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적적 Oct 02. 2024

한 편의 글을 출항시키는  도선사에게

쓰는 일을 걷는 일이다.


한때 나도 젊은 피였었다. 이 말은 이제 지독하게 멀어져서 손을 흔들어도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고 싶었던 나는 몇몇 편집장들과-지금 생각하면 죄다 사기꾼들이고 시도 더럽게 후진-그의 지인들과 동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매주 금요일 7시에 모임이 있던 첫 번째 동인들과는 꽤 돈독했다 우린 세종문화회관 뒤편. 당주동 골목 술집에서 합평하였다 다들 서울에 살고 계시는 선생님들과 젊은 시인들이었다 나만 집이 부천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중동이었다     


우리는 매주 탁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어 술을 마시며 프린트해온 시를 서로 돌려 읽으며 제법 세세한 것까지 건드리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멋모르고 오셨던 몇몇 선생님들은 예쁘게 차려입고 합평에 참석했다가 민망함과 당혹감에 눈물까지 보이시다 다시는 나오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렇게 이 년 넘게 모임을 했었다     


그날 모임은 장마 한가운데 날이었고 아르헨티나에서 오신 선생님께서-나보다 20살은 많으신-참석하신 바람에 조금 늦게 헤어진 데다 숙소가 근처라고 자꾸만 손을 놓지 않으신 덕에 마지막 버스를 놓쳤다.     

비가 오기 시작했고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정확히 12시 간혹 막차가 늦는 경우가 있어 기다려보기로 한다.      

한 여자가 버스 정류장에 선다.

여기서부터 착각의 환장 파티가 시작된다. 장마철 노란 원피스 긴 생머리.

그녀도 막차를 놓쳤나 보군…. 그녀와 버스 정류장에 한참을 있었다

그때는 12시쯤 되면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았었다 갑자기 버스 정류장 앞으로 노란색 자동차가 멈춰 서더니 그녀를 태우고 사라졌다     

앉아있던 내가 벌떡 일어나 화를 내며 집까지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어버렸다. 이 년 정도 버스를 탔으니 버스 다니는 길만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이 청년은 훗날까지 이 멍청함을 지니고 용케 살아있다.     


걷기 시작한다. 버스를 타고 내다보던 길을 따라 걸었다 긴 다리를 하나 건넜고 영등포역에 다다라 하늘이 무너진 듯 비가 쏟아진다. 가방을 뒤져보니 우산이 없다 머물렀던 술집에서 가지고 나온 기억이 없다.      

양철 지붕 아래 비를 피하고 마지막 담배를 입에 문다. 라이터를 켜는 순간 불안하게 커다란 빗방울 하나가 정확히 보이더니 일어나는 불꽃과 담배 사이로 떨어진다. 라이터를 담배를 집어삼킨다. 불을 켠 가게는 한 곳도 없다.      


나는 비를 맞기로 마음먹는다. 다시 걷는다. 젖지 않은 곳이 없다 비를 오래 맞으면 비를 피하는 순간 몸이 춥다 빗속이 더 따스하다. 오류동역쯤에서 전철이 지나가는 걸 본 것 같다 나는 걸었다 역곡역이 지나고 부천역이 지나고 중동역에 도착할 즈음 한 번도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또 나는 알게 되었다 다리를 펴고 쉬었다면 다시 걸을 수 없을 거란 걸      


나는 집이 보이는 아파트 정자에 앉았다.

신발은 물이 되어있었다 모든 것은 젖었고     


금요 합평회는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자리였다 시에 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고 매주 한 편의 시를 쓰게 하는….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엄마는 밤새 뭐 하고 다니느라 거지꼴이냐고 물으셨다      

서울 시청역부터 집까지 걸어왔다고 했더니 믿지 않으셨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의 느린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나는 금요일에 다다르기 위해 시를 쓴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은 어딘가를 향하는 일이다. 그 후로 금요 합평회는 양해를 구하고 빠지게 되었다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매일 밤 합평을 한다.     


그 길을 함께 걸었던 나와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귀환하는 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