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가 누구를 신었는가

사랑과 물건, 어긋난 문장의 형태에 관하여.

by 적적

https://www.youtube.com/watch?v=snZnbp5kQCI&list=PLlPzqLiDlqjfyXPXsK4-Qi2boeiS6-6GG&index=6

플레이를 누른 뒤 볼륨을 조절하세요.



소유격은 발보다 작은 신발을 신는다.

낮 동안은 말없이 참고 걷는다. 신발의 안쪽, 얇게 발라진 가죽층이 발등의 뼈를 스치며 미세한 마찰음을 낸다. 그 소리는 옆사람에게 들리지 않지만, 소유격 내부에서는 금속이 갈리는 듯한 미묘한 울림으로 번진다. 한 걸음마다 신발 앞코가 작은 비명을 내고, 끈은 조금씩 조여든다. 마치 스스로를 좁혀가며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단어처럼, 소유격은 조금씩 자신의 살갗을 깎아 원래 크기에 맞춰지기를 강요받는다.


밤이 되면 부어오른 발가락이 더 이상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곳을 찾듯 신발을 밀어낸다. 저녁 바람이 발목을 스치면, 신발 안쪽에 갇혀 있던 열기와 축축한 땀이 한꺼번에 증발한다. 그러면 소유격은 문득, 벗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오래 붙잡아온 누군가의 이름을 손바닥에서 흘려보내듯, 조용하지만 절대적인 해방의 욕망이다. 신발을 벗는 순간, 발등의 얇은 선이 드러나고, 낮 동안 눌려 있던 자국이 연분홍빛 음영으로 남아, 숨죽인 압박의 시간을 고백한다.



소유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약간의 오차를 품고 있다.

오차는 겉보기엔 사소해 보이지만, 신발 속 모래알처럼 조금씩 내부를 긁어 상처를 만든다. 오래된 책방에서 누군가 밑줄을 그은 중고책을 산 것처럼, 이미 지나간 손길과 온기가 그 안에 남아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내 것’이라 부른다. 그렇게 겹쳐진 흔적들은 문장 사이에서 조용히 충돌하며 의미의 방향을 미묘하게 비튼다.

길 위에서 바람이 돌들을 굴리듯, 소유격은 주변의 사물과 감정을 반쯤 밀어 넣고 반쯤 끌어안는다. 정확히 어디까지가 자신의 범위인지 설명할 수 없으면서도, 경계는 뚜렷한 척한다. 손바닥에 묻은 먼지를 털면 금세 사라질 흔적처럼, 사물들은 언제든 사라져도 괜찮은 듯 보인다. 그러나 사소한 물건 하나에도 사람들은 조금씩 체온을 남기고, 그 흔적은 사물이 ‘소유된 것’이라는 감각을 조용히 일깨운다. 신발 안에서 발가락을 조심스레 움직일 때 느껴지는 가벼운 저릿함과 닮았다.



사랑은 종종 잘못된 사이즈를 신고 출발한다.

처음에는 발이 붓지 않았다고, 아직 괜찮다고 주장하며 유연해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연인의 말투가 굳어가는 순간처럼, 신발도 어느새 단단해지고, 발의 선을 자기 기준대로 재단하기 시작한다. 거리의 네온사인 아래, 신발의 그림자는 원래보다 좁게 흐르고, 연인의 그림자는 조금 넓게 번진다. 미묘한 비율의 차이가 사랑을 뒤틀린 채 유지시킨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적적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69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7화하이힐을 벗어둔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