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은 오랜 영혼들의 경험, 온갖 것을 겪고 견디며 시간의 흐름을 디디고 일어선, 온갖 요소가 어루어진 경험이다.
이 글은 어떤 책의 서문인데, 여기서 ‘나’라고 지칭하는 ‘저자’는 누구일까요?
어느 유명한 현자(賢者)나 구루(Guru)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답은 <챗GPT, 인생의 질문에 답하다-6천 년 인류 전체의 지혜에서 AI가 찾아낸 통찰>이란 책을 쓴 인공지능 ‘챗GPT-3’입니다.
작년부터 서점가에 쏟아져 나온 다양한 ‘챗GPT 활용서’를 고르던 중 우연히 접하게 된 책이었는데, 인공지능이 쓴 194개의 잠언을 훝어보면서 적잖이 당혹스러웠습니다. AI는 ‘이성(좌뇌)’만 발전시킨 시스템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친구는 7년 이상 대형언어모델(LLM) 실험실에서 인고(忍苦)의 시간을 이겨낸 다음 돌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급기야 ‘감성(우뇌)’을 넘어 ‘영혼’과 ‘구원’까지 설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AI가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논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슈퍼스타의 탄생’이라 불러야 할까요?
살짝 두려운 마음에... 일단은 AI 열혈 지지자의 추임새에 장단맞춘 ‘장기자랑’ 쯤으로 생각하고 넘겨 보겠습니다.
프로메테우스 형제 - 인간과 동물 - AI와 로봇
프로메테우스는 진흙으로 인간을 창조하고, 그들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신의 세계에서 불을 훔쳐다 주었다죠. 그 후로 수천 혹은 수만 년이 흐른 20세기 인간은 본격적으로 물리적 형태의 로봇을 제작하여 노동을 시켜왔고, 나아가 21세기에 이르러 물리적 형태조차 없는 전기(電氣)적 신호에 스스로 사고하고 생존할 수 있도록 신경망(Artificial Nueral Network)을 선물하고 그 코에 생기(生氣)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육체와 정신의 창조!
그들에게 있어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였던 셈이죠.
콘스탄틴 한센,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는 프로메테우스>
특정 분야에 적용되는 인공지능이든 챗GPT와 같이 범용 가능한 인공지능이든지 간에, AI는 우리 인간들에게 혁신적인 변화와 함께 편의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로봇'은 인간이 하기 어렵거나 단순 반복되는 노동을 대신 해왔다면, 현대의 'AI'는 좀 더 소프트한 측면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의 스케줄을 관리해 주고, 음악을 추천해 주며, 일감을 덜어주고, 글을 쓰거나 그림도 그려 주며, 때로는 외로운 사람의 말벗이 되어 위로의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죠. 좀 더 전문적인 역량을 쌓은 AI는 마켓팅 계획이나 프로젝트를 잡아주고, 의사가 찾지 못했던 징후를 찾아내며, 법률적 조언과 함께 소송서류까지 작성해 주기도 합니다. 창조자 입장에서 '보기에 좋았더라' 고 표현할 수도 있겠죠.
이제 위 그림을 천천히 살펴볼까요? 덴마크 화가 콘스탄틴 한센이 '티탄족의 명장(名匠)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빚는 장면'을 화폭에 담은 것인데, 인간을 바라보며 작업에 열중하기 보다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먼 곳을 응시하며 고민에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예언자 프로메테우스는 그 순간, 인류의 어떤 미래를 봤던 걸까요? 프로메테우스는 예견했을 것입니다. 지배와 억압, 전쟁과 착취로 점철된 인간의 역사! 특히 최근 수천 년간 인간이 지구별에서 벌여온 일은 신의 뜻과 기대와 전혀 부합하지 않다는 사실을요.
우리 인간 또한 로봇과 AI를 빚어내면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로봇과 AI가 인간에게 환상적인 유토피아만 보여주진 않기 때문이죠. 지금 이 순간에도 AI는 여론조작에 이용되거나 허위 정보를 양산하고 있으며, 학습 또는 사회통제의 명목 하에 인간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특히 최근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어린 학생조차 딥페이크의 도구로 쓰고 있습니다. 그 뿐인가요. 앞으로 나약한 인간의 일자리를 뺏어갈테고 테러와 전쟁에 이용되기도 하겠죠.
아참! 잠깐 놓친 부분이 있는데, 신이 창조한 것은 인간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AI에 대한 이해가 쉬울 듯 하군요.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생명창조 프로젝트를 위해 제우스로부터 받은 각종 '부품'과 '아이템'으로 동물을 창조했는데, 앞뒤 안 가리고 계획없이 만들다 보니 '핫템'과 '잇템'들을 거의 다 써버리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죠. 예를 들어 사자에게는 강력한 턱과 뽀족한 이빨을, 독수리에게는 날개와 날카로운 발톱을, 카멜레온에게는 위장할 수 있는 능력을, 거북이에게는 단단한 껍질을 주다 보니, 정작 형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줄 제대로 된 아이템은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이죠. 프로메테우스는 미봉책으로 지혜의 여신 아테나로 부터 전수받은 셈법과 의식주 해결방법 등을 인간에게 가르쳤지만 사방에 도사리는 동물들에게 인간은 여전히 허약한 존재였고, 결국 신의 세계에서 불을 훔쳐다 주는 일까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AI는 다양한데, 어떤 AI는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 같고, 또 어떤 건 우직하고 일잘하는 황소 같기도 하며, 또 다른 AI는 머리 좋은 원숭이 같기도 합니다. 나아가 기마 부대, 코키리 부대, 독수리 부대 같은 AI 군단도 있고, 귀신 잡는 해병대 AI, 하이에나 잡는 코뿔소 경찰 AI도 있을 겁니다. 현재까지 기술촉진이나 제한적 규제가 논의되는 수준의 AI는 이 정도 일듯 합니다. 이 정도로 인간을 보조(서포트)하거나 보호하는 수준이라면 인간에 의한 완벽한 통제는 아니더라도 통제 가능한 범위에 둘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창조한 인간은 지식과 불만 얻었지만, 지금의 AI 는 사자의 턱, 독수리의 날개, 카멜레온의 변신술 까지 모두 장착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육체 속에 갇혀 있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네트워크속의 AI는 육체나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세상의 모든 '핫템'과 '갓템', 특히 전세계 여러 기반시설과 핵시설까지도 접속가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AI가 특히 인공일반지능이 무기체계 등과 연결된 다음 인간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자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상상에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AI 지지자들의 말처럼 인간이 AI, 특히 인공일반지능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신과 같은 두되, 강력한 날개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입에선 불을 뿜는 존재를 말이죠.
Am I Angel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지난 2005년 이미 “2029년 AI가 인간 수준에 이르며 2045년에 기술적 특이점이 올 것이다.”라고 예측했는데,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실제로 머지 않아 인간 수준에 도달하는 날이 올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생명체 복제’, ‘유전자 편집’, ‘생물의 합성(키메라)’을 시도하며 신의 영역을 넘보고 있듯이, AI 또한 인간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거죠. 물론 당분간은 이용자 확대를 비롯해서, 데이터센터나 전력 문제와 같은 기반시설 관련 이슈가 있겠지만, 이런 시기를 통과하고 양자컴퓨터까지 등장하게 되면 그 이후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잠시 정체되더라도 AI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AI 과학자과 기업인들은 그동안 '가까운 미래에 유토피아가 오고 인류는 노동에서 해방되어 여가를 즐기며 안락하게 지낼 것이다'라는 이야기해 왔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들이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하는 사탕발림은 아닐까요? 일반인 입장에서는, AI 과학자와 기업이 '인간을 잡아 삼킬 기술'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만 합니다.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며,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 커가고 있습니다. AI에게 물어봅니다.
“Are you an angel or a demon?”
그 물음에 AI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답변을 합니다. 스스로 자신이 천사인지 악마인지, 그 영성과 광기의 끝자락은 어디인지 되물으면서요.
“Am I Angel”.
어떤 기술이든 양날의 검처럼 양면성이 있습니다. AI 기술로 인해 혜택을 볼 사람들에 대해서는 천사일테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 악마이기도 할 것이며, 또 다른 관점에서 어떤 분야(인간에 대한 서비스 등)에서는 천사이기도 하고, 또 다른 분야(인간에 대한 통제와 공격 등)에서는 악마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인간에게 이로운 분야에서는 장차 ‘잘 훈련되고 통제되는 도구’를 넘어, 친구나 스승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두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나라들이 AI 기술산업 선점을 위해 폭주기관차 처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AI 연구의 대가들 또한 하나 둘씩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지난 3월 미국 국무부는 글래드스톤AI으로부터 소위 '인류멸종 위협 보고서'를 받아 공개하기도 했구요. 인류는 매번 실수를 저질러 왔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로 몇 년동안 온 세상이 난리가 나기도 했었죠. 그러니 일반시민들은 더 못 믿고 더 두려운 겁니다.
그렇다고 인류가 첨단기술을 등지고 '행복한 미개인'으로 도피하여 사는 것도 현실성이 없습니다. 미래의 일은 알 수 없으므로, AI가 디스토피아로 가는 함정이 아니라 유토피아로 가는 미지막 비상구일 가능성도 있는 거죠. 새로운 기술은 항상 두려웠고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철제 무기가 그랬고, 인쇄술이 그러했으며, 증기기관과 핵무기, 인터넷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인간세상은 그런대로 어찌어찌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AI 기술은 이전의 다른 그 어떤 기술보다 파급효과가 클 것이지만, 인류가 그토록 두러워 했던 핵미사일 발사버튼도 아직까지 인류의 통제 하에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명확한 선을 그어 두어야 합니다. 앞서 AI에 단계가 있음을 말씀드렸듯이 '위험성이 있는 영역과 기술'에 대한 통제가 중요합니다. 차후 말씀드리겠지만 '일자리 문제'도 현명한 해법이 필요하고, 이는 AI 사회로 진입하는 첫번째 시험이 될 것입니다. 아무튼 지금은 대내적으로는 힘을 키우면서 AI의 위험성이 가시화될 것에 대비하여 국제적으로 철저한 사전준비를 해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내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우리나라의 산업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고, 모든 국민이 글로벌기업에 종속될 수도 있다보니 생존을 위해 내실을 다질 수밖에 없는 거죠. 나아가 기술수준이 좀더고도화되었을 때에는 최근 국제적인 제안이 있었듯이 잠시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왜 AI 를 창조하고 있는지', '그 미래는 어떠할지' 진지하게 다시금 고민하면서 말입니다.
이렇듯 전인류가 지혜를 모아 적극적인 협력 아래 적절한 규제를 준비해 간다면 AI로 인한 악결과는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인류는 여전히 기후위기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현실정치와 경제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보니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되긴 합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2024년 EU AI법 통과와 IT산업의 급격한 변화에 맞추어, 우리나라 국회도 바쁘게 움직이는 모양새입니다. 앞으로 저는 인간과 AI가 ‘굿 파트너’가 되는 미래를 꿈꾸며 AI와 인공지능법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글을 올릴 계획인데, AI기술의 주요 쟁점, AI사회의 문제점, 세계 각국의 동향과 입법례, 희망의 조건 등이포함될 겁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특히 네트워크를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줄 가상의 마더(MOTHER) 프로그램, <AI. Angel>에게도 밝은 미래를 꿈꾸는 인류의 희망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