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억에 매달리는 인간이다. 가을이 지나가는 중이니 더욱 그러하다. 높아진 하늘, 스산한 공기, 우수수 흩어져가는 낙엽들, 사람들의 길어지는 옷자락 끝으로 빗방울마저 매달리고 여기에 그럴듯한 노래 한 곡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1년 전 5년 전 10년 전 20년 전 닳고 닳은 추억들이 순서도 없이 등장해서 바람과 함께 발밑을 나뒹군다. 가만 바라보니 이 못나고 볼품없는 쓸쓸함과 그리움들은 아직도 버리지 못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나? 얘기가 왜 이렇게 되지. 아무튼 지나가는 가을이 싫고 슬프다.
가지 마. 오지 마. 아무것도 맺은 것 없어 초조하고 부끄러운 나뭇가지처럼 애처롭게 말해본다.