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를 타는 할머니

by 한솔

벤틀리를 타는 할머니.

지난 토요일, 한 학기에 한 번 있는 대학 모임에 참석했다. 해당 모임은 연세가 80세에 가까운 선배님이 운영하는 모임인데, 그간 모두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피해왔던 대화를 하게 되었다. 계기가 된 것은 23살 막내였던 후배의 귀여운 물음 한 마디였다. “선배님, 요즘 새롭게 만나는 할아버지는 없으세요?” 그러면서 후배는 나이가 들면 실버타운에 들어가 새로운 이성을 만나는 게 오랜 로망이라고 했다. 소일거리들을 요양보호사분들이 해주시면, 남은 것은 사랑밖에 없을 테니 조건 없는 가장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늙어서 연애할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해.” 선배님은 후배를 귀엽다는 듯 꾸짖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80대 노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형제자매, 친구마저도 그 나이쯤 되니 세상을 많이 떠났다고 하셨다. 좋아하던 운동, 여행은 퇴행성 관절염으로 이제는 그만두셨다고. 무릎 뿐 아니라 피부, 눈 등 아픈 곳이 많아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 되었지만, 그래도 쇠도 이 정도 쓰면 닳텐데 80년간 사용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죽음과 나이 듦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존재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실존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나답지 않은 선택을 많이 한다. 매번 그럴 순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결정이나 진로 고민을 할 때면 죽음의 순간을 떠올린다. 그러면,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의 결정을 지지할 것인지 생각한다. 그러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보인다.


선배님은 내가 나중에 어떻게 나이 들면 좋을까 고민을 했을 때 떠오르는 이상향 같은 분이시다. 60년간 한 순간도 빠짐없이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배우자, 가족과 친구들과의 따뜻한 관계, 그리고 매일 아침 벤틀리를 타고 모시러 오는 수행비서가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 회사와 모교의 임원을 맡아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 내가 원하는 노후의 삶이었다.


이상적인 노인의 삶이라고는 해도 비가역적 노화와 같은 현실적 어려움은 아직 20대의 나에게는 막연한 불안함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선배님은 여전히 내 삶의 이상향이다. 20여 년 가까이 가난하고 힘든 형편 속에 살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챙기고, 일회적인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선배님은 삶에 너무 감사하다고 하셨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한테 상처받은 일이 많아지면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나오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랫말처럼 과연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두려울 때도 많다. 그럼에도 사람을 믿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싶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고 싶다.


모임을 마치고 앞으로 오래 살라고 하지마 라고 말하는 선배님께 입을 모아 선배님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라고 인사했다. 우리의 배웅을 받으며 할머니는 벤틀리를 타고 집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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