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으며, 비어 있지 않은

흙, 단어, 그리고 기다림의 기술

by 적적

https://www.youtube.com/watch?v=qAsscag1hs0&list=PLppVAByvRddUENQPuuFFhhGtTA12ienLJ&inde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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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땅은 늘 조용히 준비를 한다. 흙은 자신이 무엇이 될지를 미리 말하지 않는다. 다만 파헤쳐지고, 고르고, 눌리고, 물을 맞으며 어떤 가능성의 상태로 머문다. 잔디 공원은 그 상태 위에 생겨난다. 공원은 설계도의 산물이 아니라 기다림의 결과다. 씨앗이 뿌려지는 순간보다 더 긴 시간은 씨앗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이다. 그동안 땅은 비어 있으면서도 비어 있지 않다.


단어도 그런 식으로 뿌려진다. 문장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기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흙 위에 흩뿌려진 작은 알갱이들에 가깝다. 어떤 단어는 금세 눈에 띄고, 어떤 단어는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다. 쓰는 행위는 말하는 일이 아니라 남겨두는 일에 가깝다. 단어는 즉각적인 의미를 생산하지 않는다. 대신 표면 아래에서 조용히 머문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전혀 다른 문맥에서 갑자기 돋아난다.



잔디밭을 만드는 사람은 잔디를 보지 않는다. 씨앗 봉투의 무게를 보고, 흙의 질감을 만지고, 물의 양을 계산한다. 실패는 늘 동일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너무 많이 뿌리거나, 너무 적게 뿌리거나, 물을 급하게 주거나, 전혀 주지 않거나. 하지만 성공은 단일한 얼굴을 갖지 않는다. 성공한 잔디밭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 있다. 사람들이 걷고, 앉고, 눕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상태로.



읽히는 글은 설명하지 않는다. 설득하지도 않는다. 다만 독자가 머무를 수 있는 표면을 제공한다. 그 위에서 생각은 미끄러지거나 멈추고, 어떤 문장은 신발 밑창에 붙은 작은 흙처럼 집까지 따라간다. 나중에 그 흙이 어디서 묻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흔적은 남는다.



반복은 감정이 아니라 흔적의 문제다. 같은 문장이 여러 번 등장한다고 해서 의미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은 자리에 여러 번 발이 놓일 때, 흙의 결이 달라진다. 잔디는 그 차이를 기억한다. 단어도 마찬가지다. 같은 단어가 반복될수록 그 단어는 의미를 잃는 대신 질감을 얻는다. 뜻이 아니라 감촉이 된다. 손끝에 남는 어떤 것.



공원에는 중심이 없다. 지도에는 중심이 표시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각자의 중심을 만든다. 어떤 이는 벤치를 중심으로 삼고, 어떤 이는 나무 그늘을 중심으로 삼는다. 아이들은 중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뛰어다니며 순간마다 중심을 바꾼다. 글에서도 중심은 고정되지 않는다. 한 문장이 중심이 되었다가, 다음 문장에서 밀려난다. 중심은 이동한다. 의미는 그 이동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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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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