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붙여지기 이전의 문장들
https://www.youtube.com/watch?v=VfF2UZjXx_g&list=PLr-tJJ74s-sR2HmqZUr0qv0k7s0fgl0Tb&index=5
형용사는 언제나 늦게 도착하는 언어였다. 명사가 자리를 잡고, 동사가 방향을 정한 뒤에야 따라붙는 부속물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나 어떤 문장에서는 이 질서가 무너진다. 사물보다 먼저 형용사가 도착한다.
이름 붙여지기 이전의 상태, 아직 규정되지 않은 감각이 문장을 점유한다. 축축한 이라는 말이 오면 밤은 이미 젖어 있고, 무거운 이라는 단어가 깔리면 침묵은 이미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형용사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일을 사후적으로 정리할 뿐이다. 그래서 형용사가 먼저 오는 문장은 사건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문다. 머무는 문장은 방향을 잃고, 방향을 잃은 문장은 하나의 상태가 된다.
이 상태는 대개 아침에서 가장 또렷해진다. 아침이라는 명사가 호출되기 전, 몸은 이미 형용사 속에 들어가 있다. 세면대의 금속 표면에 손을 얹는 순간 느껴지는 차가움, 밤새 가라앉은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 때의 얇은 저항, 바닥에서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미묘한 긴장. 차갑다는 말은 그 뒤늦은 요약일 뿐이다. 형용사는 이름이 붙기 전의 세계를 보존한다. 그래서 아침은 언제나 설명보다 먼저 몸에 남는다. 말로 규정되기 전에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의 온도처럼.
이렇게 형용사가 축적된 공간이 도시다. 도시는 하나의 서사가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형용사들의 집합이다. 낡았지만 무너지지 않는 외벽, 번쩍이지만 실체 없는 빛, 붐비지만 고립된 얼굴들. 이 형용사들은 도시를 이해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를 포기하게 만든다.
설명이 실패한 자리에서 형용사는 표면으로 남는다. 밤이 되면 그 표면은 더욱 두꺼워진다. 불필요하게 밝은 가로등, 지나치게 조용한 골목, 애매하게 따뜻한 실내 공기. 도시의 밤은 사건보다 상태가 먼저다.
상태가 지속될수록 감정은 희미해진다. 형용사는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감정이 지나간 뒤 남은 잔여물만을 정리한다. 울음이라는 말 대신, 축 늘어진 옷의 무게와 번진 화장의 경계가 남는다. 슬픔이라는 개념 대신, 식어가는 커피의 표면과 오래 켜져 있던 조명의 미열이 문장을 채운다. 감정은 순간이지만, 형용사는 그 순간이 남긴 흔적이다. 흔적은 움직이지 않지만,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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