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것처럼, 끝나지 않은

문 앞에서 오래 붙들린 공기

by 적적

https://www.youtube.com/watch?v=zal_vGlM5gk&list=PLjuDlTa33vsGps-kKhPla2aIzTihwtx3_&index=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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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현관 앞에 서 있다. 벨을 누르지 않는다. 벨은 예의를 가장한 합의이기 때문이다. 문장은 합의를 모른다. 대신 주먹을 쥔다. 작고 단단한 주먹이 나무와 철이 겹쳐진 표면을 향해 올라간다. 첫 번째 두드림은 공기를 밀어내고, 두 번째 두드림은 적막을 밀어낸다. 소리는 표면에 닿았다가 튕겨 나오고, 튕겨 나온 소리는 다시 문장을 감싼다. 두드림은 되돌아오면서 더 또렷해진다.



문 안쪽에는 서성임이 있다. 소리가 벽을 타고 번질 때마다 심장은 손잡이 쪽으로 기울어진다. 기울어짐은 움직임이 아니지만, 이미 반쯤은 움직인 상태와 닮아 있다. 무릎 위에 얹힌 손은 가만하지만 힘이 실려 있고, 발뒤꿈치는 바닥을 미세하게 긁는다. 긁힘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몸은 그 마찰을 기억한다. 두드림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 방향이 안쪽의 시간을 흔든다.



문장은 리듬을 바꾼다. 세 번, 잠시 멈춤, 다시 한번 길게. 반복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무뎌진다. 문장은 무뎌짐을 경계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박자를 배반한다. 거세게, 그러나 파괴하지 않게. 표면은 버티고, 손등은 붉어진다. 붉어짐은 분노가 아니라 마찰의 결과다. 마찰은 열을 남기고, 열은 잠시 체온을 바꾼다. 바뀐 체온은 다시 두드림을 만든다.



안쪽의 공기는 얇아진다. 얇아진 공기는 숨을 가늘게 만들고, 가늘어진 숨은 들키지 않기 위해 더 조심스러워진다. 두드림이 한 번 더 이어질 때마다 가슴 안쪽에서 작은 금속음이 난다. 자물쇠의 혀가 상상 속에서 먼저 흔들린다. 상상은 실제보다 빠르다. 빠름은 조바심을 만든다. 조바심은 감정이 아니라 속도다. 생각이 몸을 앞지르려 할 때 생기는 어긋남.



현관문에는 손때가 겹겹이 쌓여 있다. 수많은 손바닥이 남긴 기름기, 조심스러운 회전의 흔적, 계절마다 달라지는 미세한 수축과 팽창. 문장은 그 위에 또 하나의 흔적을 더한다. 겹침은 침투가 아니다. 통과하지 못한 채 나란히 서 있는 일. 나란함은 패배가 아니라 버팀이다. 문장은 문을 부수지 않는다. 대신 문과 같은 높이에서, 같은 표면 위에서 자신을 증명한다.



안쪽의 시선은 문을 응시한다. 응시는 저항과 닮았다. 문은 닫혀 있고, 잠금은 단단하다. 잠금은 안전을 보장하지만 동시에 고립을 보장한다. 고립은 익숙하다. 익숙함은 부드럽다. 그러나 두드림은 그 부드러움을 긁는다. 긁힘은 가루를 남기고, 가루는 가슴 안쪽에 쌓인다. 쌓임은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맥박이 조금 더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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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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