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가 세계의 균형을 흔들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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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과거는 정확히 열두 살 즈음에 균열을 경험했다. 일기장 한 귀퉁이에 접힌 문장이 계기였다. ‘오늘도 아무도 몰랐다.’ 그 문장을 적던 날,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스스로 관형사를 붙였다. ‘조용한’, ‘사라질 듯한’, ‘분명한데 보이지 않는’. 그런 식의 단어들로 자신을 설명하며, 이름 대신 상태를 먼저 기록하는 버릇이 시작되었다.
그해 여름, 부모는 자주 싸웠다. 싸움은 연기처럼 집 안의 모든 사물을 통해 이동했다. 그녀의 옷장, 책장, 침대 시트까지도 싸움의 잔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소리들이 방 한가운데에 고여 다림질해놓은 옷처럼 눌어붙을 때, 그녀는 자신을 ‘들키지 않는 아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그 묘사는 오래도록 그녀의 스스로를 규정하는 관형이 되었다.
그녀가 ‘조용히 걸어야 한다’고 배운 건 그때였다. 걸음걸이는 존재가 남기는 소리였고, 소리가 발각되면 누군가의 감정의 칼날이 다시 번쩍일지 모른다고 믿었다. 그래서 걸음은 자연스레 가벼워졌고, 가벼움은 기척을 없앴으며, 기척을 없애는 일은 곧 감정을 숨기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스무 살이 지나고, 그녀는 한 번 크게 넘어졌다. 계단 끝에서 뒤꿈치가 미끄러지며 공기 중에 찍힌 작은 비명 같은 순간이었다. 그때 느낀 공포와 겨우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은 몸속 깊은 곳에 두 개의 층처럼 겹겹이 침전됐다. 이후부터 그녀는 걸음을 더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속도, 각도, 무게 중심, 땅이 주는 반발, 구두굽의 패턴, 심지어는 발목뼈와 발가락 사이의 간격까지. 그 모든 요소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언젠가 스스로를 ‘기울어진 발목을 가진 여자’라고 묘사했다. 사람들은 그 표현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에게는 충분히 정확한 설명이었다. 기울어진 발목으로 걷는 사람은 늘 어떤 세계에서 한 발짝 비켜난 자리에 서 있게 마련이다.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감각을 더 예민하게 쓸 수밖에 없고, 예민함은 다시 관찰로 이어졌다. 관찰은 묘사를 낳았고, 묘사는 새로운 걸음이 되었다.
그녀가 관형사적인 걸음을 가진 사람으로 변해버린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대학 시절, 그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가 보낸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편지에는 단 세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당신의 걸음은 너무 조용해서 슬픕니다.
그 조용함은 사람을 안심시키지만, 동시에 어딘가로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을 줍니다.
‘아무도 모르게 떠나는 사람’ 같은 걸음.
그녀는 그 문장을 읽고 며칠 동안 걸음을 바꾸려 애썼다. 발뒤꿈치를 더 강하게 붙이고, 일부러 바닥에 구두굽을 부딪쳐보기도 하고, 대화를 하며 걸을 때는 큰 소리로 웃는 척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은 길어야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몸은 언제나 원래의 리듬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진짜 상처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그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시절에 생겨났다. 어릴 적 그녀는 종종 문장보다 먼저 단어에 반응했다. 누군가 “따뜻한 손”이라고 말하면 그녀에게는 “손”보다 “따뜻한”이 먼저 닿았다. “짙은 밤”이라고 하면 “밤”보다 “짙은”이 먼저 들어왔다. 세상의 모든 사물 앞에는 늘 그 사물을 규정하는 작은 그림자 같은 단어가 붙어 있었고, 그녀는 그 단어의 결을 만지듯 느끼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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