 드라마는 불륜이라는 금지된 사랑이 담고 있는 섬세한 감정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태오를 경악스러운, 압도적인 쓰레기로 만들어놓고 이것을 하나하나 짓밟아가는 과정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거예요. 이게 사실 '재미'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극적이고 좋죠.


저도 막장드라마를 보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시청하고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조금 더 좋아하는 불륜영화는 <우리도 사랑일까> 나 <바람바람바람>, 아니면 <화양연화> 같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인 듯합니다. <부부의 세계>는 너무 쉬워요. 태오가 너무 쓰레기라서. 모든 게 완벽한 남자가 바람을 한번 폈다거나 다경을 완벽하게 떨쳐 냈다거나 했으면 선우에게도 타협의 여지가 있었을지 모르는데, 여긴 뭐 주변 사람들부터 시어머니까지 너무 완벽한 쓰레기라.


시어머니는 '잘난 네년 때문에 숨죽이고 살아온 불쌍한 아들'이라며 옹호하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아니, 와이프 돈으로 병원 가고 사업하고 있는데 그럼 같이 못나서 밥 빌어먹고 살기라도 바랬던 걸까요? 이 드라마는 정말 깔끔하게, 불륜이나 그 비슷한 것을 경험한 사람들 (그중에 특히 여성분들)을 타깃으로 공감대 형성과 처절한 복수로 대리만족을 추구할 거예요. 그리고 그건 물론 매우 재미있을 겁니다.


아직 초반부에 해당하는 이 작품이, 시작부터 숨 막히는 스피드를 보여주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기대됩니다. 과연 선우는 어떤 복수를 준비할지. 그리고 태오는 어떻게 반격할지. 단순한 파괴보다는 태오가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섬세한 복수극을 준비해줬으면 좋겠네요.


여러분은 결혼 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진짜 운명적인 사랑,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고 몸이 달아오르는 열정적인 사랑이, 이미 재만 남은 배우자와 오버랩된다면.


무슨 선택을 하건 그건 온전히 본인의 몫입니다만, 세상에 운명이란 없다는 걸 잘 기억하시고 선택했으면 좋겠네요. 새 것도 결국 헌 것이 될 거고,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그리고 만약 태오처럼 두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면, 본인이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해보시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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